♣ 六友堂記/산행기록 692

지리동북부 와불산의 독녀암과 미타봉

지리동북부 와불산의 독녀암과 미타봉 ▣ 일 시 : 2023년 05월 20일(토)~21일(일) ▣ 코 스 : 적조암-독녀암-의논대-고열암-미타봉(원점회귀) ▣ 인 원 : 10명 ▣ 날 씨 : 맑음 카카오 지도에 미타봉과 상내봉, 와불산이 이제야 제 이름을 되찾았다. 오류를 바로잡는 데까지 십수 년이 걸렸다. 지명이 지도에 한번 잘못 표기되면 바로잡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함양독바위는 노장대라는 본래의 이름이 있었다. 독녀암은 삼열암과 함께 유두류록 탐구가 류정자 님이 최초로 발굴하였다. 함양군에서 세운 노장대라는 팻말은 사라지고, 그 시점에 함양독바위는 고증 없이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에 오르면 함양 읍내가 보여서 함양독바위라고 했다고 한다. 지명의 유래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함..

비내리는 세석평전의 창불대와 영신대

비내리는 세석평전의 창불대와 영신대 ▣ 일 시 : 2023년 05월 17일(수)~19일(금) ▣ 코 스 : 백무동-세석대피소-창불대-영신대-좌고대-곧은재능선-백무동 ▣ 인 원 : 4명 ▣ 날 씨 : 흐리고 비 전괄(箭筈)은 화살촉처럼 뾰족한 창불대와 병풍바위를 가리키고, 거상(車箱)은 한번 내려가면 돌아갈 길이 없는 창불대골을 가리킨다. 창불대에서 영신대로 내려오는 사면길에 제1전망대가 있다. 여기에서 영신대를 바라보면 석가섭과 좌고대가 보인다. 좌고대에 올라간 종 염정과 옥곤을 꾸짖은 것을 보면 점필재도 이길로 내려선 듯하다. 영신암 시를 보면 영신대로 내려서면서 석문을 통과했다. 산도(山都)를 촌장으로 읽었는데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르겠다. 산도(山都)는 비비(狒狒, 원숭이)의 일종이다. 비 내리는 세..

선가(仙家)에서 먹는 요초(瑤草) 청옥(靑玉)과 자옥(紫玉)

선가(仙家)에서 먹는 요초(瑤草) 청옥(靑玉)과 자옥(紫玉) ▣ 일 시 : 2023년 05월 13일(토)~14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청이당-영랑대(원점회귀)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영상 8도)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서대초(書帶草)와 청옥(靑玉), 자옥(紫玉)은 식물도감에 나오지 않는다.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서 "서대초(書帶草)와 유사(類似)한 풀이 있어 부드러우면서 질기고 미끄러워 깔고 앉았다 누웠다 할만하며 곳곳이 다 그러했다. [有草類書帶 柔韌而滑 可藉以坐臥 在在皆然]"라고 하였다. '서대초와 닮은 풀'은 동부능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넓은 잎 그늘사초를 가리키는 듯하다. 서대초와 그늘사초는 다른 식물이다. 서대초는 맥문동으로 추정한다. 서대초는 ..

조경남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나오는 송림사

조경남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나오는 송림사 ▣ 일 시 : 2023년 05월 12일(금) ▣ 코 스 : 구룡계곡 주차장-여궁석-석녀골-송림사지-능선-영제봉 북릉 초입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황령과 황령암터를 답사하다가 산서(山西) 조경남(趙慶男, 1570~1641)의 『난중잡록(亂中雜錄三)』을 만났다. '1597년 8월 11일 왜적들이 구례에서 숙성령을 넘어, 급기야 12일에 남원성을 포위하고 16일에 남원성이 함락된다. 8월 15일 조경남은 양형과 이공직 등 여러 사람과 같이 상용추에서 정령치를 넘어 황류동[지리산의 황령사(黃嶺寺)와 향로봉의 사이에 있음.]에서 유숙하고, 16일 황류천을 건너(하점골 경유 추정) 향로봉 북쪽 기슭 아래 은신암(隱身庵)의 옛터로 들어가 막을 치고 머문..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송림사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송림사 ▣ 일 시 : 2023년 05월 07일(일) ▣ 코 스 : 구룡계곡 주차장-여궁석-석녀골-송림사지 ▣ 인 원 : 3명 ▣ 날 씨 : 비 ■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청류를 거슬러서 남쪽으로 1리를 나아가면 일원의 폐사지에 패탑(敗塔)과 잔와(殘瓦)가 지나간 역사를 증(證)하나니 송림사(松林寺)의 유허이다. 절은 고려시대 고찰인데 한때는 자못 부유하고 번성하였던바, 용호의 명승을 이웃한 탓으로 소인(騷人, 시인과 문사)과 풍류객(風客)의 등림(登臨)이 매우 많은지라, 스님들(衲子輩)이 고통을 당하였더니(喫) 저들의 불례(不禮)를 마음에 품은 어떤 지관(一地師)이 객을 막을(防) 묘(妙)한 방법(道理)이 있음을 말하여, 절의 남쪽의 석퇴(石堆)를 부파(斧..

지리동부 영랑대 진달래 화신(花信)을 듣고

지리동부 영랑대 진달래 화신(花信)을 듣고 ▣ 일 시 : 2023년 04월 22일(토)~23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청이당-영랑대(원점회귀)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영상 5도) 月夜聞子規(달밤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고)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 寂寞殘宵月似派 : 적막한 밤 달빛은 물결처럼 잔잔한데 空山啼遍奈明何 : 텅 빈 산 곳곳에서 두견새 울음소리 날이 새면 어이하나 十年痛哭窮途淚 : 십 년을 통곡한 궁한 자(*)의 눈물 與爾朱脣血孰多 : 그대의 붉은 입술과 핏빛 중에 어느 것이 짙은가. ☞ 殘宵 = 殘夜 새벽녘, 새벽 4시경. 遍 ; 두루, 온통, 곳곳 窮途 : 끊긴 길. 막다른 길, 곤궁한 처지. 곤경에 처한 사람. (*)옛날 중국 촉(蜀) 나라의..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파근사 II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파근사 II ▣ 일 시 : 2023년 04월 일(일) ▣ 코 스 : 선유폭포-오강바위-월계재-상허리길-암자터1,2-파근사터-암자터-광속단-1401봉-암자터-차돌바위-대장간터-선유폭포 ▣ 인 원 : 5명(답사팀) ▣ 날 씨 : 맑음 1655년 10월 8일 김지백은 원천원(元川院, 현 지리산둘레길 남원 주천 안내 센터)에서 일행들을 만나 용추(龍湫)를 거쳐 파근사에서 묵고, 10월 11일까지 나흘간 화개동천 일원을 유람한다. 나흘간의 유람에서 일행들이 지은 100여 편의 한시를 1권의 시집으로 만들면서 김지백이 기문(유두류산기)을 짓는다. 용추동(용호구곡)에서 파근사로 가는 길은 ① 제1곡 松瀝洞(송력동)에서 제9곡 교룡담(交龍潭)까지 협곡으로 가는 길, ② 제6곡..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용추(龍湫)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용추(龍湫) ▣ 일 시 : 2023년 04월 16일(일) ▣ 코 스 : 1곡 松瀝洞(송력동)-2곡 옥룡추(玉龍湫)-3곡 학서암(鶴捿岩)-4곡 서암(瑞岩)-5곡은 유선대(游仙坮)-6곡 지주대(砥柱坮)-7곡은 비폭동(飛瀑洞)-8곡 경천벽(擎天壁)-9곡 교룡담(交龍潭) ▣ 인 원 : 2명(지리산아님) ▣ 날 씨 : 흐림 1655년 김지백의 「유두류산기」에 용추(龍湫)라는 지명이 나온다. 용추(龍湫)는 용호구곡의 옛이름이다. 용호구곡은 근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전에는 원천(元川). 용호동(龍湖洞), 용추동(龍湫洞)이라고 하였다. 1752년(영조 28)에 발간된 『용성지』의 '산천조(山川條)'에 용추동(龍湫洞)으로 소개하고 있다. 용호동 입구에 창암(蒼巖) 이삼만 (李三..

황령(黃嶺)과 황령암(黃嶺庵) 터를 찾아서 III

황령(黃嶺)과 황령암(黃嶺庵) 터를 찾아서 III ▣ 일 시 : 2023년 4월 10일(월)~11일(화) ▣ 코 스 : 정령치-개령암 마애불-황령-달궁산성-매막봉-황령암지-황석산막 ▣ 인 원 : 5명 ▣ 날 씨 : 맑음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마한(馬韓)의 왕이 피신하여 달궁에 도성을 쌓을 때, 黃·鄭 두 장군을 시켜 공사를 감독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황령(黃嶺)과 정령(鄭嶺)이라고 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반야봉의 좌우에 황령과 정령이 있다."라는 문구는 오히려 혼란을 준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읽어보고 지리산길 지도에 표기된 황령암 터를 답사하게 되었다. 황령암지는 있으나 황령이 없다. 관련 기록을 요약하면, ① 황령 남쪽에 황령암이 있다. ② 황령암 앞에는 황계수가 흐른..

월출산 용암사지에서 하룻밤(230331~0401)

월출산 용암사지에서 하룻밤(230331~0401) ▣ 일 시 : 2023년 03월 31일(금)~04월 01일(토) ▣ 코 스 : 대동저수지-용암사지-향로봉능선-구정봉-마애석불-용암사지-대동저수지 ▣ 인 원 : 5명(산친들과) ▣ 날 씨 : 맑음 월출산 용암사지 주변 정밀지표조사 ■ 용역보고서 주요내용 월출산 용암사지 주변 정밀지표조사 용역보고서가 나왔다. 영암군의 의뢰로 (재)나라문화연구원(원장 박태홍)이 맡아 추진한 이번 용역은 1995년 지표조사를 통해 용암사가 고려시대 초반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고, 가람의 규모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법당과 남쪽에 작은 요사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일원에 대한 지표조사를 통해 용암사지를 복원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번 용역은 용암사지를 포함해 대동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