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207

소나무 사진 작가 강호철님의 대둔산 삼형제 바위

소나무 사진 작가 강호철님의 대둔산 삼형제 바위    오래전에 대둔산에서 만난 포항에 사시는 강호철님의 작품입니다. '대둔산 삼형제 바위 사계'를 담기 위해 수십 번 대둔산을 오르내리셨다고 합니다. 금년에는 '대둔산 삼형제 바위 사계'를 완성하시기를 바라며, 작품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둔산 동학 농민혁명 최후 항전지를 찾아서 II

대둔산 동학 농민혁명 최후 항전지를 찾아서 II  ▣ 일 시 : 2025년 03월 22일(토)~23일(일)▣ 코 스 : 대둔산 주차장-동학혁명 전적비-동심정-석두골-최후 항전지-마천대-낙조대 산장-생애봉-장군약수터-배티재▣ 날 씨 : 맑음(10도), 바람    지난주 답사 후, 동학 농민군이 70여 일을 항전하였다는 기록에 의문이 남았다. 항전지 가까운 곳에 샘이 없는데, 많은 인원이 장기간 어떻게 항전하였을까. 또 하나의 의문은 동학 연구한는 분들이 동학군 최후 항전지를 형제바위(미륵바위)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석두골 초입에서 200m 정도 올라가면 창끝처럼 뾰족한 두 개의 바위가 보인다. 형제바위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동학 농민군 최후 항전지에서 형제바위는 직선 거리로 70m 정도 떨어..

대둔산 동학 농민혁명 최후 항전지를 찾아서 I

대둔산 동학 농민혁명 최후 항전지를 찾아서 I  ▣ 일 시 : 2025년 03월 15일(토)▣ 코 스 : 동학혁명 전적비-동심정-석두골-최후 항전지-마천대-낙조대 산장-허둔장군절터-수락리▣ 인 원 : 3명▣ 날 씨 : 흐림(8도), 바람    지난 3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박용규 박사님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동학 농민운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밝히며, '대둔산 동학 농민혁명 최후 항전지'에 대해 물어왔다. 오래전 대둔산 금강골 입구에 있는 전적비 안내문 정도를 읽어본 기억밖에 없다고 말씀드렸다. 3월 13일에는 신문에 직접 기고한 대둔산 동학 관련 기사를 보내오셨다. 할 일 없는 사람의 궁금증에 불을 댕긴 셈이다. https://lyg4533.tistory.com/16489072 민족문제연구..

문석봉(文錫鳳)의 『의산유고(義山遺稿)』 「토비략기(討匪略記)」

문석봉(文錫鳳)의 『의산유고(義山遺稿)』 「토비략기(討匪略記)」    1895년 1월 6일(음 94년 12월 11일) 진잠에 출진한(출진하는데), 충청감사 박제순(朴齊純)이 이르기를, “진잠에 사는 박만종(朴萬宗)은 삼남의 비류 도대장(都大將)이며, 또한 금영(錦營)1)을 범하여 이미 금산을 함락하고, 사람을 죽인 것이 전봉준·김개남 2적보다 더 많다. 만일 이 적을 잡게 되면 공이 막대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진잠은 거리가 이곳에서부터 60리입니다. 오늘 해시(亥時, 오후 9∼11시)에 박만종을 잡아 휘하에 바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1) 금영(錦營) : 충청도(忠淸道) 남영.    이에 즉시 군대가 마구점(馬口店,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20리까지 행진하여 먼저 여행증명서(路文)2)를 ..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님이 보내온 동학 관련 자료

항일 동학투사 16명 학살당한 곳, 벌곡 도산리 집터 찾아보니 박용규(hanbong)등록 2025.03.12 16:39수정 2025.03.12 16:39    필자는 논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김선덕 회장으로부터 1895년 양호소모사 문석봉(文錫鳳,1851∼1896)으로부터 항일 동학투사 16명이 학살된 김세마 집터 위치를 알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3월 1일 김세마 집터를 확인하고자 탐방에 나섰다. 당일 계룡역에 도착하자, 김선덕 회장과 김대훈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선덕 회장과 김대훈 선생, 그리고 필자는 김세마 집터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먼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이어서 충남 금산군 진산면 행정2리 노인회관 앞에 세워져 있는 '동학 최후의 항쟁지'라고 쓴 표지석을 탐방하였다...

와불산 독녀암, 미타봉과 상내봉에서 노닐다. 

와불산 독녀암, 미타봉과 상내봉에서 노닐다.  ▣ 일 시 : 2025년 03월 08일(토)~09일(일)▣ 코 스 : 송대마을-의논대-노장대(독녀암)-신열암-고열암-미타봉-향로봉-솔봉-송대마을▣ 인 원 : 2명(첫날 +2명)▣ 날 씨 : 흐림, 맑음  畵鶴(화학) - 그림속의 학                                     손곡(蓀穀) 이달(李達)   獨鶴望遙空 : 외로운 학 한마리 먼 허공을 바라보며夜寒擧一足 : 밤이 차가운지 다리 하나를 들고 있네.西風苦竹叢 : 서풍이 불어와 대숲도 괴로워하는데 滿身秋露滴 : 나는 온 몸 가득 추로(술)에 젖었다오.  ※ 이달(李達, ?~?) : 조선 선조 때의 시인.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 동리(東里)이다. 최경창(崔慶昌), 백광훈..

삼정산 삼불주 상고대(上高臺) 2박 3일

삼정산 삼불주(三佛住) 상고대(上高臺) 2박 3일  ▣ 일 시 : 2025년 02월 26일(수)~28일(금)▣ 코 스 : 도마마을-은적암터-능엄산방-삼불주-문수암▣ 인 원 : 3명▣ 날 씨 : 맑음, 3일차 흐리고 비(포근함)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은 1686년 62세부터 3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순력(巡歷)하며 산중일기를 남겼다. 1686년(丙寅) 3월 13일 강원도 원주를 출발하여, 4월 15일에 함양 마천의 군자사로 들어온다. 정시한의 지리산 유람 일정은 9월 7일 금대암을 떠날 때까지 5개월 넘게 함양과 남원 하동과 구례 일원의 지리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에 머물며 사찰과 암자의 주위 환경과 감상, 만난 승려들의 이름과 성품까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특히, 지리산에..

장터목의 명소 향적사지와 제석당터

장터목의 명소 향적사지와 제석당터  ▣ 일 시 : 2025년 02월 22일(토)~23일(일)▣ 코 스 : 백무동-장터목-향적사지-천왕봉-제석당-백무동▣ 인 원 : 3명▣ 날 씨 : 첫날 맑음, 다음날 흐림(영하 18도)    오랜만에 장터목 인근에 있는 향적사지와 제석당터를 찾았다. 첫날 향적사지를 다녀온 후 장터목 마당바위에서 일몰을 보았다. 마당바위는 제석봉 쪽으로 약 100m 지점 바로 등로 옆에 있다. 다음날 일출 없는 천왕봉을 다녀온 후, 제석당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백무동으로 내려왔다. 옛 제석당터(?)에서 온도계를 보니 영하 10도... 장터목 대피소에 확인을 하니, 새벽 온도가 영하 18도라고 한다. 산행을 마치고 향적사지와 제석당터 관련 자료를 다시 읽어 보았다. 1586년 양대박의 「두류..

지리동부 심설산행 영랑대에 이르지 못하다.

지리동부 심설산행 영랑대에 이르지 못하다.  ▣ 일 시 : 2025년 02월 15일(토)~16일(일)▣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청이당-마암▣ 인 원 : 4명▣ 날 씨 : 흐림(영하 5도)    설각(雪殼)이라는 한자 어휘가 있다. 한자로 ‘눈설(雪)’에 ‘껍질각(殼)’,으로 ‘쌓인 눈이 딱딱하게 언 표층. 또는 눈이 녹은 표층이 다시 얼어붙은 상태.’를 의미한다. 등산 용어로 크러스트(crust)라고 한다. 지난 수요일 비까지 내려 눈 표면이 얼어붙었다. 지리산에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않은 적설량이다. 청이당 터에서 마암 입구까지 4시간이나 걸렸다. 영랑대를 지척에 두고 마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삼불사의 석조산신상과 상고대(上高臺)

삼불사의 석조산신상과 상고대(上高臺)    삼불사의 산신각에는 여덟 폭의 산신도와 일곱 분의 석조 산신상이 봉안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유일무이한 배치이다. 중앙에 모신 산신은 여성 산신이다. 좌측 한 곳에는 산신도만 있다. 여덟 분의 산신을 봉안한 내력은 전하지 않지만, 지리산의 산신사상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 삼불사의 이름은 암자 뒤에 우뚝 솟은 삼봉(三峰)에서 유래한 듯하다. 삼불사 인법당의 현액이 삼불주(三佛住)인데, 이 또한 특이하다. 글자 그대로 '세 분의 부처님이 머무는 곳'으로 이해가 된다. 삼불사 바로 뒤의 가운데 봉은 본존불(本尊佛), 좌우는 협시불(挾侍佛)로 내 눈에는 삼불봉(三佛峰)으로 보인다. 도마마을 주민들은 시루봉이라고 한다. 금대산에서 바라보면, 삼불사 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