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218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나오는 향로봉과 은신암

■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나오는 향로봉과 은신암 ○ 1594년 6월 초3일 이 때에 영남 사람 임걸년(林傑年)이 또한 도당을 모아 지리산 반야봉에 주둔하고 출몰하며 도적질을 하였다.[時嶺南人林傑年 亦聚徒屯于智異山般若峯 出沒作賊] ○ 1594년 12월 초5일 임걸년(林傑年)이 지리산의 여러 절을 다 무찌르니 중들과 인민이 피해를 입음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향로봉(香爐峯)에 주둔했다가 운봉 군사에게 밤에 습격을 당하여 패하여 달아났다.[林傑年盡屠智異諸刹 僧俗被害 不知其數 屯于香爐峯 爲雲峰軍夜襲敗走] ○ 1597년 8월 15일 나와 양형(梁兄) 및 백암(白嵓) 이공직(李公直)의 부형과 가족 수백 명이 돌의 모서리를 붙잡고 기어서 내려갔다. 황류동(黃流洞)[지리산의 황령사(黃嶺寺)와 향로봉의 사..

금계동 놀이터에서 금대암 가는 길

금계동 놀이터에서 금대암 가는 길 ▣ 일 시 : 2025년 06월 20일(금)~22일(일)▣ 코 스 : 금계마을-천왕할미상-금대암-지리산둘레길-금계마을-두모담▣ 인 원 : 3명▣ 날 씨 : 금, 토 : 비/일 : 맑음 금계마을 택지를 개발한 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마고할미상을 모셔 놓았다. 금계마을에 살았던 풍운도사(심상희)가 조성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조성 시기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금대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없다. 염소 울타리를 넘어 가파른 능선 길을 따라 오르니 창원마을에서 금대암으로 가는 허리길이 나타난다. 1489년 4월 15일 탁영 김일손과 일두 정여창, 천령 유생 임정숙이 등구사에서 금대암으로 내려온 길이다. ■ 1489년 탁영 김일손의 「두류기행록」 ○ 4월 14일, 임..

칠성 박성섭님 만나러 영랑대 가는 길

칠성 박성섭님 만나러 영랑대 가는 길 ▣ 일 시 : 2025년 06월 06일(금)~8일(일)▣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쑥밭재-청이당-영랑대-구롱길-일강-상내봉-벽송사능선-어름터-광점동▣ 인 원 : 3명 박지합류 2명▣ 날 씨 : 맑음(영상 15도) 김종직의 유두류록길을 복원하는데 도움을 준 산친들은 많다. 부산 토요산속 칠성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칠성님과 함께 2020년 3월 30일 아홉모랭이길을 완성하였다. 칠성님의 1주기(周忌)를 맞이하여 혼백을 모신 영랑대에서 조촐한 추모제를 지냈다. ■ 구글 제미나이(Google Gemini) 지리산 인문산행 칠성 박성섭 지리산 인문산행 칠성 박성섭은 지리산의 단순한 산행을 넘어, 산에 깃든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깊이 탐구하고 기록하..

중봉에서 부르는 노래 호연재의 일창송(一蒼松)

중봉에서 부르는 노래 호연재의 일창송(一蒼松) ▣ 일 시 : 2025년 05월 31일(토)~6월 1일(일)▣ 코 스 : 중산리-마야계곡-중봉-영랑대-청이당-새재▣ 인 원 : 3명▣ 날 씨 : 맑음(영상 10도) 一蒼松 : 힌 그루 푸른 솔 浩然齋 安東金氏 永夜眠難得 : 긴긴밤 잠을 이루지 못하니悄悄待曉鍾 : 悄悄조용히 새벽종을 기다린다玲瓏半夜月 : 영롱한 半夜月한밤중의 달이요蕭瑟五更風 : 蕭瑟소슬한 五更오경 바람이야世事愁千疊 : 세상 일은 근심이 천 겹이요離情恨萬重 : 떠난 정은 恨이 만 겹이어라回瞻身外伴 : 몸 밖의 벗을 돌아보니只有一蒼松 : 오직 한 그루 푸른 솔뿐이로다. 이 시는 조선 중기에 살다 간 호연재 김씨(1681~1722)의 시이다..

황령암터 돌계단 훼손 소식을 듣고

황령암터 돌계단 훼손 소식을 듣고 지난 4월 20일과 26일 황령암터를 답사하였다. 20년 넘게 서산대사를 연구하시는 손병욱 교수님과 승탑연구가 선과 임병기 선생이 동행하셨다... 5월 31일 산행 중에 남원의 포타님에게 황령암터 돌계단 훼손 사진을 받았다. 생각이 다르다고 이렇게 원형까지 훼손할 이유가 있는지. 금속탐지기가 범인이다. ▶ 5월 31일 포타님에게 받은 돌계단 훼손 사진 ▶ 4월 20일 답사 사진 ▶ 4월 26일 답사 사진

개암 강익선생 유허비에 나오는 삼괴정·구송정·양진재

개암 강익선생 유허비에 나오는 삼괴정·구송정·양진재 지명은 땅의 얼굴이요. 언어의 화석이다. 지명에는 역사와 유래를 담고 있다. 비문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 삼괴정(三槐亭)의 개암강선생양진재유허비(介庵姜先生養眞齋遺墟碑)와 구송정(九松亭)의 개암 강익선생 유허비(介菴姜先生遺墟碑)를 읽어보면 삼괴정과 구송정의 위치가 명확하다. 삼괴정 위에 구송정이 있고, 구송정 위에 양진재가 있다. 양진재 터는 어디일까. ▼ 삼괴정(三槐亭) :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722-2번지 介庵姜先生養眞齋遺墟碑 嘉靖三十二年癸丑介庵姜先生入智異山之龜谷愛其宅幽勢阻買田結茅築一齊曰養眞嘉遯永貞日存心蓄德以養性之眞是谷也天荒多年得先生而山川增彩草木猶榮矣及先生之沒遂鞠茂址亦漂流而其三槐亭九松臺皆齋之上下而亦先生風咏之所手植之木尙今蔚然則盖可謂齋之遺墟..

마천면 창원마을 개암 강익선생 유허비 관련

마천면 창원마을 개암 강익선생 유허비 관련 1. 개암강선생유허비(介菴姜先生遺墟碑)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695번지 창말 마을 구송정(九松亭)행적자 : 강익(姜翼, 1523~1567) 연대 : 조선 중기 건립일 : 1815년(순조 15년)10월 일[개요] 1553(嘉靖三十二年癸丑)년 개암 강익(姜翼, 1523~1567) 선생이 31세 때에 덕계 오건(吳健, 1521~1574)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다가 등구동을 발견하고 양진재(養眞齋)를 지어 후학들을 길렀다고 한다. 강개암 선생이 노닐던 구송정(九松亭)에 선생의 업적(業績)을 기리기 위(爲)하여 그 유허에 세운 비(碑). 介菴姜先生遺墟碑 [측면] 동 : 九松亭上有養眞齋下有三槐亭 서 : 崇禎紀元後四乙亥十月 日建 개암강선생유허비 구송정(九松..

서산대사의 내은적암 관련 문헌

서산대사의 내은적암 관련 문헌 내은적암1) 관련 문헌은 8편의 시와 3편의 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注 1) 내은적암은 서산대사가 1560년(41세)부터 1562년(43세) 사이 3년에 걸쳐 기거하였던 곳이다. 1. 시 가. 인경구탈(人境俱奪)2) 梨花千萬片 : 배꽃 천만 편飛入淸虛院 : 청허원(淸虛院)에 날아드네.牧笛過前山 : 목동의 저(笛) 소리 앞산에 지나건만人牛俱不見 : 사람도 소도 보이지 않네. 注 2) 人境俱奪 : 밖의 경계와 안의 나를 모두 없앤 것을 인경구탈이라 한다. 나. 내은적(內隱寂) 飄泊十年客 : 십 년 동안 떠돌던 손이歸來白髮添 : 돌아오니 백발만 더 더했구나.樵人刈竹盡 : 나무꾼이 대[竹]를 다 베었거니何處覓香嚴 : 어느 곳에 향엄(香嚴)3)을 찾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