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 239

2025 제 1차 청권사 사보 편집회의 참석

2015 제 1차 청권사 사보 편집회의 참석  ▣ 일 시 : 2025년 01월 09일(목)▣ 장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소재 청권사(효령대군 묘역과 사당)▣ 인 원 : 6/7명▣ 날 씨 : 맑음  재미있으면(이복규 교수님 尺牘)"문장이 짧고 단순해야 해요. 3형식(주어+서술어+목적어) 이상 복잡한 문장은 안 읽어요. 접속사도 빼야..." 어제 어느 편집회의에서 교사 출신 위원의 발언! 소설가인 위원이 얼른 대꾸합니다. "아닙니다. 길어도 읽을 사람은 읽어요. 길든 짧든...재미있으면 읽습니다." 아...가능한 대로 짧고 재미있게 써야지...전문 독자 위해서는 길지만 재미있게...^^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鍾閣興天大鍾辨證說」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1) 「鍾閣興天大鍾辨證說」  鍾鼎者。一國之大器也。不知其原可乎。謹按我太祖四年乙亥。鑄大鍾。建閣通衢而懸之。晨昏撞擊。嚴人民作息之限。權陽村近撰銘2)。 종정(鍾鼎)은 한 나라의 큰 기물(器物)이다. 그 근원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옳은 것인가?) 삼가 상고하건대(살펴보건대)[按] 우리 태조 4년 을해(1395)에 큰 종(鐘)을 주조(鑄造)하여, 번화한 거리에 누각을 지어 (종을) 달아매고는 새벽과 저녁에 종을 울리게 하여, 백성들이 움직이고 쉬는 때를 엄정히 구분하였는데,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이 명(銘)을 지었다. 休窩任有後《野談》。貞陵。神德王后康氏陵也。初在敦義門內。陵有寺。 寺有兩大鍾。 휴와(休窩) 임유후(任有後, 1601~1673)3) 의 《야담..

함허당 득통화상 행장(涵虛堂得通和尙行状) - 門人 埜夫 錄

함허당 득통화상 행장(涵虛堂得通和尙行状) - 門人 埜夫 錄   ▮함허당 득통화상 행장(涵虛堂得通和尚行状)  涵虛堂 得通和尚 行状 - 門人 埜夫 錄.師 諱己和 號淂通 舊名守伊 號無準 所居室曰涵虚堂 俗姓 劉氏 中原人也 선사(先師)의 휘(諱)는 기화(己和, 1376~1433)이고, 호(號)는 득통(得通)이다. 예전 이름[舊名]은 수이(守伊)이고, 법호(法號)는 무준(無準)이며, 거처하는 집은 함허당(涵虚堂)라고 하였다. 속세의 성(姓)은 유씨(劉氏)로 중원인(中原人. 충주 유씨)이다. 考諱聽 官至典客寺事 母方氏 方 因無子 頌禱慈悲大聖 돌아가신 아버지 휘(諱)는 청(聽)이며, 관직은 전객시사(典客寺事)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방씨(方氏)이다. 방씨(方氏)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大聖]께 자비(慈悲)를 베..

2024년(갑진) 청흥문중 묘사 봉행(240406)

2024년(갑진) 청흥문중 묘사 봉행(240406) ▣ 일 시 : 2024년 04월 06일(토) ▣ 장 소 :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영주사 납골 묘역 ▣ 인 원 : 24명(정하, 정진, 정두, 수만+당숙모, 정덕 당숙모, 원규, 덕규, 동규+형수님, 남규+형수님, 영규+1, 범규, 민규(혁수)+제수씨, 준규, 혁규, 학현, 학성, 학중, 학림, 학훈) ▣ 날 씨 : 맑음 ■ 2024 묘제 비용 지출 내역 1. 회비 : 410,000원(남규 100,000원, 수만 50,000원), 2. 제수 비용 : 97,000원 3. 중식 식대 : 432,000원 ※ 대구집안 창규형님이 200,000원 보내주셨습니다.(240401)

歧陽書院刱建事蹟과 臨湖靑巖兩書院回文

歧陽書院刱建事蹟과 臨湖靑巖兩書院回文 歧陽書院刱建事蹟(기양서원창건사적) 正廟1)丙寅士論齊發 以謂靖孝公李先生 以王室懿親 托跡禪家2) 放浪山水 取諸文身適越之義 則吾夫子所謂身中淸廢(결자)中權3)者 又況先生文雅之質 孝悌之行 好學不倦 儉約自持 處高而厭華 有至德而晦迹 列聖朝褒揚4)之典 極其曠絶5) 而終無士林尊奉之所 慨然之甚 今者祀孫移寓他鄕 廟宇巋然 以前日主鬯之廟 爲今日俎豆之所 義理當然云 정묘(正廟:정조→純廟:순조) 병인년(1806)에 사림의 의론이 일제히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효공(靖孝公) 이선생(李先生)은 왕실의 지친(至親)으로서 불가에 자취를 의탁하여 산수를 방랑하며, 옛날 주나라 태왕(太王)의 아들 중옹(仲雍:虞仲)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몸에 문신을 새기고서 남쪽 월(越)나라로 떠난 의리를 취하셨으니..

오태 효령대군 영당 제향 봉행(240325)

오태 효령대군 영당 제향 봉행(240325) ▣ 일 시 : 2024년 03월 25일(월) ▣ 장 소 : 오태 효령대군 영당(경북 상주시 공검면 오태리 789) ▣ 날 씨 : 흐림 효령대군(孝寧大君) 영당(影堂) 비 이곳은 조선왕조(朝鮮王朝) 태종대왕의 제2 왕자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영정을 모신 영당(影堂)입니다. 대군(大君)께서는 태조 5년(1396)에 誕生하시고 성종 17년(1486)에 卒하셨으며 휘(이름)는 보(補)요, 자(字)는 선숙(善淑), 아호는 연강(蓮江)이시고, 시호(諡號)는 정효(靖孝)이시며 종묘(宗廟) 공신당(功臣堂)에 배향(配享)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9대 종손 성민(聖民) 공이 난을 피하여 이곳 영남 함창(咸昌) 땅에 들어와 정착, 가묘(家廟)에서 대군의 제향을 드리자 숙종 12..

순종황제가 내린 밀지(密旨) 경술 통문

순종황제가 내린 밀지(密旨) 경술 통문     경술(庚戌) 통문(通文)은 1910년 음력 7월 순종 황제가 전국 유림에게 내린 밀칙(密勅, 임금이 내린 비밀 칙서)이다. 만세력을 보니 경술국치일(1910. 8. 29)이 음력으로 7월 25일이다. 이 칙서(勅書)는 경술국치 이후에 바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해산으로 정미(1907) 의병이 전국 각처에서 들불처럼 일어나자, 일본은 전국의 군 단위까지 정규군을 배치하여 대대적으로 의병들을 토벌하였다. 1910년은 전국의 의병진이 대부분 궤멸(潰滅)된 상태였다.   일본은 1907년 고종이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高宗)에게 퇴위를 강요하였다. 결국 고종이 황태자에게 국정의 섭정(攝政)을 맡긴다는 양위 조칙(詔勅)을..

孝𡨴大君 房 下執事(효령대군 방 하집사)

孝𡨴大君 房 下執事1) 戊子流月2) 初吉3) 逋人4)金時習拜手 무자년(1468) 6월 1일 포인(逋人) 김시습(金時習)은 절(拜)을 올립니다. 時習乙酉春 卜築5)金鰲山6) 若將終身 三月晦 伏承以從馬馳召辱賜書曰 聖上重新古弘福寺 命名圓覺 僕薦于聖上 聖上命召赴慶會 勿𨒫(逆)来(來)赴 時習於是 改舊勝會7) 嘗8)剋日9)上京 以參嘉會馳賀 便回以終餘年 저는 을유년(1465) 봄 금오산(金鰲山)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여생(餘生)을 마치려 하였습니다. 3월 그믐날에 종자가 말을 타고 달려와 부르시며 보내신 편지를 엎드려 받았는데, 그 편지에 “성상께서 옛 홍복사(弘福寺)를 중수(重修)하여 원각사(圓覺寺)라 명명(命名)하시고, 제가 성상께 공을 천거하였더니, 성상께서 경사스러운 모임에 부르라고 명하시었으니, 물리치지 말..

梅月堂 道案 呈納(매월당 도안 정납)

梅月堂 道案 呈納[매월당에게 드립니다.] 戊子之午月1) 二十一日 𥙷 頓2) 金鰲3)之別 倐已星回 戀思可量 무자년(戊子年. 1468) 5월 21일에 보(𥙷)가 안부를 묻습니다. 금오산(金鰲山)에서 작별한 뒤로 벌써 해가 바뀌었으니, 그리운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今春聖上 重新弘福寺4) 命名圓覺 今將落成 僕以説卿5)為士林領袖 薦于聖上 聖上命召慶會 勿𨒫(逆)来(來)赴 區區者6)㪽(所)望 금년 봄에 성상(聖上)께서 홍복사(弘福寺)를 중수(重修)하여 원각사(圓覺寺)라 명명(命名)하시고, 이제 곧 낙성(落成)하려 합니다. 제가 열경(悅卿)을 사림(士林)의 영수(領袖)로 여겨 성상께 추천(推薦)하였더니, 성상께서 공을 경사스러운 모임에 부르라고 명하시었으니, 물리치지 말고 올라오시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