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와유강산 4

林三松 선생의 臥遊江山(최종 교정본)

林三松 선생의 臥遊江山(최종 교정본) 임응택(林應澤, 1879~1951) 본관은 羅州林氏 선생의 호는 삼송(三松)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의중 마을에 살았던 인물. 三松 家門에 三兄弟 有하온바 長孫은 長松 仲孫은 二松 季孫은 三松이라 號를 定하였음. 은계(隱溪) 이진우(李璡雨, 1897~1954) 선생의 앞집에 살았고, 현재 그분의 손부가 살고 있음. 와유강산은 지리산 10勝地와 9奇, 18景을 읊은 3(4).4조의 4음보 가사 형식임. 원본이 아닌 필사본으로 마천 읍내 당흥 부락 김수태(1929~) 어르신(금년 92세)이 17세 때(해방 전후)에 필사함. 김수태 어르신이 삼송공을 직접 뵙지는 못했다고 함. 1990년대 초반 함양 서복연구회 문호성 회장님이 발굴하여 탈초한 자료를 마천..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 임응택(林應澤, 1879~1951) 본관은 羅州林氏 선생의 호는 삼송(三松)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의중 마을에 살았던 인물. 三松 家門에 三兄弟 有하온바 長孫은 長松 仲孫은 二松 季孫은 三松이라 號를 定하였음. 마암당을 지은 은계(隱溪) 이진우(李璡雨, 1897~1954) 선생의 앞집에 살았고, 현재는 그분의 손부가 살고 있음. 젊었을 때 지리산을 유람하고 말년에 읽어보기 위해 와유강산을 저술함. 저술 시기는 산청의 지명으로 미루어 1914년 이후로 추정함. 내용은 지리산 10勝地와 9奇, 18景을 읊은 3(4).4조의 4음보 가사 형식임. 펜으로 쓴 필사본으로 마천 읍내 당흥 부락 김수태(92세 1929생) 어르신이 17세 때..

臥遊江山(와유강산) 上無住庵(상무주암)

臥遊江山(와유강산) 上無住庵(상무주암) 上無住庵(상무주암) 林應澤(임응택, 1879~1951) 無住高庵住碧空 : 상무주암의 높은 암자가 벽공에 머물러 鐘聲只在白雲中 : 쇠북소리는 다만 흰구름 가운데 있구나. 是非不入烟霞界 : 옳고 그름이 연하선계에 들지 아니하니 掃却塵情立晩風 : 속된 마음 쓸어내고 저녁 바람에 서 있구나. 출처 : 두류산인

삼송공 와유강산 오자와 탈자

삼송공이 하동 악양에서 인용한 시 인데 필사본에는 오자가 많습니다. 일두와 탁영의 지리산 유람은 이 일이 있기 1년 전인 1489년 4월에 이뤄졌다. 함양에서 출발해 산청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뒤 하동으로 내려오는 14박15일의 장기여행이었다. 마지막 날 그들은 악양호(현 동정호)에서 뱃놀이를 하며 시를 지었다. 風蒲獵獵弄輕柔 : 바람결에 부들잎 살랑살랑 흔들리고 四月花開麥已秋 : 사월 화개땅엔 벌써 보리 익었네 看盡頭流千萬疊 : 두류산 천만 봉우리 다 구경하고 孤舟又下大江流 : 외로운 배 타고 다시 큰강 따라 내려가네 반면 탁영의 마음은 물보다 산에 가 있다. ' 滄波萬頃櫓聲柔 : 푸른 물결 드넓고 노 젓는 소리 부드러운데 滿袖淸風却似秋 : 소매 가득한 맑은 바람은 가을 같구나 回首更看眞面好 : 고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