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27

김종직의 유두류기행시 영신암(靈神菴) 복원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영신암(靈神菴) 복원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에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마천은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침묵하는 사람」,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아첨하고 동조하는 사람」, 나처럼 상황 파악도 못하고 「사슴을 사실대로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2006년 10월 중순 세석산장 앞 습지의 영신사지라는 곳을 다녀온 후, 의문이 들어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두류 기행시를 읽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2008년부터 점필재길 답사를 시작하였다. 영신암 시 1, 2구 "창불대와 거상곡을 산책하고 돌아오니/노선사의 방장은 석문이 열려있네"에서 1472년 8월 17일 창불대에서 영신암 석문까지 점필재의 ..

174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등구재(211123~24)

174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등구재(211123~24) 김종직은 백무동 야묘(野廟)에서 말을 타고 실택리를 지나 군자사 입구 임천에서 일행들과 헤어진다. 해공은 군자사로 가고, 법종은 묘정사로 가고, 조태허 유극기 한백원은 용유담(龍游潭)으로 유람하러 간다. 김종직은 등구재로 가는데 의탄 방향이 아닌 실상사 방향으로 산내면 백일리→중황리(상황마을)→등구재→창원마을→소리목재(약초길)→등구마을(물레방아산장)→오도재→지안재→함양관아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한다. 만약 김종직이 마천→의탄→창원마을→등구재→산내→인월을 경유하여 팔랑치를 넘었다면 너무 멀리 돌아가기 때문이다. 당시 함양에서 인월, 운봉, 남원으로 가는 길은 팔랑치가 아니고 지안재-오도재-등구재가 주통로였다. 답사팀(박성섭님)이 유두류록 코스 ..

김종직의 유두류기행시 숙고열암(210117)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숙고열암(210117) 추석 전날 밤, 바람 한 점이 없는 고열암에서 서산에 해는 지고 마을의 불빛이 나무 사이로 들어왔다. 이따금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깼다. 어느 시인이 '후두득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라고 했던가.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뜨는 것이겠지. 아마 임을 기다리는 심정이 이와 같으리라. 드디어 한줄기 월광이 상내봉을 넘어 숲을 뚫고 들어오더니 금방 사위가 밝아졌다. 젤트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함양 관아를 출발한 김종직 선생이 피곤함에 포단을 빌려 잠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난 시간이다. 시계를 보니 9시가 조금 넘었다. 고열암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와 달빛 아래 서성이는 점필재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

김종직의 유두류기행시 선열암

김종직의 유두류기행시 선열암(2018.07.18) 선열암(先涅庵)을 여러 번 답사하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기행시 첫 수 선열암(先涅庵).... 2句 '雲根矗矗水泠泠(운근촉촉수영령)'의 詩句는 참으로 절묘하다. '따듯한 공기가 차가운 바위에 부딪혀 구름이 생기는 雲根(운근, 구름이 생기는 바위)', '기온의 차이로 바위에 이슬이 맺혀 높은 곳에서 톡,톡,톡 떨어지는 矗矗水(촉촉수)', '물방울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 泠泠(영령)'은 오직 점필재 선생만이 표현할 수 있는 詩語이다. 점필재 선생은 어떻게 자연의 현상과 사물의 미세한 미동까지,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리는 동심원과 그 소리의 파장을 감지하고 시어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나는 志原 박양준 선생을 만날 때마다 선열암(..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와 소림선방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와 소림선방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 2구 '少林禪'이 오역이라는 지적에 꼭대 님과 이재구 선생께 먼저 감사를 드린다. 내가 두 분에게 해명할 의무는 없지만, 순수한 오류의 지적이기보다는 비난과 비하의 인신공격이라고 생각되어 기록을 남긴다. 2008년 10월 경 고열암을 답사하고 고전번역원에서 원문을 다운로드하였다. 당시 온라인에 올라있는 자료는 오자가 있어서 유두류 기행시 영인본을 보고 블로그에 옮겼다. 선열암 시에서 냉냉(冷冷)은 영인본에 삼수변이 붙은 '깨끗한 물소리 영(泠)'이었다. 의논대 시에서 '호승'과 '소림선'을 몰라서 대둔산 석천암 천산(天山) 스님에게 물었고, 급기야 밤에 석천암으로 뛰어 올라갔다. '호승(胡僧)은 달마대사를 가리키고, 참선승의 의미입니..

가객님의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발간을 송공합니다.

가객님의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발간을 송공합니다. 지리 99 가객님이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를 발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가객님보다 유두류록 답사를 늦게 출발했지만, 그 과정의 노고를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은 저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한시도 머릿속에서 유두류록이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거기에 대전의 이 아무개가 수년 동안 이곳저곳을 이러쿵저러쿵했으니 많은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탐구팀에 유두류록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습니까. 노를 젓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배를 타고 선장이 되어 15년을 넘게 항해한 것입니다. 유두류록 탐구는 강산이 변하고도 또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선생이 노년의 대부분을 쏟아부은 열정과 집념의 결정체라고 생각합니다. 그 노고를 누가 속속들이..

점필재의 의논대 기행시에 나오는 소림선방

점필재의 의논대 기행시에 나오는 소림선방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로(이하 점필재 길)'의 개방을 앞두고 여러 가지 논란과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 탐방로의 명칭은 탐방로 개방의 계획 단계에서 함양군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나머지 몇몇 오해는 수락석출로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 오해가 풀릴 것이다. 함양군에서 한신 지곡, 두류 능선, 점필재 길 세 가지 안을 놓고, 추진하는 분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들을 설득하여 백무동과 추성동에서 점필재 길로 양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탐방로 명칭에 대해서는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로’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지리 99가 맞는 말이다. 서부 경남 신문에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소림 선방이 없다.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의 국역이..

화장산 아래 화암과 화장사 그리고 용유담(201016)

화장산 아래 화암과 화장사 그리고 용유담(201016) ▣ 일 시 : 2020년 10월 16일(금) ▣ 코 스 : 화암-화장사지-엄천사지-용유담-신농약초원 ▣ 인 원 : 2명(산영 조박사님) ▣ 날 씨 : 맑음 김종직은 1470년 12월 28일 함양군수로 임명되어 1471년 1월 부임하여 승문원(承文院)의 참교(參校) 겸 지제교(知製敎)로 임명되는 1475년 12월 28일까지 함양군수를 지낸다. 함양군수로 부임할 때 사숙재 강희맹이 한양에서 전송시를 지어 송별을 한다. 사숙재가 점필재를 각별하게 아낀 것은 점필재의 백형과 과거준비를 함께 했던 인연이 있었다. 1474년 여름 강희맹이 양부 강순덕(姜順德)의 상을 당한다. 그해 겨울 함양 화장산 아래 제계리 별장으로 이주한다. 사숙재(1424~1483)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