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청권사 16

歧陽書院刱建事蹟과 臨湖靑巖兩書院回文

歧陽書院刱建事蹟과 臨湖靑巖兩書院回文 歧陽書院刱建事蹟(기양서원창건사적) 正廟1)丙寅士論齊發 以謂靖孝公李先生 以王室懿親 托跡禪家2) 放浪山水 取諸文身適越之義 則吾夫子所謂身中淸廢(결자)中權3)者 又況先生文雅之質 孝悌之行 好學不倦 儉約自持 處高而厭華 有至德而晦迹 列聖朝褒揚4)之典 極其曠絶5) 而終無士林尊奉之所 慨然之甚 今者祀孫移寓他鄕 廟宇巋然 以前日主鬯之廟 爲今日俎豆之所 義理當然云 정묘(正廟:정조→純廟:순조) 병인년(1806)에 사림의 의론이 일제히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효공(靖孝公) 이선생(李先生)은 왕실의 지친(至親)으로서 불가에 자취를 의탁하여 산수를 방랑하며, 옛날 주나라 태왕(太王)의 아들 중옹(仲雍:虞仲)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몸에 문신을 새기고서 남쪽 월(越)나라로 떠난 의리를 취하셨으니..

오태 효령대군 영당 제향 봉행(240325)

오태 효령대군 영당 제향 봉행(240325) ▣ 일 시 : 2024년 03월 25일(월) ▣ 장 소 : 오태 효령대군 영당(경북 상주시 공검면 오태리 789) ▣ 날 씨 : 흐림 효령대군(孝寧大君) 영당(影堂) 비 이곳은 조선왕조(朝鮮王朝) 태종대왕의 제2 왕자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영정을 모신 영당(影堂)입니다. 대군(大君)께서는 태조 5년(1396)에 誕生하시고 성종 17년(1486)에 卒하셨으며 휘(이름)는 보(補)요, 자(字)는 선숙(善淑), 아호는 연강(蓮江)이시고, 시호(諡號)는 정효(靖孝)이시며 종묘(宗廟) 공신당(功臣堂)에 배향(配享)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9대 종손 성민(聖民) 공이 난을 피하여 이곳 영남 함창(咸昌) 땅에 들어와 정착, 가묘(家廟)에서 대군의 제향을 드리자 숙종 12..

孝𡨴大君 房 下執事(효령대군 방 하집사)

孝𡨴大君 房 下執事1) 戊子流月2) 初吉3) 逋人4)金時習拜手 무자년(1468) 6월 1일 포인(逋人) 김시습(金時習)은 절(拜)을 올립니다. 時習乙酉春 卜築5)金鰲山6) 若將終身 三月晦 伏承以從馬馳召辱賜書曰 聖上重新古弘福寺 命名圓覺 僕薦于聖上 聖上命召赴慶會 勿𨒫(逆)来(來)赴 時習於是 改舊勝會7) 嘗8)剋日9)上京 以參嘉會馳賀 便回以終餘年 저는 을유년(1465) 봄 금오산(金鰲山)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여생(餘生)을 마치려 하였습니다. 3월 그믐날에 종자가 말을 타고 달려와 부르시며 보내신 편지를 엎드려 받았는데, 그 편지에 “성상께서 옛 홍복사(弘福寺)를 중수(重修)하여 원각사(圓覺寺)라 명명(命名)하시고, 제가 성상께 공을 천거하였더니, 성상께서 경사스러운 모임에 부르라고 명하시었으니, 물리치지 말..

梅月堂 道案 呈納(매월당 도안 정납)

梅月堂 道案 呈納[매월당에게 드립니다.] 戊子之午月1) 二十一日 𥙷 頓2) 金鰲3)之別 倐已星回 戀思可量 무자년(戊子年. 1468) 5월 21일에 보(𥙷)가 안부를 묻습니다. 금오산(金鰲山)에서 작별한 뒤로 벌써 해가 바뀌었으니, 그리운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今春聖上 重新弘福寺4) 命名圓覺 今將落成 僕以説卿5)為士林領袖 薦于聖上 聖上命召慶會 勿𨒫(逆)来(來)赴 區區者6)㪽(所)望 금년 봄에 성상(聖上)께서 홍복사(弘福寺)를 중수(重修)하여 원각사(圓覺寺)라 명명(命名)하시고, 이제 곧 낙성(落成)하려 합니다. 제가 열경(悅卿)을 사림(士林)의 영수(領袖)로 여겨 성상께 추천(推薦)하였더니, 성상께서 공을 경사스러운 모임에 부르라고 명하시었으니, 물리치지 말고 올라오시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圓覺寺 御製 誡文(원각사 어제 계문)

圓覺寺 御製 誡文(원각사 어제 계문) 圓覺寺 瑞氣放光 甘露須陀味 雨花現相 원각사에 상서로운 기운이 빛을 발하고, 감로(甘露) 수타미(須陀味)와 우화(雨花)가 나타나니(現相), 舍利分身 平等道塲 同叅 사리(舍利)가 분신(分身)된 평등하게 법식을 베푸는 도량(원각사) (重修)에 함께 참여하였다. 凡我同契之人 旣生淨信 우리 함께 맺어진 사람들은 이미 청정한 믿음이 생겼으니, 勿作妄惑 妄惑生處 皆是緣塵 망령되이 혹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망령되이 혹하는 마음이 생기는 곳은 모두 속세의 인연(塵緣)이다. 緣塵之聚 重濁成山 畢竟限碍 輕淸無日 속세의 인연(塵緣)이 모여 무겁고 탁한 것이 산을 이루면, 마침내 자유롭지 못할(限碍) 것이요, 산뜻하고 맑은 날이 없을 것이다. 若欲除之 畚鍤並用 만약 진연(塵緣)의 덩어..

강진 만덕사 시주기(康津 萬德寺 施主記)

강진 만덕사 시주기(康津 萬德寺 施主記) 全羅道康津 在田畓 幷十結庫乙 同地萬德寺良中 爲奉 祖宗長年 水陸寶長 以納寺爲如乎 代遠將廢水陸失 予夲意爲去乙等 予之已物 不可虛意是昆 子孫中 以推尋耕食 以福予意 幸甚甚 전라도 강진에 전답이 있는데, 합하여(幷) 10결(結)인 곳을 하나의(同) 땅으로 만덕사(萬德寺)에 신위를 봉안하여, 조종(祖宗)이 영원하길 비는 수륙재(水陸齋)의 밑천으로 절에 헌납(獻納)하였는데, 대(世)의 수(數)가 멀어져, 장차 수륙재를 폐지하여 잃어버리면, 나의 본뜻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미 시주한 재물이 헛된 뜻이 될 수 없으니, 자손 중에서 이를 찾아 농사를 짓고 살면서 나의 뜻에 맞게 하면 퍽(무엇보다) 다행이겠다. 成化十八年 七月 二十日 성화(成化) 18년(1482, 성종 13년) 7..

보은 속리산 복천사기(福泉寺記)

보은 속리산 복천사기(福泉寺記) 山之靈 不在於高大 有㝫籃巨刹 擅形勝於其中則靈 寺之名 不由於崇麗 有高流宿德 隆道譽於其間則名 산의 신령함은 높고 큰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웅장한 거찰(巨刹)이 있고 그 안에서 지세가 뛰어난곳(形勝)을 차지하면 신령스럽다. 절의 이름은 높고 화려함(崇麗)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명망(名望)과 덕망(德望)이 높은 중이 있고 그 사이에서 불도의 명예(道譽)를 높이면 이름이 난다. 至若有稀今罕古之偉跡 曠世難逢之奇會 則向所謂㝫籃巨刹之擅勝 高流宿德之廣譽 曾不足爲喻 而其所以流於後世者 爲益無窮矣 俗離山雄跨忠淸慶尙兩道之境 浮屠氏多屋於其間 福泉寺正在山之中 고금에 드문 위대한 행적(偉跡)과 세상에 매우 드물고(曠世) 만나기 어려운 기이한 기회가 있음에 이르면 이른바 웅장한 거찰(巨刹)이 명승..

觀音現相記(관음현상기)

觀音現相記(관음현상기) 輸忠衛社協贊 靖難佐翼功臣 崇政大夫 中樞院使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事 世子右賔客 兼成均大司成 寧城君 臣崔恒 奉敎撰 수충위사협찬(輸忠衛社協贊) 정란좌익공신(靖難佐翼功臣) 숭정대부(崇政大夫) 중추원사(中樞院使)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세자우빈객(世子右賔客) 겸 성균대사성(兼成均大司成) 영성군(寧城君) 신(臣) 최항(崔恒)이 임금님의 교지를 받들어 지음. 天順六年十月戊子 上與中宫世子 狩于亰畿 庚寅 駐蹕砥平縣彌智山下 留大軍 只率獅子控弦等數衛 幸上院寺 寺乃孝寕大君 𥙷願刹也 1462년 10월 27일 (세조 8년, / 천순 육년 시월 무자) 임금님께서 중궁(中宫)·세자(世子)와 함께 경기(亰畿)지방에 순수(巡狩)를 나가셨다가, 10월 29일(庚寅) 지평현(砥平縣) 미지..

일본 지온인(知恩院) 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화기(畵記)>

일본 지온인(知恩院) 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 恭聞 應念度生 大聖圓具 念稱者 善導九品 造畵者 頓滅千灾 삼가 들으니, ‘염원에 감응하여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대성(아미타불)께서는 원만히 구족(具足)하시어 염불하는 자를 구품(九品)의 극락세계로 잘 이끄시고, 불화(佛畵) 그리는 자는 온갖 재앙(灾殃)을 완전히 없애주신다.’라고 합니다. 故我爲亡嚴君 敬摹尊幀 勸諸檀信 利洽生亡 事始扵乙酉九月 日功訖于當年十二月 그러므로 저는 돌아가신 아버님을 위해 공경히 불화(佛畵)를 모사(模寫)하도록 하고, 여러 보시자들(檀信)에게 권하여 이익이 이승과 저승의 중생들에게 젖어 들도록 하였습니다. 불화(佛畵) 그리는 일은 을유년 9월에 시작해서 날로 공들여 그해 12월에 마쳤습니다. 伏願 三殿𠔥及 俾我先君曁諸檀喜 遠近戚屬 以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