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청권사

오태 효령대군 영당 제향 봉행(240325)

도솔산인 2024. 3. 25. 16:24

오태 효령대군 영당 제향 봉행(240325)

 

 

 일 시 : 2024 03 25(월)

 장 소 : 오태 효령대군 영당(경북 상주시 공검면 오태리 789)

 날 씨 : 흐림

 

 

 

  효령대군(孝寧大君) 영당(影堂)

 

  이곳은 조선왕조(朝鮮王朝) 태종대왕의 제2 왕자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영정을 모신 영당(影堂)입니다. 대군(大君)께서는 태조 5(1396)誕生하시고 성종 17(1486)하셨으며 휘(이름)는 보(), ()는 선숙(善淑), 아호는 연강(蓮江)이시고, 시호(諡號)는 정효(靖孝)이시며 종묘(宗廟) 공신당(功臣堂)에 배향(配享)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9대 종손 성민(聖民) 공이 난을 피하여 이곳 영남 함창(咸昌) 땅에 들어와 정착, 가묘(家廟)에서 대군의 제향을 드리자 숙종 12(1686) 외예(外裔) 10대손 경상감사 이규령(李奎齡)이 공검면 율곡리에 사당을 건립, 위패를 모시었고 영조 13(1737) 나라에서 대군 묘하에 사당 청권사(淸權祠)를 세워 동 19(1743) 위패(位牌)가 청권사로 이안(移安)되었습니다.

 

  순조 6(1806) 영남 유림들이 공검면 구 사당 자리에 기양서원(岐陽書院)을 건립 讓寧, 孝寧 兩 大君儒林에서 倂享하시었고 그 후, 서원이 철폐되었으며 고종 19(1882) 대군의 위패가 청권사에서 다시 문경시 가은읍 왕릉리를 거쳐 이곳 오태(五台)로 이안된 후 서기 1972830일 대군의 묘소와 사당이 서울지방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서기 1973325일 위패를 묘하 청권사로 다시 봉안(奉安)하였습니다.

 

  오랜 歲月 大君位牌를 모시던 祠宇를 길이 保全하기 위하여 大君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매년 제향을 받들고 있으며, 서기 1988년 재실 청은재(淸隱齋)를 신축하고, 서기 1995년 영당과 삼문을 중건하였습니다. 이에 그 來歷을 돌에 새겨 영당 앞에 세웁니다.

 

서기 20019월 일

 

社團法人 淸權祠(全州李氏 孝寧大君派宗會) 謹敬竪立

 

 

 

  ■ 미선(尾扇)나무

 

  하얀색 꽃이 3~4월 사이에 피며, 꽃 모양이 개나리와 거의 흡사하다. 줄기마저 개나리처럼 이리저리 뻗으면서 자라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예쁜 모양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미선나무를 찾는 이유는 바로 한번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그윽한 향기에 있다.

 

  또한 이름의 유래가 된 부채 모양의 열매가 마치 하트처럼 생겨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쉬운 것은 개나리처럼 꽃이 지고 나면은 관상용으로 보기 좋은 식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며, 충청북도 진천과 괴산군, 영동군, 전라북도 부안의 전석지나 야산에 자생지가 있다. 1~1.5m 정도의 크기로 자라며,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몇백 년은 살 수 있을 정도로 수명은 길다고 한다.

 

  한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으나, 이후 멸종위기종 개정 때 자생지의 확대와 인공 증식으로 인해 불법 채취의 가능성이 줄었다는 이유로 멸종위기종이 해제되었다. 흰 꽃을 피는 미선나무 이외에, 상아색 꽃이 피는 상아미선나무, 분홍색 꽃이 피는 분홍미선나무, 꽃받침이 연한 녹색인 푸른미선나무가 있다. 이들의 특징은 미선나무와 똑같고 단지 색깔만 다르다. 꽃말은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이다.

 

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