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청권사

孝𡨴大君 房 下執事(효령대군 방 하집사)

도솔산인 2024. 1. 22. 21:39

 

 

孝𡨴大君 房 下執事1)

 

戊子流月2) 初吉3) 逋人4)金時習拜手

 

무자년(1468) 6월 1일 포인(逋人) 김시습(金時習)은 절(拜)을 올립니다.

 

時習乙酉春 卜築5)金鰲山6) 若將終身 三月晦 伏承以從馬馳召辱賜書曰 聖上重新古弘福寺 命名圓覺 僕薦于聖上 聖上命召赴慶會 勿𨒫(逆)来(來)赴 時習於是 改舊勝會7) 嘗8)剋日9)上京 以參嘉會馳賀 便回以終餘年

 

저는 을유년(1465) 봄 금오산(金鰲山)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여생(餘生)을 마치려 하였습니다. 3월 그믐날에 종자가 말을 타고 달려와 부르시며 보내신 편지를 엎드려 받았는데, 그 편지에 “성상께서 옛 홍복사(弘福寺)를 중수(重修)하여 원각사(圓覺寺)라 명명(命名)하시고, <이제 곧 낙성하려 합니다.[今將落成] 누락됨> 제가 성상께 공을 천거하였더니, 성상께서 경사스러운 모임에 부르라고 명하시었으니, 물리치지 말고 올라오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에 옛 절을 중수하여 낙성하는 성대한 모임에 날을 잡아 상경(上京)하여 아름다운 모임에 참석해서 하례(賀禮)를 올리고 곧바로 금오산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치고자 하였습니다.

 

半途復命召 固辭陳情 幷引時習旣隱鰲峯 甘分寂寞 忽奉寵辱華簡 內兼奉聖旨 不敢以疾病辞 馳賀盛會 浩然將歸 再蒙眷札 惶悚無地

 

그런데 중간에 다시 명하여 부르시니, 굳이 사양하며 저의 사정을 진술합니다. 아울러 말씀드린 대로 제가 이미 금오산(金鰲山)에 은거(隱居)하여 적막한 생활을 분수로 달게 여기고 있습니다, 문득 영광되게 보내주신 편지를 받았는데, 그 안에 성지(聖旨)를 받들었다고 아울러 말씀하셨으니, 제가 감히 질병으로 사양할 수 없어서 성대한 모임에 하례를 올리고 미련 없이 돌아오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내주신 서찰을 받으니,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但以時習夙遭罪釁 慈母見背10) 幼失鞠育11)之恩 守墳奠祭 苫塊12)依制 遘此宿疾 每扵(於)寒熱 輒復増谻 初欲遊山翫水 報聖上水土之恩 年才立歲 膏盲迫身 不得遂願 是可憐也

 

다만 제가 어려서 불운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릴 때 길러주시는 은혜를 저버렸기 때문에 묘를 지키면서 제사를 올리고 거적을 깔고 흙덩이를 베고서 상제(喪制)를 따르다 보니, 이런 고질병을 만나 한열(寒熱)이 날 때마다 번번이 더욱더 지칩니다. 처음에는 산수(山水)를 유람하면서 성상의 국토에서 편안히 사는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는데, 나이 겨우 30세에 몸에 고질병이 생겨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점이 가련합니다.

 

伹南方地暖 僅可安軀 已結草茨 已養沈疴者 有年 今蒙勤誨13) 載惧(懼)載感 受命如京 然隨例受恩 旣僭越吾分 而疾病之軀 安得勉強動止也 故不敢承命 扶輿起臥 行至半途 伏乞許嚴光14)長往之亢節 軀蒙懷璉遂閒之明敎 曲憐垂慈 棄置山野

 

다만 남쪽 지방은 따뜻하여 겨우 몸을 편안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풀을 엮어 지붕을 덮었으며, 이미 뿌리 깊은 병을 치료한 것이 몇 해나 되었습니다. 이제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서 황공하고 감동하여 명을 받아 한양에 가려고 하오나, 관례에 따라 은혜를 받은 것이 이미 저의 분수에 넘치는데 병든 몸으로 어찌 억지로 거동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다가 억지로 몸을 부축하여 일어나 길을 나서 중도에 이르렀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엄광(嚴光)이 멀리 떠나간 높은 절개(節介)를 허락하여 이 몸이 타고난 자질을 품고 한가한 삶을 이룰 수 있는 밝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굽어 불쌍히 여겨 자애(慈愛)를 베푸시어 산야(山野)에 머물게 하소서.

 

噫 草芥塵土 豈能補太山之一阿 潢汚行潦 不可巨海之一漚 謹攄懷 仰塵台鑑 餘不宣狀謝

 

아! 지푸라기나 흙덩이가 어찌 태산(太山)의 한 언덕에 보탬이 되겠으며, 웅덩이나 도랑의 물이 어찌 큰 바다의 한 파도에 보탬이 되겠습니까? 삼가 제 심정을 드러내 우러러 태감(台鑑)께 누(累)를 끼칩니다.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이며 답장을 올립니다.

 

注 1) 하집사(下執事) : 편지나 물건을 감히 직접 드리지 못하고 귀댁의 집사(執事)를 통해 드린다.

2) 유월(流月) : 유두(流頭)가 있는 달이라는 뜻으로, 음력 6월을 이르는 말.

3) 초길(初吉) : 음력 매달 초하룻날의 일컬음.

4) 포인(逋人) : 도피한 사람이라 자처하며 부조리한 현실과 단절하려 하는 사람.

5) 복축(卜築) : 살 만한 땅을 가려서 집을 지음.

6) 금오산(金鰲산) : 경상북도 경주(慶州) 남산의 봉우리 금오봉을 가리킴. 금오신화를 이 산에 있던 용장사에서 스님으로 7년 동안 머무를 때 썼기 때문이다.

7) 승회(勝會) : 성대한 모임.

8) 嘗(상) : ‘일찍이’가 아니고, ‘시험 삼아’의 의미로, ‘∼하려고 했다.’라는 뜻.(최석기 교수님)

9) 극일(剋日) : 날을 정해 잡아

10) 견배(見背) : 어버이를 여윔.

11) 국육(鞠育) : 어린 사람을 사랑하여 보살펴 기름. 양육.

12) 점괴(苫塊) : 거적과 흙덩이 베개라는 뜻으로, 부모의 상중에 있는 사람이 앉는 자리를 이르는말.

13) 근회(勤誨) : 근실한 가르침. 보내주신 편지

14) 엄광(嚴光) : 동한(東漢)시대의 은둔지사. 동한 광무제 유수(劉秀)의 절친한 친구로, 유수가 사를 일으켰을 때 그를 도왔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 즉위하자 이름을 바꾸고 부춘산에 은거 했다.

 

<최석기 교수님 교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