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비문정려 7

淸信女己未生李菩提性 故淑夫人桂陽李氏之壇

淸信女己未生李菩提性 故淑夫人桂陽李氏之壇 교사는 퇴직 후 평균 수명이 15년, 교수는 8년이라고 한다. 퇴직 후 4대 장애 요인이 있다. 첫째는 건강, 둘째는 빈곤, 셋째는 고독, 넷째는 무료이다. 퇴직을 하고 2년 차가 되었으니 평균 수명에 대비하면 남은 시간이 13년이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겠지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퇴직 후 건강 검진을 하니 당 수치가 올라가 당뇨약과 전립선 약을 먹고 있다.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한다. 확실하게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환승한 셈이다. 지난 1년을 바쁘게 보냈다.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이 마천면지를 집필한다고 180일을 지리산에서 보냈다. 많은 석각과 비문을 만났고 지명의 유래와 전설을 접했다. 지리산 마천대학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

효열부김해김씨사적비(孝烈婦金海金氏事蹟碑)

효열부김해김씨사적비(孝烈婦金海金氏事蹟碑)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陽丁마을(삼정리 산 35-5번지) 행적자 : 김해김씨 연대 : 1978년 [개요] 부군이 생감을 먹다가 급체로 죽음에 부인께서 부군을 따라간다고 목을 매어 죽는다고 몇 차례 하였음. 이 비석은 효부 열녀의 행실을 귀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1929년 당시 각 유림단체에서 인정하는 포창완의문(褒彰完議文)에 의해서 건립한 것이다. 孝烈婦金海金氏事蹟碑 謹按經學院表彰文에 孝烈婦 金海金氏가 있으니 부인은 文敏公 후손 휘 익손의 맏따님으로 平山人 장절공 후손 申龍會 호 松雲의 처이다. 부인이 시부모에세 정성으로 효양하고 이웃에게 돈후하니 이웃간에 모두 賢婦임을 칭찬하였다. 부인이 28세 때 부군께서 생감을 자시고 急滯로 逝去함에 갑작스..

의병장석상용지송공비(義兵將石祥龍之頌功碑)

의병장석상용지송공비(義兵將石祥龍之頌功碑)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6번지 두류암(頭流巖) 행적자 : 의병장 석상용 연대 : 일제강점기 입석시기 : 1921년 1월 10일 세움 [개요] 일체 치하에서 그의 셋째 아우 채용(彩龍)씨가 대담하게도 장군의 공을 기린 33자의 글을 써서 비를 세웠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의병활동 공적비는 전국에서 하나뿐이라고 史學家들은 말하고 있다. 의병장 석상용지송공비 공의 자는 용현(龍見)이다. 세칭 비호장군이라 칭한다. 장군은 용기와 힘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국가가 위망(危亡)에 처한 것을 보고서, 지리산 중에서 의병(義旅)을 일으켜 왜병을 참(斬)한 것이 매우 많았다. 마침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5년이 지난 후 석방되어 돌아왔다. 이로 인하여..

부자암(父子岩)과 비리내(飛離奶)골 이야기

부자암(父子岩)과 비리내(飛離奶)골 이야기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三丁里) 하정(下丁) 마을에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마을에는 선유정(仙遊亭)이 있는데,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에서 선유정(仙遊亭)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선유정(仙遊亭) 입구의 바위에 석문암(石門巖) 석각과 그 아래에 '선녀가 승천한 바위'라고 하여 선녀승천유지(仙女昇天遺址)를 암각한 명문이 있다. 또한 선녀가 목욕하였다는 구시쏘(槽沼)가 있다. 1976년 송암(松菴) 정창학(鄭昌學) 선생의 선유정기(仙遊亭記)에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옛날 삼정리 하정마을에 사는 나무꾼 인걸(人傑)이 선녀들이 구시쏘(槽沼)에서 목욕하는 것을 엿보다가 아미(阿美)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다.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산 온양 향교 하마비(선과문답)

아산 온양 향교 하마비(선과문답) 下馬碑의 서체는 예서입니다. 禪覺王師碑에서 예서로 쓴 자형을 취했는데, 下는 전서 자형의 획을 취하고 한 획을 더하여 공간을 확장하고 보충하였습니다. 馬는 漢唐公房碑 飮牛馬六畜와 馬氏專文의 고유한 글자를 만들어 취하여 예서 필의로 표현했습니다. 하마비의 글자는 異體字(이체자)를 모아 隸書體로 集字하고 刻한 碑입니다.(지원서예전각연구실 박양준 교수)

府使朴侯載文永世不忘碑

부사박후재문영세불망비(府使朴侯載文永世不忘碑)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마을 입구 행적자 : 부사 박재문(府使 朴載文) 연대 : 乾隆 38년 癸巳(영조 49년, 1773년 ) 11월 일 建 [개요] : 부사박후재문영세불망비(府使朴侯載文永世不忘碑) 부사 박재문의 영세불망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마을 입구에 있다. 석각의 마모가 심해 판독하기 어렵다. 입석 연대는 뒷면에 새겨져 있다.

0전도사여공의순시혜비(前都事余公意淳施惠碑)

전도사여공의순시혜비(前都事余公意淳施惠碑) 无私存公 : 사심없고 공정하게 베풀어주니 惠先貧窮 : 은혜가 빈궁한자에게 먼저 입도다. 焚券厚誼 : 채권 문서를 불사르니 정이 두텁고 餉市高風 : 배부르게 먹이니 높은 풍조로다. 互長赫世 : 공덕이 길이 뻗어 세상에 빛나니 侌隲蒼穹 : 하늘의 신선 경지에 올라갔도다. 嶠南湖北 :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에서 萬口頌同 : 만인의 입이 같이 칭송하도다.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도계공원 행적자 : 전 도사 여의순(余意淳, 1842~1895) 연대 : 1919년 건립일 : 1919년(유림에서 마천면 가흥리 성황당 암석에 새김) 이건일 : 2011년 6월(마천 면민들이 도계공원에 비를 세움) [개요]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한 공덕비. 1919년 마천 유림에서 마천면 가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