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어우당길 16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기담(妓潭)과 사정(獅頂)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기담(妓潭)과 사정(獅頂) ▣ 일 시 : 2021년 08월 01일(일) ▣ 코 스 : 세이암-신흥교-사자곡-사정-기담(석각)-독가-평지교-대성교 ▣ 인 원 : 2명(조봉근님) ▣ 날 씨 : 흐림 1611년 유몽인(柳夢寅)의 유두류산록과 1651년 오두인의 두류산기에 기담(妓潭)이 등장한다. 유몽인 길 전구간을 부분 답사하면서 마지막 남은 지명이 기담(妓潭)과 사정(獅頂)이다. 기담과 사정은 의신사(義神寺)가 있는 의신마을과 신흥사(神興寺)가 있는 신흥마을 사이에 있다. 1651년 오두인(吳斗寅)의 두류산기를 읽어보면 포위망이 좁혀진다. (세이암을 지나) '왼쪽으로 길을 틀어 뒷 산등성이 오르니 길이 더욱 험하고 산세가 더욱 기이하다. 사자곡(獅子谷)에서 10리 정도..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呂公臺(여공대)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呂公臺(여공대) ▣ 일 시 : 2021년 07월 29일(목) ▣ 코 스 : 여공대-만월암-기담-와룡정-남창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1472년 김종직의 아홉 모롱이길, 1610년 박여량의 초령길에 이어서 1611년 유몽인의 환희령과 와룡정 등 매 고비마다 단톡방에서 의사소통과 토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몽인이 1611년 4월 5일 의신사에서 자고 4월 6일 홍류동으로 내려오면서 사정(獅頂)과 기담(妓潭), 만월암(滿月巖)과 여공대(呂公臺)를 지난다. 2주 전 일요일 칠불암을 다녀오면서 계곡을 내려다보았지만 숲이 우거져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차를 돌려 황산비전과 혈암(피바위)을 보고 백장사에서 매동마을로 내려가는 옛길을 확인하였다...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남창(南倉)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남창(南倉) ▣ 일 시 : 2021년 05월 23일(일) ▣ 코 스 : 쌍계사-화개-와룡정(?)-남창(구례 산동면)-숙성치-용담-남원관아(남원 용담초교) ▣ 인 원 : 2명(김문광님) ▣ 날 씨 : 맑음 1611년 당시 현 구례군의 산동면(산동방)과 광의면(소의방)은 남원부 관할이었다. 쌍계사를 출발한 유몽인이 4월 7일 하룻밤 묵은 남창(南倉)은 소의방(㪽義坊, 현 구례군 광의면)에 있었다.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신·구남창(新·舊南倉)에 대한 기록이 있다. 1750년 해동지도의 남원부 지도와 1871년 호남읍지(규12175) 남원부 지도를 보면 소의방(㪽義坊, 현 구례군 광의면) 지역에 구남창(舊南倉), 수지방(水旨坊, 현 남원시 ..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남원 관아에서 백장사까지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남원 관아에서 백장사까지 ▣ 일 시 : 2021년 04월 15일(수) ▣ 코 스 : 남원용성초교-목동재간당-산동면사무소-번암-황산비전-혈암 ▣ 인 원 : 2명(김문광님) ▣ 날 씨 : 맑음 ▶1611년 어우당 유몽인 선생의 [두류산록] 지리산 유람일정 • 2/23(한식) : 한식이 가까울 무렵, 승주(昇州) 수령 순지(詢之) 유영순(柳永詢)과 재간당에서 만나 두류산 유람 약속. • 3/27 : 승주(昇州:순천) 수령 순지(詢之) 유영순(柳永詢) 만남 • 3/28 : 남원관아→김화의 재간당(1박) • 3/29 : 재간당→반암→운봉 황산 비전→인월→백장사(1박) • 4/1 : 백장사→황계→영대촌→흑담→환희령→내원→정룡암(1박) • 4/2 : 정룡암→월락동→황혼동→와곡→갈월령→영..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흑담과 환희령(210202)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흑담과 환희령(210202) ▣ 일 시 : 2021년 02월 02일 ▣ 코 스 : 소동폭포 우회길-환희령-흑담-도탄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어우당 유몽인은 1611년 2월 초에 용성(龍城, 남원) 군수로 부임한다. 한식(2.23)이 가까울 무렵 용성(남원) 목동 선영에 성묘를 온 승주(昇州, 순천) 군수 순지(詢之) 유영순(柳永詢)을 재간당에서 만나 지리산 유람을 약속한다. 3월 27일(양 5.월 9일) 유영순을 만나 28일 진사 김화(金澕)의 재간당(在澗堂)에서 1박을 한다. 29일 재간당을 출발하여 요천을 거슬러 반암(磻巖)과 황산 비전(碑殿)을 거쳐 백장사에서 하루를 묵는다. 유람에 동행한 사람은 용성(龍城) 수령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승주..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전문)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전문) ▣1611년 어우당 유몽인 선생의 [두류산록] 지리산 유람일정 • 2/23(한식) : 한식이 가까울 무렵, 승주(昇州) 수령 순지(詢之) 유영순(柳永詢)과 재간당에서 만나 두류산 유람 약속. • 3/27 : 승주(昇州:순천) 수령 순지(詢之) 유영순(柳永詢) 만남 • 3/28 : 남원관아→김화의 재간당(1박) • 3/29 : 재간당→반암→운봉 황산 비전→인월→백장사(1박) • 4/1 : 백장사→황계→영대촌→흑담→환희령→내원→정룡암(1박) • 4/2 : 정룡암→월락동→황혼동→와곡→갈월령→영원암→장정동→실덕리→군자사(1박) • 4/3 : 군자사→의탄촌→원정동→용유담→마적암→송대→두류암(1박) • 4/4 : 두류암→석문→옹암→청이당→영랑대→소년대→천왕봉→향적암(1박) • ..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을 좇아서(내령~부운)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을 좇아서(내령~부운) 4월 1일 경오일. 동행한 사람들은 각자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고 새끼로 동여매고서 남쪽으로 하산하였다. 물가 밭두둑을 따라 굽이굽이 난 길을 가니 큰 냇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황계(黃溪, 橫溪?)의 하류였다. 동네가 넓게 열리고, 돌이 구를 정도로 물이 세차게 흘렀다. 북쪽은 폭포이고 아래쪽은 못인데, 못 위의 폭포수(소동폭포?)는 노하여 부르짖는 듯 쏟아져 내리며 벼락이 번갈아 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아! 얼마나 장대한 모습인가. 길을 가다보니 푸른 소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철쭉은 불타듯이 붉게 피어 있었다. 남여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고 서서 쉬었다. 골짜기에 두세 집이 있는데 영대촌(嬴代村, 靈臺村?)이라 하였다. 닭이 울고 개가 짖..

1611년 어우당 유몽인의 두류산록에 나오는 석문

1611년 어우당 유몽인의 두류산록에 나오는 石門 지난 3월 초 남명 선생의 13대 후손인 산영(山影) 조박사님과 니사재 송월당 선생의 18대 후손 칠성(七星)님과의 만남은 유람록 답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등산의 개념이 아닌 산촌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산길을 보게 되었고, 우마의 길과 사람의 동선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가축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돌로 포장을 하여 위에 흙을 덮고 축대를 쌓은 산길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고도 1,100m 고저 차이 50m 내외, 4km 넘게 이어진 아홉 모롱이(九隴) 길의 발견은 지리동부 유람록 복원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 길은 멀리 가야인들과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 영랑으로부터 1472년 점필재 김종직, 1610년 감수재 박여량, 1611년 ..

1611년 어우당 유몽인의 두류산록 답사를 시작하다

1611년 어우당 유몽인의 두류산록 답사를 시작하다. ▣ 일 시 : 2020년 01월 07일(화)~08일(수) ▣ 코 스 : 재간당→황산비전→백장암→황계→영대→흑담→환희령→내원→정룡암(대암)→와곡(답사 후 이동 삼정-설산 토굴) ▣ 인 원 : 홀로 ▣ 날 씨 : 비 독서삼여(讀書三餘)라는 말이 있다. 독서하기에 좋은 때를 뜻하는데, '겨울, 밤, 그리고 비 오는 날'을 독서삼여(讀書三餘)라고 한다. 어우당 유몽인 길의 답사를 앞두고, 화요일과 수요일 비 오는 날을 택해 그 첫 구간을 홀로 사전 답사를 하기로 하였다. 1611년 3월 28일 어우당 유몽인은 남원(용성) 관아를 출발하여 재간당에서 일행들과 만나 하룻밤을 留하고, 3월 29일 요천을 거슬러 반암→황산비전→인월을 지나 백장암에 이른다. 일단은 ..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마적사지(200505)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마적사지(200505) 선인들의 유람록 답사를 하면서 유람록에 등장하는 영신사와 지장암과 두류암은 관련 기행시로, 상류암은 박여량의 두류산일록과 성여신의 진양지를 읽고 접근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기 때문에 암자터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25일 고열암에서 만난 세진대 석각 강지주 선생의 증손 강재두 님에게 현 지리산길 지도에 나오는 마적사 터는 오류라는 말씀을 듣고, 지난주와 어제 신농 산삼약초원을 다시 찾았다. 참고로 현재 지리산길 지도에 마적사지라고 표기한 대종교 천진전에서는 마적도사의 전설과 관련된 용유담이 보이지 않는다. 마적사 지에 대한 판단은 몇 번 더 답사를 한 후로 유보한다. 두 번 답사의 결과로 분명한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