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어우당길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마적사지(200505)

도솔산인 2020. 5. 6. 08:09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마적사지(200505)

 

선인들의 유람록 답사를 하면서 유람록에 등장하는 영신사와 지장암과 두류암은 관련 기행시로, 상류암은 박여량의 두류산일록과 성여신의 진양지를 읽고 접근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기 때문에 암자터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25일 고열암에서 만난 세진대 석각 강지주 선생의 증손 강재두 님에게 현 지리산길 지도에 나오는 마적사 터는 오류라는 말씀을 듣고, 지난주와 어제 신농 산삼약초원을 다시 찾았다. 참고로 현재 지리산길 지도에 마적사지라고 표기한 대종교 천진전에서는 마적도사의 전설과 관련된 용유담이 보이지 않는다. 마적사 지에 대한 판단은 몇 번 더 답사를 한 후로 유보한다. 두 번 답사의 결과로 분명한 것은 지리산길 지도에서 마적사 터 또한 홍심에서 벗어났다.

 

 

4월 25일 고열암에서 소림 선방까지 동행하신 배규환님 (배찬 선생 후손?)

 

1. 마적사에 대한 고 문헌의 기록

 

 가.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 1611년 4월 3일 임신일.

아침에 출발하여 의탄촌(義呑村)을 지나는데 옛일에 대한 감개가 무량하였다. 옛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길을 따라 천왕봉으로 오른 것이다.(유몽인의 오류) 그분은 그분의 뜻대로 간 것이고 나는 나대로 가고자 하니 내가 굳이 이 길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곧장 3, 4리를 가서 원정동(圓正洞)닿으니 동천(洞天)이 넓게 열려 있었으며, 갈수록 경관은 아름다웠다. 용유담(龍游潭) 이르니 여러 층의 봉우리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흙이 적고 바위가 많았다. 푸른 삼나무와 붉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서있고, 칡넝쿨과 담쟁이넝쿨이 이리저리 뻗어 있었다. 일자로 뻗은 거대한 바위가 양쪽 언덕으로 갈라져 큰 협곡을 만들고 모여든 강물이 그 안으로 세차게 쏟아져 흘러드는데 하얀 물결이 튀어 올랐다. 돌이 사나운 물결에 깎여 움푹 패이기도 하고, 솟구치기도 하고, 우뚝 솟아 틈이 벌어지기도 하고, 평탄한 마당처럼 되기도 하였다. 높고 낮고 일어나고 엎드린 것이 수백 보나 펼쳐져 있는데 형상이 천만 가지로 달라서 다 형용할 수 없었다. 승려들이 허탄한 말을 숭상하여, 돌이 떨어져 나간 곳을 용이 할퀸 곳이라 하고, 돌이 둥글게 패인 곳을 용이 서리고 있던 곳이라 하고, 바위 속이 갈라져 뻥 뚫린 곳을 용이 뚫고 나간 곳이라 하였다.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모두 이런 말을 믿어, 이곳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땅에 대고 절을 한다. 사인(士人)들도 용이 이 바위가 아니면 변화를 부릴 수 없다.’고 한다. 나도 놀랄 만하고 경악할 만한 형상을 보고서, 신령스러운 동물이 이곳에 살았을 것이라 상상해보았다. 이 어찌 항아(姮娥)나 거대한 신령이 도끼로 쪼개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시험 삼아 시로써 증험해보기로 하고, 절구 한수를 써서 연못에 던져 희롱해 보았다. 얼마 뒤 절벽의 굴 속에서 연기 같지만 연기가 아닌 이상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여러층의 푸른 봉우리 사이로 우레 같은 소리와 번갯불 같은 빛이 번쩍하며 잠시 일어나더니 곧 사라졌다. 동행한 사람들이 옷깃을 거머쥐고 곧바로 외나무다리(略彴)를 건너 허물어진 사당 안으로 뛰어들어가 기다렸다. 잠시 후 은실 같은 빗줄기가 떨어지더니. 새알만큼 큰 우박이 쏟아지고 일시에 소나기가 퍼부었다. 좌중의 젊은이들은 숟가락을 떨어뜨릴 정도로 얼굴빛이 새파랗게 변했다. 한참 뒤 하늘에 구름이 뒤엉키더니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추었다. 드디어 언덕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젖은 풀잎이 옷을 적시고 등나무 가지가 얼굴을 찔렀다. 밀고 당기며 가시덤불을 헤치고 산허리를 비스듬히 돌며 올라갔다. 허리를 구부리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데, 죽순을 꺾고 고사리를 뜯느라 발걸음이 더뎠다. 동쪽으로 마적암(馬跡庵)을 지났다. 나뭇가지와 넝쿨을 잡고 겨우 올라가니 옛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산비탈을 기어오르다 보니, 열 걸음에 아홉 번은 넘어지며 힘들게 오르락내리락 하니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다리는 시큰거리고 발은 부르텄다. 강제로 끌려가 고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원망하고 성나는 마음을 아무리 꾸짖어 금하더라도 수그러들게 하기 어렵지만, 여럿이 길을 가거나 모여 앉아 쉴 때는 떠들고 웃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니, 어찌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즐겁지 않겠는가? 드디어 두류암(頭流菴)에 들어갔다. 암자 북쪽에 대()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 쪽을 바라보니, 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듯하여 저녁 내내 구경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비가 그치고 날이 활짝 개어 골짜기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매우 상쾌했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선방(禪房)으로 들어가 편히 쉬었다.

 

[원문]

壬申. 朝發. 經義吞村. 多感古焉. 昔者. 佔畢齋從此路向天王峰者也. 彼彼我我. 吾不必由斯. 徑行三四里. 至圓正洞. 洞天弘敞. 去去加勝. 至龍游潭. 層峯合沓. 皆多石少圡. 蒼杉赤松所攅聚. 復以蘿薜經緯之. 亘一大石. 劈兩厓成巨峽. 東江流其中而奔注之. 噴沫舂撞. 石爲猛浪所簸磨. 或成窪. 或成堆. 或呀然而成罅. 或坦然而成場. 高低起伏數百步. 萬千殊狀. 不可以殫形. 釋徒尙誕. 指石缺者爲龍抓. 石嵌圓者馬龍蟠. 石中裂谺谽者爲龍抉穿而行. 民之無知. 咸以爲信. 至此不覺頂禮. 爲士者亦曰龍不見石. 爲變化所使. 余亦目其可駭可愕. 想有神物宅玆. 豈夸娥巨靈能斧斤以成之者. 試以詩驗之. 乃書一絶投之淵. 以調戲之. 俄而. 厓窟中有如煙非煙之氣脈脈而昇. 亂峰蒼翠之間. 有殷殷之聲. 閃閃之光. 乍作而乍止. 同行者遂褰裳徑渡. 略彴走投于荒祠中以竢焉. 須臾雨足如銀繩. 飛雹大如鳥卵. 一䝰驟至. 座中年少輩色沮. 幾失匙焉. 移晷而後宇宙盤駁. 日脚漏於雲際. 遂緣厓而行迷失路. 入灌叢中. 草露濡裳. 藤梢刺面. 推且挽披荒榛. 仄轉山腹而登. 行行傴僂. 折篁笋採蕨芽. 行屩爲之滯淹. 東過馬跡庵. 攅柯挐蔓. 故基猶存. 夤緣山冢. 十步九折. 陟降之勞. 無不汗顔. 酸股繭足. 若使被人役使爲也. 其怨咨嗔怒. 雖呵禁難止. 而群行朋息. 嘻笑盈路. 豈非賞心之可娛也歟. 遂入頭流菴. 菴之北有臺. 直南而望之. 有飛瀑瀉于巖間. 如懸玉簾數十仞. 雖竟夕坐玩. 不覺其疲. 而會雨新晴. 谷風淒緊. 以爲過爽不可久淹. 遂入禪房安頓焉.

 

 나. 천령지와 함양군지의 기록

정수민의 천령지

마적사는 지리산에 있다. 고승 마적도사가 거처하던 곳을 이름하였다. 앞에는 유환대(瑜環臺)가 있고, 아래에는 수잠탄(水潛灘)이 있고, 수잠탄(水潛灘) 위가 곧 용유담(龍遊潭)이다. 지금은 없다. [원문] 馬跡寺在智異山 以高僧馬跡所居爲名 前有瑜環臺 下有水潛灘 灘上卽龍遊潭 今無

 

함양군지

 

마적사는 지리산에 있다. 고승 마적도사가 거처하던 곳을 이름하였다. 앞에는 유가대(瑜珈臺)가 있고, 아래에는 수잠탄(水潛灘)이 있고, 수잠탄(水潛灘) 위가 곧 용유담(龍遊潭)이다. 전부터 없었다. [원문] 馬跡寺在智異山 以高僧馬跡所居爲名 前有瑜珈臺 下有水潛灘 灘上卽龍遊潭 前無

 

瑜伽(珈)臺(유가대)에서 瑜伽(유가)는 요가(yoga)의 한역으로 보인다. 요가(yoga)를 검색해보니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순화시켜 심신을 단련하는 수행법.' 따라서 瑜伽(珈)臺(유가대)는 결가부좌하고 좌선할 수 있는 넓은 바위(너럭 바위)라는 의미로 풀어지는데 세진대 이전의 본래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다.

 

2. 답사 사진 자료

 

세진대(洗塵臺)
신농 산삼약초원 안에 위치한 바위(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용유담
신농 산삼약초원 안에 위치한 바위(대)
마적도사 우물
붉은 색이 옛길 601, 602, 604, 605번지가 마적사 터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