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어우당길

1611년 어우당 유몽인의 두류산록에 나오는 석문

도솔산인 2020. 5. 9. 08:03

1611년 어우당 유몽인의 두류산록에 나오는 石門

 

지난 3월 초 남명 선생의 13대 후손인 산영(山影) 조박사님과 니사재 송월당 선생의 18대 후손 칠성(七星)님과의 만남은 유람록 답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등산의 개념이 아닌 산촌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산길을 보게 되었고, 우마의 길과 사람의 동선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가축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돌로 포장을 하여 위에 흙을 덮고 축대를 쌓은 산길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고도 1,100m 고저 차이 50m 내외, 4km 넘게 이어진 아홉 모롱이(九隴) 길의 발견은 지리동부 유람록 복원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 길은 멀리 가야인들과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 영랑으로부터 1472년 점필재 김종직, 1610년 감수재 박여량, 1611년 어우당 유몽인 외에도 이후 관료들과 사대부, 그리고 유생들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내리던 주 통로였고, 산촌 사람들의 생존과 생활의 길이라는 점이다. 이 인근에는 국골, 대궐터, 두지터, 왕산, 왕등재,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릉 등 지명과 구전으로 가야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주변에 박회성과 독녀성과 왕등재성은 청이당과 동부(洞府)를 방어하기 위한 가야의 성인가?

 

역사 문화 조사와 발굴은 상류암 터 하나만 보더라도 지리에서 지명 하나를 찾는 것은 창해일속 푸른 바닷속에서 좁쌀 하나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러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는 발견의 즐거움은 어느 것하고도 바꿀 수 없는 또 다른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지리 동북부 고도 1,100m 고원 지대에 인공으로 구축한 천년 고도(高道·古道)의 비밀은 무엇일까.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군사들과 백성들의 항전지(야철지가 있음)인가? 신라의 화랑들이 1,500m 고지대인 마암까지 말을 타고 올라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월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九隴) 길을 찾으면서,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록에 나오는 석문과 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에 나오는 금강문과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에 나오는 통천문에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 이 세 분은 같은 방면에서 천왕봉으로 올랐지만 그 코스는 약간씩 다르다. 유람록 답사나 지명 복원은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에 드는 사람이면 누구나 선인들의 유람록을 읽고 답사를 한 후에 자유롭게 다른 의견을 낼 수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세 분의 유람록에 나오는 석문과 금강문과 통천문은 어디일까?

 

 

1. 1611년 유몽인의 기행시와 두류산록

 

明朝我向石門去 : 내일 아침 나는 석문으로 떠날 것이고/師在頭流雲水間 : 선사는 두류산 구름과 계곡 사이에 머물겠지요.

○ 癸酉. 侵晨而行掠甕巖. 淸夷堂 : 4월 4일 계유일. 새벽에 길을 떠나 옹암(甕巖)을 지나 청이당(淸夷堂)에 들어갔다.

 

 

2. 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엉겅퀴님 국역)

 

두리(杜里)의 폐사(廢寺)를 지나니 양쪽의 바위가 서로 붙어 있는 곳이 있어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었더니 금강문(金剛門)이라고 하였다. 이 또한 승려들이 보이는 대로 갖다 붙인 말이다. 過杜里之廢寺 有兩巖之交粘問奚名則曰金剛門亦禪師之權辭以拈眡

 

 

두리의 폐사(?)

 

3.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엉겅퀴님 국역)

 

드디어 차례로 서서 나아가 겨우 장구목[缶項부항]에 도착하니 갈증이 나고 침이 말랐다. 곧이어 사립재[扉峴비현]에 당도하여 벗 치조를 방문했더니 아이가 말하기를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라 했지만 일행에게 뒤쳐질까봐 힘써 길을 올랐다. 아래위의 석문 지났다. 문의 양쪽은 모두 바위이고 가운데로 한 줄기 좁은 길이 통하였다. 바위의 모양은 위가 붙어있고 가운데가 비어 십여인을 수용할 수 있으며 흰 글씨로 통천문(通天門) 세 글자가 석면에 쓰여 있었다. 遂序立前進纔到缶項而喉渴無涎矣迤到扉峴訪友致祚則兒言少選當返而恐其失伴努力登途過上下石門門之兩傍皆石而中通一逕巖形上合而中虛可容十餘人以白書通天門三字於石面

 

옹암 석문
여덞 모롱이 석문(20.05.16 방장문 석각 발견)
새봉 석문(이곳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