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점필재의 의논대 기행시에 나오는 소림선방

도솔산인 2020. 11. 16. 14:10

점필재의 의논대 기행시에 나오는 소림선방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로(이하 점필재 길)'의 개방을 앞두고 여러 가지 논란과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 탐방로의 명칭은 탐방로 개방의 계획 단계에서 함양군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나머지 몇몇 오해는 수락석출로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 오해가 풀릴 것이다. 함양군에서 한신 지곡, 두류 능선, 점필재 길 세 가지 안을 놓고, 추진하는 분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들을 설득하여 백무동과 추성동에서 점필재 길로 양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탐방로 명칭에 대해서는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로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지리 99가 맞는 말이다.

 

서부 경남 신문에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소림 선방이 없다.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의 국역이 오역이다.’라는 보도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내가 고전번역원에서 원문을 다운로드하여 처음 국역한 시기는 2008년이고, 미타봉의 소림 선방은 2020329일 찾았다. 의논대 시 국역 시점과 소림 선방을 찾은 시점의 차이가 10년이 넘는다. 20187월과 8월에 2차에 거쳐 지리산 국립공원 역사문화 조사단에서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과 유두류 기행시를 국역하신 최석기 교수님과 점필재 길 전 구간을 답사하였다. 그 후 2020년 함양 서복연구회에서 3차에 거쳐 개방 예정구간을 동행 답사하였다. 이때 함께하신 인산가 김윤세 회장님은 한국 고전번역원에서 공부하신 한문학에 조예가 깊은 분이다. 그분은 의논대 시를 월간산(조선)과 주간 함양에 소개하였다. 오역이면 그분들이 말씀하셨을 것이다.

 

필자가 미타봉의 자연 석굴을 찾은 것은 2020329일이다. 청이당에서 역으로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九隴, 구롱)을 찾아 사립재골 동부(洞府)에 이르어 교착상태에 빠졌다. 329일에는 고열암에서 허리길로 동부를 잇는 길을 찾아 나아갔다. 길은 상내봉 삼거리 방향과 미타봉 등달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돌을 깔아놓은 흔적이 있지만 사태 지역은 짐승 길이다. 이때 미타봉 뒤의 자연 석굴을 찾았고 전망대로 나가 의논대를 바라보았을 때 이곳이 의논대 시에 나오는 소림 선방이라고 직감하였다. 이후 지난주까지 11번이나 이곳을 답사하였다. 나는 지리 99에 반론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는 것이 염려되어 이 글을 쓴다. '김종직의 우듀류록 탐방로' 개방 예정 구간만 하더라도 지리99와 내 의견이 다른 것이 여러 곳이다. 화암, 지장사터 , 한쟁이골(진지밭골) 진입, 독녀암(노장대, 함양독바위 표기), 미타봉, 상내봉이 그렇다. 산은 그대로 있는데 개인이 어떻게 부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는 입장에서 정확한 지명을 기입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탐방로가 열리기도 전에 미리 논공행상을 논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어떤 일이든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유람록 복원은 특히 그렇다. 지리 99'탐방로 길 명칭'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일부 산꾼과 토호 상인들의 야합이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 내가 서복회와 동행하는데 지리 99 운영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야합과 오역이라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망신 주기식 처신은 정치판과 다른 것이 없다. 지리 99 운영진의 조등생 수준의 유치한 판단이 문제이다. 감당할 수 있는 말만 하라. 10년 넘게 공들여 쌓은 아성(牙城)을 스스로 무너뜨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남들이 알아 줄텐데, 사람들에게 자기를 알아달라고 보채니 안쓰럽기만 하다. 탐방로 개방에 앞서 타인을 관찰하기보다 자신들의 유두류록 탐구물에 오류는 없는지 성찰하기 바란다. 글은 정확성이 그 생명이다. 오류가 5% 넘으면 신뢰를 잃는다. 유람록 복원도 그렇다. 모쪼록 류정자 선생의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 발간을 축하한면서 오류(誤謬)가 없는 신유두류록이길 바란다. 다음은 필자가 지난 3월 29일 소림선방을 찾은 후 42일 정리한 자료이다.

 

 

견불사에서 바라 본 미타봉(사진 임보선님)
송대 마을에서 바라본 백승열님 팬션에서 바라 본 미타봉
의논대에서 바라 본 미타봉
일강(一岡)으로 가는 바위에서 바라본 미타봉(칠성님)

 

 

議論臺(의논대) - 김종직(1431~1492)

 

兩箇胡僧衲半肩 : 참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 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 : 소매 가득 천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 하네.

 

 

注 胡僧 : ① 호승 ② 선(禅)의 어록 등에서, 달마대사(達磨大師)를 가리켜 참선승으로 국역함. ③ 호국(胡国)의 중 ④ 서역이나 인도에서 온 중. 소림 선방 :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 참선수행을 했다는 소림굴을 말함. 三盤石 : 넓은 반석, 의논대를 가리킴. 天風 : 하늘 바람, 가을바람

 

 

■ 김종직의 議論臺(의논대) 詩에 나오는 소림 선방에 대하여

 

고열암 터 아래 의논대에서 정면(직선 거리 600m)으로 보이는 미타봉(1164.9m)의 송대 마을 쪽에 석굴이 있는데, 석실 내부에 바닥을 평탄(平坦)하게 하기 위해 축대를 쌓았다. 그리고 상 허리길이 고열암에서 미타봉으로 연결이 되는데, 삼열암의 승려들이 이 길로 왕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의 지명은 암자 이름은 그렇다 하더라도 화암, 환희대, 의논대, 향로봉, 미타봉, 소림 선방 등 모두 불교와 관련된 지명들이다. 환희대는 환희지(歡喜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살이 수행 과정에서 거치는 열 가지 지혜의 경지(10地) 중 첫 번째를 말한다.

 

☞ 환희지(歡喜地) : 보살이 수행 과정에서 거치는 열 가지 지혜의 경지 중 10지의 중 첫 번째를 말함.

 

그렇다면 김종직의 '의논대' 시 2구에 나오는 '소림 선방'은 어디인가? 그동안 막연하게 '바위 사이 한 곳'을 미타봉으로 생각하였지만, 이번에 직접 석굴 내부로 들아가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 조망 바위에 올라가니, 의논대와 고열암이 눈 앞에 들어왔다. 또한 암봉 서너 곳에 일부 남아있는 석축은 수행하는 공간에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담장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미타봉은 아미타불의 형상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미타봉의 석실은 아미타불이 되기 위한 胡僧(참선승)들의 수행 공간으로,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에 '소림 선방'의 시어로 나타나 있다. '소림 선방'은 중국 숭산(崇山)의 소림사(小林寺)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참선 수행을 했다는 소림굴(小林窟)을 말한다. 미타봉은 아미타불의 형상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동쪽에 있는 꿋꾸따빠다산(Kukkuṭapāda-giri, 屈屈吒播陀山, 계족산)에 가섭이 부처님 가사를 가지고 들어가 선정에 들어간 석굴을, 영신봉의 가섭대에 옮겨다 놓은 것처럼, 달마 대사가 면벽수행했다는 중국 숭산(崇山)의 소림사(小林寺)에 있는 소림굴(小林窟)을 지리산 미타봉에 옮겨다 놓은 것이다. 추후 여러 번 답사를 통해 선녀굴에서 미타봉 길도 찾았고 샘도 찾았다. 와불형상을 한 불두에서 발끝까지 전체가 와불산이다. 그 주봉인 1213.9m봉이 향로봉, 불두의 형상인 1164.9m봉이 미타봉이다. 끝.

 

* 아미타불(Amitabha, 阿彌陀佛) :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부처다. 다섯 구원불 가운데 하나로 '무한한 수명'이라는 뜻을 가졌다. 아미타불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모두 정토에 태어나 복을 누리며 산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아미타불 신앙으로 650년경부터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에는 선덕여왕 때 자장이 아미타경소를 계기로 정토신앙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불교신앙의 일반적인 형태로 정착되었다. 동의어 무량광불(無量光佛), 무량수불(無量壽佛) 출처 : 다음 백과

 

 

※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잘못을 지적해 주시면 수용하겠습니다.

 

 

소림 선방 담장 I
소림 선방 담장 II
소림 선방 석굴 계측(W270cm×L320cm×H220cm)
석굴 내부는 바닥이 수평으로 되어 있음.
석굴 내부 축대
석굴 외부(전망대 나가는 곳)
석굴 밖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의논대(사진 칠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