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와 소림선방

도솔산인 2021. 1. 6. 04:46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와 소림선방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 2구 '少林禪'이 오역이라는 지적에 꼭대 님과 이재구 선생께 먼저 감사를 드린다. 내가 두 분에게 해명할 의무는 없지만, 순수한 오류의 지적이기보다는 비난과 비하의 인신공격이라고 생각되어 기록을 남긴다. 2008년 10월 경 고열암을 답사하고 고전번역원에서 원문을 다운로드하였다. 당시 온라인에 올라있는 자료는 오자가 있어서 유두류 기행시 영인본을 보고 블로그에 옮겼다. 선열암 시에서 냉냉(冷冷)은 영인본에 삼수변이 붙은 '깨끗한 물소리 영(泠)'이었다. 의논대 시에서 '호승'과 '소림선'을 몰라서 대둔산 석천암 천산(天山) 스님에게 물었고, 급기야 밤에 석천암으로 뛰어 올라갔다. '호승(胡僧)은 달마대사를 가리키고, 참선승의 의미입니다.' '소림선은 선승들이 참선하는 곳을 뜻합니다.' '소림 선방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천산 스님은 조용헌 박사와 이문회우(以文會友)이다. 나는 천산 스님의 말씀을 '참선승이 수행하는 공간인 소림굴'로 이해하고 '소림 선방'으로 국역하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역사문화 조사단에서 2018년 7월과 8월 2차에 거쳐 2박 3일간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최석기 교수님과 점필재 길을 답사하였다. 그때 선열암 시 2구에서 최석기 교수님은 '냉냉(찰냉)'이 맞다고 하셨고, 의논대 시에서 호승도 서역(중국) 승으로 보셨다. 나는 공기와 바위의 온도 차이로 바위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영영(泠泠)'(깨끗한 물소리 영)으로 보았고, 호승은 참선승으로 보았다. 이렇게 사람에 따라서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유두류 기행시를 처음 국역한 것이 2008년도 후반기이고 소림 선방을 찾은 것이 2020년 3월 29일이다. 2020년 서복회와 3차례 답사 산행을 하였다. 서복회 고문이신 인산가 김윤세 회장님은 부친인 인산(仁山) 김일훈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고전번역원에서 5년간 수학하신 분이다. '노자도덕경'을 비롯해 '동사 열전' 등을 국역하셨다. 한문학뿐만 아니라 도가와 불교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다. 알다시피 의논대 시를 함양 주간과 월간(조선) 산 등에 기고하셨다.

 

※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 기행시 첫 首 先涅庵 : blog.daum.net/lyg4533/16487983

 

 

내가 의논대 시를 국역하고 한문을 전공하지 않은 꼭대 님에게 검증을 받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나는 오히려 가객님의 '유두유록 탐구'에 있는 의논대 시 국역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兩箇胡僧衲半肩 : 승복을 어깨에 걸친 호승이,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소림의 선을 가리켜 말하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한문을 전공한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 '兩箇'와 '點'은 어떤 이유로 국역을 생략했고, '말하네'는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바위 사이와 점(點)은 '한 지점' 손가락이 가리키는 한 곳 장소를 의미하는데, 왜 점(點)은 낙자를 하고 글자도 없는 '말하네'는 왜 끌어다 붙이는지. '兩箇'와 '胡僧'은 왜 국역하지 않았는지. 7언으로 압축된 시어에서 있는 글자를 버리고, 없는 글자의 뜻을 끌어다 억지로 국역하는 것이 맞는지. '바위 사이 소림의 선을 가리켜 말하네.'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문맥이 어색하다. 무엇보다 그 의미가 독자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한문의 국역은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보통 10%가 오역이고, 5% 이내 오역을 아주 잘했다고 한다. 한시의 국역은 더 그렇다. 물론 내 국역이 오역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림선방'을 한 번도 답사하지 않고 유두류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국역의 오류' '날조된 소림 선방' 운운하는 것은 꼭대 님의 패착(敗着)이다. 세상의 이치도 모르고 거드는 댓글은 더 재미있다. 나는 작년에만 점필재 길을 30번 넘게 답사를 하였다. 소림선방은 10번을 넘게 갔다. 나는 이번이 지리 99가 수 년간 대량 생산한 지명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외람된 말씀이나 '유두류록 탐구'를 읽어보니 내 의견과 다른 곳이 열 군데가 넘는다. 나는 날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로'의 개방이 확정되면 두 분께 '지리산 역사문화 조사단'과 함께 답사를 하면서 검증할 것을 제안한다.

 

나는 지리 99가 점필재 길을 개척한 공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류는 있을 수 있다. 오류를 알면서 두둔하고 고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이다. 아니면 오류를 모르는 것인지. 내가 보기에는 선장이 자기 배에 말뚝을 박고 있다. 내가 염려할 일은 아니지만, 지리99가 이렇게 침몰하는 것이 안타깝다.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강퇴시키는 파시즘은 이 시대에 통하지 않는다. 지리99가 이미 회복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침몰을 돕는 악플러가 출현(出現)한다. 누구일까. 이렇듯 커뮤니티(community)는 사유화하는 순간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리고 결국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40년 넘게 토굴에서 수행 중인 선승(禪僧) 자봉(慈峯) 스님, 「북창(北窗)」 한시집(漢詩集)을 내신 반산(半山) 한상철(韓相哲) 선생님, 한시를 4,000首 넘게 국역하신 돌지둥 송석주(宋錫周) 선배님, 서예가 지원(志原) 박양준(朴洋濬) 교수가 '소림선방' 국역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끝.

 

 

議論臺(의논대) - 김종직(1431~1492)

 

兩箇胡僧衲半肩 : 참 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 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 : 소매 가득 천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 하네.

 

注 胡僧 : ① 호승 ② 선(禅)의 어록 등에서, 달마대사(達磨大師)를 가리켜 참선승으로 국역함. ③ 호국(胡国)의 중 ④ 서역이나 인도에서 온 중. 소림 선방 : 중국 쑹산의 소림사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참선수행을 했다는 소림굴을 말함. 三盤石 : 넓은 반석, 의논대를 가리킴. 天風 : 하늘 바람, 가을바람.

 

 

☞ 지리산 지명의 주인은 누구인가? 1편 - 날조된 소림선방

www.jiri99.com/bbs/board.php?bo_table=jiri11&wr_id=114416&page=2

 

 

통도사 비로암 법당옆 소림굴

 

■ 김종직의 議論臺(의논대) 詩에 나오는 소림 선방에 대하여

 

고열암 터 아래 의논대에서 정면(직선 거리 600m)으로 보이는 미타봉(1164.9m)의 송대 마을 쪽에 석굴이 있는데, 석실 내부에 바닥을 평탄(平坦)하게 하기 위해 축대를 쌓았다. 그리고 상 허리길이 고열암에서 미타봉으로 연결이 되는데, 삼열암의 승려들이 이 길로 왕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녀굴에서 미타봉 소림선방으로 가는 길도 있다. 이 주변의 지명은 암자 이름은 그렇다 하더라도 화암, 환희대, 의논대, 향로봉, 미타봉, 소림 선방 등 모두 불교와 관련된 지명들이다. 환희대는 환희지(歡喜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살이 수행 과정에서 거치는 열 가지 지혜의 경지(10地) 중 첫 번째를 말한다.

 

☞ 환희지(歡喜地) : 보살이 수행 과정에서 거치는 열 가지 지혜의 경지 중 10지의 중 첫 번째를 말함.

 

그렇다면 김종직의 '의논대' 시 2구에 나오는 '소림 선방'은 어디인가? 그동안 막연하게 '바위 사이 한 곳'을 미타봉으로 생각하였지만, 이번에 직접 석굴 내부로 들아가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 조망 바위에 올라가니, 의논대와 고열암이 눈 앞에 들어왔다. 또한 암봉 서너 곳에 일부 남아있는 석축은 수행하는 공간에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담장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미타봉은 아미타불의 형상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미타봉의 석실은 아미타불이 되기 위한 胡僧(참선승)들의 수행 공간으로,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의논대'에 '소림 선방'의 시어로 나타나 있다. '소림 선방'은 중국 숭산(崇山)의 소림사(小林寺)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참선 수행을 했다는 소림굴(小林窟)을 말한다. 미타봉은 아미타불의 형상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동쪽에 있는 꿋꾸따빠다산(Kukkuṭapāda-giri, 屈屈吒播陀山, 계족산)에 가섭이 부처님 가사를 가지고 들어가 선정에 들어간 석굴을, 영신봉의 가섭대에 옮겨다 놓은 것처럼, 달마 대사가 면벽 수행했다는 중국 숭산(崇山)의 소림사(小林寺)에 있는 소림굴(小林窟)을 지리산 미타봉에 옮겨다 놓은 것이다. 추후 여러 번 답사를 통해 선녀굴에서 미타봉 길도 찾았고 샘도 찾았다. 와불형상을 한 불두에서 발끝까지 전체가 와불산이다. 와불산의 주봉인 1213.9m봉이 향로봉(상내봉, 상로봉), 불두의 형상인 1164.9m 봉이 미타봉이다. 소림선방은 미타봉의 부처님 입속에 있다.

 

 

향로봉 표시 위치에서 왼쪽으로 30m에 향로 모양의 오뚝이 바위가 있고 100m에 1213.9m봉(향로봉/상내봉)이 있다.

 

* 아미타불(Amitabha, 阿彌陀佛) :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부처다. 다섯 구원불 가운데 하나로 '무한한 수명'이라는 뜻을 가졌다. 아미타불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모두 정토에 태어나 복을 누리며 산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아미타불 신앙으로 650년경부터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에는 선덕여왕 때 자장이 〈아미타경소〉를 계기로 정토신앙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불교신앙의 일반적인 형태로 정착되었다. 동의어 무량광불(無量光佛), 무량수불(無量壽佛) 출처 : 다음 백과

 

☞ 점필재의 의논대 기행시에 나오는 소림선방 : blog.daum.net/lyg4533/16488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