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 트랙(고열암~구롱~쑥밭재)

도솔산인 2020. 4. 21. 05:32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 트랙(고열암~구롱~쑥밭재)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아홉 모롱이 길'이 원문에는 구롱(九隴)으로 나온다. 隴(언덕롱)은 일반적으로 壟(언덕롱)이 많이 쓰이는데 그 대표적인 용례로 壟斷(농단, 높이 솟은 언덕.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있다. 壟斷(농단)은 《맹자(孟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농단(壟斷)’이 유래하였다. 그러나 맹자 원문에 龍斷(농단)으로 나와 있다. ‘龍(언덕롱)’과 ‘壟(언덕롱)’은 음과 훈이 같은 통자(通字)이다. 결과론적이지만 隴(언덕롱)은 파자(破字)를 하면 阜(阝, 언덕부)+龍(용용, 언덕롱)으로 용처럼 구불구불한 언덕 모롱이 길(사투리로 모랭이, 모래이, 모티이 등)을 의미한다.

 

어쨌든 이 아홉 모롱이 길을 이해하는데, 열두 해의 모롱이도 더 돌고 돌아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나의 아둔함을 탓할 수밖에.... 그러나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발견의 즐거움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감수재의 초령 루트에 이어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을 함께한 산영(山影)님과 칠성(七星)님, 그동안 선인들의 유람록 복원 산행을 함께한 산친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에 대한 견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니 여과에서 읽으시길 바라면서....

 

 

▶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을 요약하면...

 

1. 고도 1,100m대, 고저 차이 50m 내외, 4km 가까이 가장 짧고 평탄한 상 허리길로 이어짐.

2. 한 모롱이를 돌 때마다 실 계곡이 흐르고,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샘과 이정표가 되는 바위가 있음.

3. 너덜지대를 교묘하게 피해서 돌로 포장한 길이 이어지며 작은 언덕 모롱이도 가장 편안한 길로 연결됨.

4. 길 주변에 오래된 巨木을 베지 않아 근세에까지 산촌 사람들의 길잡이와 이정표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음.

5. 마천을 넘어 구롱 길의 청이당과 동부(洞府)가 군사적으로 사용되었다면, 박회성과 독녀성, 왕등재성에 대한 설명이 가능함.

6. 아홉 모롱이 길은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인공으로 구축한, 가야의 멸망과 신라의 화랑 영랑과도 연관이 있는 천년의 古道임.

 

7. 지리 동부에서 마암까지 가축 이동로를 추정하면...

 

가. 오봉리-사립재-동부(洞府)-아홉 모롱이 길-청이당-마암

나. 송대(벽송사)-미타봉 능선-동부(洞府)-아홉 모롱이 길-청이당-마암

다. 송대(벽송사)-미타봉 능선-어름터-옹암길(중간)-아홉 모롱이 길-청이당-마암

라. 송대(벽송사)-미타봉 능선-어름터-옹암길(초입)-추성리 5번지-구롱-청이당-마암

마. 공중에서 헬기나 드론...

지리산에서 산길의 원리는 단순하면서도 선인들의 지혜가 들어있다. 산길은 마을에서 마을로, 절에서 절로, 기도터와 기도터로, 집터와 집터로, 숯가마와 숯가마, 산죽밭과 산죽밭, 전답과 전답, 고개에서 고개로 이어진다. 시간이 적게 걸리고 짐을 지고 갈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길이다. 상 허리길, 중 허리길, 아래 허리길, 능선길, 계곡길, 지름길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아홉 모롱이 길'은 고대로부터 근세까지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축조하고 보수하면서 사용한 길로, 가야인과 신라의 화랑도 영랑의 무리로부터, 조선시대의 관료와 사대부, 유생들은 물론 인근 산촌에 사는 민초(民草)들에 이르기까지, 천왕봉에 오르는 천년이 넘은 고도(古道)로 추정된다.

 

 

자료 제공 산영님
자료 제공 산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