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김종직의 유두류기행시 영신암(靈神菴) 복원

도솔산인 2022. 1. 25. 03:49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영신암(靈神菴) 복원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에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마천은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침묵하는 사람」,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아첨하고 동조하는 사람」, 나처럼 상황 파악도 못하고 「사슴을 사실대로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2006년 10월 중순 세석산장 앞 습지의 영신사지라는 곳을 다녀온 후, 의문이 들어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두류 기행시를 읽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2008년부터 점필재길 답사를 시작하였다.

 

 영신암 시 1, 2구 "창불대와 거상곡을 산책하고 돌아오니/노선사의 방장은 석문이 열려있네"에서 1472년 8월 17일 창불대에서 영신암 석문까지 점필재의 동선을 추정할 수 있다. 2020년 10월 23일~25일 나는 영신대 석문을 지나 창불대로 오르는 제3전망대에서 좌고대와 석가섭을 보았다. 김종직은 이곳에서 좌고대와 석가섭을 직접 보고 기록에 남긴 것이다. 이날 영신대에서 창불대 아래로 음양수까지 이어지는 초입도 확인하였다. 2021년 2월 26일~27일 양일간 창불대에서 영신대로 내려오는 길과 창불대 아래 사면 길을 답사하였다. 창불대 아래 사면길은 앞서 산영님과 토산 칠성님이 개척한 토산전람회길이다. 

 

 청유회(淸儒會, since 1989)는 33년 전 가을 윤선한 선배, 강배구, 나경란 후배와 4명이 모임을 시작했다. 대전 시내에 재직하는 한문교사 同學 모임이다. 현재 회원은 22명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모임을 시작한 네 사람 중 현직에 있는 사람은 한 분뿐이다. 청유회(淸儒會)로부터 정년퇴임(210228) 기념으로 김종직의 영신암 시를 선물 받았다. 청유회 회원인 서예가 지원 박양준 선생의 글이다. 지원 선생은 나를 위해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중 선열암, 숙고열암, 영신암 3首를 복원하였다.

 

 

靈神菴(영신암) - 김종직

 

箭筈車箱散策回 : 전괄(창불대)와 거상을 산책하고 돌아오니

老禪方丈石門開 : 노선사의 방장(영신암)은 석문이 열려있네.

明朝更踏紅塵路 : 내일 아침이면 다시 속세의 길을 밟으리니

須喚山都沽酒來 : 촌장을 불러서 술이나 받아오라 해야겠네.

 
 

注 전괄(箭筈)과 거상(車箱) : 전괄은 화살 끝처럼 좁은 산마루를 말하고, 거상은 마치 수레의 짐칸처럼 우묵한 골짜기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음. 또는 전괄령(箭筈嶺)과 거상곡(車箱谷)의 명칭으로도 쓰는바, 두보(杜甫)의 망악시(望岳詩)에 “거상의 골짝에 들어서니 돌아갈 길이 없고 전괄로 하늘을 통하는 문 하나가 있구려.(車箱入谷無歸路 箭筈通天有一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六》 

 

 

 

영신암(지원 박양준서)
선열암(지원 박양준서)
숙고열암(지원 박양준서)
石門
좌고대
좌고대(사진 순천산님)

 

영신대에서 창불대를 잇는 옛길의 제3전망대에 오르면 영신대와 좌고대 석가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뷰포인트는 김종직이 전괄(箭筈)과 거상(車箱)을 산책하고 영신대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다. 또한 음양수에서 창불대 아래로 거상(車箱)을 지나 영신대까지 상허리길이 이어진다. 김종직은 영신암 시에 두보(杜甫)의 망악시(望岳詩)에서 전괄(箭筈)과 거상(車箱)을 인용하였다. 전괄(箭筈)과 거상(車箱)은 중국의 서악(西岳)인 화산(華山)에 있는 실제 지명이다. 

 

* 西岳(서악) : 오악(五嶽) 중 하나인 화산(華山). 산시성(陝西省)에 있으며 도교(道敎)의 주류인 전진파(全眞派)의 성지(聖地).  * 車箱入谷(거상입곡) :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서 화음현(華陰縣) 서남쪽 25리 되는 곳에 있는데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이 돌을 던지고 그 안에서 새가 날아오르면 때에 맞춰 비가 내린다’고 함. * 箭筈(전괄) : 화살의 끝부분처럼 끝이 좁은 산마루.

 

 

비로봉
석가섭
영신암 터와 석가섭
좌고대와 영신대의 석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