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경술통문

순종황제가 내린 밀지(密旨) 경술 통문

도솔산인 2024. 1. 29. 00:42

순종황제가 내린 밀지(密旨) 경술 통문

 

 

 

  경술(庚戌) 통문(通文)1910년 음력 7월 순종 황제가 전국 유림에게 내린 밀칙(密勅, 임금이 내린 비밀 칙서)이다. 만세력을 보니 경술국치일(1910. 8. 29)이 음력으로 725일이다. 이 칙서(勅書)는 경술국치 이후에 바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190781일 대한제국의 군대해산으로 정미(1907) 의병이 전국 각처에서 들불처럼 일어나자, 일본은 전국의 군 단위까지 정규군을 배치하여 대대적으로 의병들을 토벌하였다. 1910년은 전국의 의병진이 대부분 궤멸(潰滅)된 상태였다.

 

  일본은 1907년 고종이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高宗)에게 퇴위를 강요하였다. 결국 고종이 황태자에게 국정의 섭정(攝政)을 맡긴다는 양위 조칙(詔勅)을 내렸고, 1907722일 순종(純宗)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즉위하였다.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면서 순종이 즉위하였지만, 양위식장에는 고종과 순종 모두 불참해 신원 불명의 두 사람(아마도 내관으로 추정)이 이들의 대역을 맡아 양위식(兩位式)을 올리는 촌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즉위 당시 순종의 심경이 이 밀지(密旨)에 담겨있다. “()이 지난번 변변치 못한 재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업을 외람되이 이어받아 겨를이 없는 때에 임금 자리에 올랐으나, 임금 노릇은 즐거움이 없고 나라가 전복(顚覆)되는 시기에 명을 받아 손을 쓸 수 없어서 모든 백성이 도탄(塗炭)에 빠졌는데도 급히 구원하지 못하였다.

 

  경술 통문의 사본은 이강년 선생 후손인 고 이인규님이 저의 삼종숙(三從叔) 정관(廷寬, 김산 의병장 지산 이기찬의 증손)씨에게 전달하였고 삼종숙이 내게 보내왔다. 당시 삼종숙 정관씨가 조부인 이강하(李康夏, 1873~1940, 이기찬의 장자) 공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점이었다. 삼종숙의 노력으로 이강하(李康夏) 공은 2018815일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동지인 중에 독립유공자 추서를 받지 못한 분이 있다. 효령대군 서원군파 18세손 이기하(李起夏, 1862~1909) 선생도 그중 한 분이다. 이기하 선생은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 선생과 지산(止山) 이기찬(李起璨, 1853~1908) 선생을 연결해준 인물로 김산(金山) 의진에서 군관 직책을 맡은 분이다. 선생의 둘째 동생 이기상(李起商, 1871~1915)과 이기영(李起永, 1874~1918)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셨다. 3형제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셨지만, 맏형인 이기하(李起夏) 선생은 아직 독립유공자 추서를 받지 못하였다. 이렇게 위국(爲國) 헌신(獻身)하신 분들을 누군가 기록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삼가 졸역(拙譯)을 하였다.

 

의성군 댁 문화위원 영규(永揆) 謹書

 

 

 

通文

 

去去人事悽悵 擧切感舊徒情 天道循環 詎無悔禍之日 寄此万鍾 漏佈予一片心 1)以菲薄之才 叨承艱大之業 踐祚2)於蒼黃之際 無樂爲君 受命於傾覆之餘 不及措手 淪湑以溺 急莫之救 迺於庚戌之七月 神器忽移 大勢已黎 庶有浮虜之恥 罪在一人 社稷有邱墟之歎 恨徹九懷

 

날이 갈수록 인사가 처참해지니, 모두 옛일에 감개하는 한갓 감정만이 절실할 뿐이다. 하늘의 도는 순환하니, 어찌 재앙을 내린 것을 후회하는 날이 없겠는가. 만종의 녹을 받는 나는 눈물로 나의 일편단심을 알린다. 짐이 지난번(頃 : 몇 해 전) 변변치 못한 재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업을 외람되이 이어받아 겨를이 없는 때에 임금 자리에 올랐으나 임금 노릇은 즐거움이 없고 나라가 전복되는 시기에 명을 받아 손을 쓸 수 없어서 모든 백성이 도탄에 빠졌는데도 급히 구원하지 못하였다. 경술년(1910) 7월에 국권을 문득 잃게 되니 대세가 이미 저물었다. 거의 포로의 수치심을 갖게 되니, 죄가 나 한 사람에게 있다. 종묘사직은 폐허가 된 탄식이 있으니, 한이 구천에 닿는 회포로다.

 

 

漢宮之威儀若夢 歎窮人無所歸 宮門之巡警如星 悲楚囚相對泣 咫3)西關雲 常凝父子之情 寂寞燎廷西 空洒君臣之涕 惟卿等俱以三南士大夫后裔 簪纓世家 讀聖賢傳授之書 浴祖宗深厚 識熊魚4)之所 取拜犬羊 而豈甘一迺誠心 金石可透

 

한양 궁궐의 위의는 꿈속처럼 아련하니, 곤궁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음을 탄식하노라. 궁궐문의 순경들은 별처럼 많이도 늘어서 있으니, 초나라 죄수처럼 서로 마주 보고 눈물만 흘리는 것이 슬프도다. 지척의 서쪽 관문의 구름은 늘 부자의 정을 그립게 하고 불 밝힌 적막한 조정 서쪽에서 부질없이 군신의 눈물을 흘린다. 오직 경들은 모두 삼남의 사대부 후예로서 대대로 벼슬을 한 세가의 후손이니, 성현이 전수한 경서를 읽고 조종의 깊고 후한 은택을 입어 곰발바닥 요리와 생선 요리 중 하나를 선택할 적에 오랑캐에게 굽히는 것이 의리가 아님을 취할 줄 알 것이니, 성심을 전일하게 하여 금석을 뚫을 수 있는 일을 어찌 기꺼이 하지 않겠는가.

 

 

勵爾氣力 山岳足移 隻手誰將擎天 一木亦能支廈 挽回旣墜之日月 整頓已傾之乾坤 非但我列聖在天之靈悅豫於陟降 抑亦爾祖先忠國之輝於後前 故慈敎示 想宜心解 則事固不成 五百年宗社 似難更扶矣 豈不痛極哉

 

너희들의 기력을 면려하면 산악을 옮길 수도 있으리라. 한 손으로 누가 하늘을 떠받칠 것이며, 일목으로 누가 큰 집을 지탱할 것인가. 이미 추락한 세월을 만회하고 이미 엎어진 세상을 정돈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열성조께서 오르내리며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국가에 충성한 너희 조상들도 앞뒤에서 빛이 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교지를 보이니 생각건대 마음으로 이해할 것이다. 일을 참으로 성취하지 못하면 오백년 종묘사직은 다시 부지하기 어려울 듯하니, 어찌 지극히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使卿任宣諭之職 與召募 躬行列邑 曉諭於大小民人忠義富饒者及甲午以後解散岳丁 與召募義兵 合心同力挽回 佇立希望 御賜軍暗號 -昌旺大韓 掃除狼的寇 運開千万年 扶濟蒼生全-

 

유지를 반포하는 직책을 받은 경으로 하여금 의병을 불러 모으는 소모관과 함께 열읍을 몸소 순행하며 대소 인민들과 충성스럽고 의로운 이들과 부유하고 넉넉한 이들 및 갑오년 이후 해산한 수많은 장정들에 효유하노니, 불러 모은 의병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국운을 만회하기를 섬돌에 서서 기다리며 희망한다. 어명으로 군호를 내린다. -<군호는> “대한제국을 창성하게 일으켜 시랑 같은 오랑캐를 쓸어버리자. 국운을 천년만년 열어 백성을 구제해 온전히 하자.”이다.-

 

庚戌七月 起義日 循環用之

 

경술년 칠월 의병을 일으킨 날. 이 요지를 돌아가며 사용하라.

 

 

同志人(31)

 

李芝元, 李承宰, 張翰文, 安在極, 金斗活5), 韓良履, 李兢宰, 周九相, 張性德, 李起夏, 徐相業, 丁喜燮, 許 達, 李明宰, 李應洙, 盧炳大, 柳時淵, 金喆相, 李容曄, 李殷和, 李永宰, 李相協, 李性宰, 李鍾國, 金斗活, 姜來永, 李炳旭, 李康夏, 姜炳裕6), 姜炳修, 李圭海

 

1) :어조사

2) 踐祚:임금의 자리를 계승하다.

3) 자가 빠진 듯함.

4) 熊魚는 「맹자」에서 말한 것으로 죽음보다 의리를 택한다는 뜻

5) 同志人金斗活은 두 번 나오는데 확인이 필요함.

6) 姜炳裕, 姜炳修는 통문에+ 으로 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