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조경남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나오는 송림사

도솔산인 2023. 5. 14. 19:14

조경남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나오는 송림사

 

 

▣ 일 시 : 2023년 05월 12일(금)

▣ 코 스 : 구룡계곡 주차장-여궁석-석녀골-송림사지-능선-영제봉 북릉 초입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황령과 황령암터를 답사하다가 산서(山西) 조경남(趙慶男, 1570~1641)의 『난중잡록(亂中雜錄三)을 만났다. '1597년 8월 11일 왜적들이 구례에서 숙성령을 넘어, 급기야 12일에 남원성을 포위하고 16일에 남원성이 함락된다. 8월 15일 조경남은 양형과 이공직 등 여러 사람과 같이 상용추에서 정령치를 넘어 황류동[지리산의 황령사(黃嶺寺)와 향로봉의 사이에 있음.]에서 유숙하고, 16일 황류천을 건너(하점골 경유 추정) 향로봉 북쪽 기슭 아래 은신암(隱身庵)의 옛터로 들어가 막을 치고 머문다. 왜적의 살육이 잠잠해지자, 9월 9일 조경남은 다시 정령성 넘어 파근사로 내려와 머물다가 15일에는 송림사로 내려온다.' 이번 답사에서 파근사에서 송림사로 내려오는 옛길을 확인하였다. 이 길은 파근사에서 용궁으로 넘어가는 길과 영제봉 북릉에서 만난다. 1655년 김지백 또한 이 길로 용추에서 파근사로 올라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끝.

 

 

 1597년 조경남의 난중잡록 3(亂中雜錄三)

 

 9 15일 (파근사에서) 양형과 같이 가족을 인솔하고 송림사(松林寺) 터로 내려가니 상사(上舍) 정사달(丁士達) 형제가 처음 파근원(波根源)에서 패배를 당하여 몸만 빠져 남으로 달아났다가 내가 고향에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남촌에서 밤에 몰래 오다가 들 가운데서 나와 만나게 되어 서로 손을 잡고 통곡하였다. 이어서 산으로 들어가 한 곳에다 초막을 쳤다.

 

 十五日 與梁兄率家眷 下松林寺基 丁上舍士達兄弟 初在波根源見敗 脫身南走 聞余還家山 自南村冒夜潛來 遇於野中 摻手痛哭 因入山 誅茅於一處

注 정사달(丁士達, 1559~?) 본관 나주, () 회가(晦可) 선조 18(1585)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1(一等) 5(5/100)

 

 

비보 풍수 시설인 석축
여궁석

▼ 김사문의 「용호구곡안내」에 나오는 송림사

 

  "청류를 거슬러서 남쪽으로 1리를 나아가면 일원의 폐사지에 패탑(敗塔)과 잔와(殘瓦)가 지나간 역사를 증(證)하나니 송림사의 유허이다. 절은 고려시대 고찰인데 한때는 자못 부유하고 번성하였던바 용호의 명승을 이웃한 탓으로 소인(騷人, 시인과 문사)과 풍류객(風客)의 등림(登臨)이 매우 많은지라 스님들(衲子輩)이 고통을 당하였더니(喫) 저들의 불례(不禮)를 마음에 품은 어떤 지관(一地師)이 객을 막을(防) 묘한 방법(道理)이 있음을 말하여 절의 남쪽의 석퇴(石堆)를 부파(斧破)시켜 절이 망하였다."  여기에서 패탑(敗塔)은 무너진 탑으로 1940년 당시에 탑의 잔해가 남아있었다는 내용이다.

 

 

송림사지

 

▼ 영제봉 북릉에서 송림사로 내려오는 지능선 옛길

 

용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