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4

지리동부 아란야 영랑대 설국 속으로(200129~31)

지리동부 아란야 영랑대 설국 속으로(200129~31) ▣ 일 시 : 2020년 01월 29일(수)~01월 31일(금) ▣ 코 스 : 의신-단성 귀농/귀촌 종합건축학교(宿)-새재-청이당-행랑굴-영랑대-산천재 ▣ 인 원 : 3명 지산팀(김산님, 최성용님) ▣ 날 씨 : 맑음(영하 8도) 穿雪 : 숫눈길을 뚫고 이양연(李亮淵,·1771∼1856) 穿雪野中去 :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 아무렇게나 걸어서는 아니 되네 今朝我行迹 :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 뒤에 오는 사람의 길잡이 되리니 ☞ 임연당백선시(臨淵堂百選詩) 필사본에는 제목이 野雪로 되어 있음. 이 시는 서산대사의 선시로 잘못 알려져 있다. 김구 선생이 '답설야중거' 휘호(공주 마곡사 소장)에서 이 시를 서산대..

전천후 수제작 젤트(Zelt) 永郞齋III CAMO(200117)

전천후 수제작 젤트(Zelt) 永郞齋III CAMO(200117) 2006년에 미산루를 처음 제작했고 현재에도 제작하여 사용하는 젤트입니다. 취사, 취침은 물론 혹한기에는 안에서 배낭을 패킹할 수 있고, 모기장이 있으며, 바닥이 있어서 의자가 필요 없고, 롤 매트를 깔아 사용합니다. 방수가 되지 않고 결로가 없으며 우천시에는 타프를 사용합니다. 시판되는 제품이 아니며, 군산 공방얼(명품숲, 010-2680-5646)에서 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명품숲 사장님의 제안으로 4동은 바닥과 문이 있는 측면은 방수천을 사용했습니다. 1. 원단 : 대주 TAX/코듀라300 2. 색상 : 카모(멀티캠) 투톤 3. 크기 가. 2~3인용 : L240cm×W150cm×H120m(1.5kg) 나. 3~4인용 : L240cm×..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5)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5) 5. 산에서 내려오다[영신사-함양관아] ○ 18일, 임오일. 영신사를 출발하여 칠선봉 쪽으로 영신봉과 영신대를 조망할 수 있는 나지막한 바위가 곧은재 능선(한신능선×) 갈림길이다. 그 초입에 1-39 표지목이 있다. 나는 처음부터 유두류록에서 '徑由直旨而下'의 문구를 '곧바로 지름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로 이해했다. 김종직 선생은 하산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나무뿌리를 잡고 돌 모서리를 디뎌 가며 내려가는데 수십 리의 길이 이와 같았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니, 천왕봉이 바로 지척에 있는 듯하였다.』실제로 이곳으로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 보면, 천왕봉은 물론 중봉 하봉 영랑대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계곡이 가까워 올수록 물소리가 우렁차..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4)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4) 4. 여러 산과 봉우리들을 살피다[천왕봉-영신사] ○ 17일, 신사일. 향적사에서 일출을 보고 새벽밥을 재촉하여 먹고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오른다. 그날의 기온은 '신에 밟힌 초목들은 모두 고드름이 붙어 있었다,' 라고 하였으니 영하의 날씨였다. 성모묘에 들어가 예를 올린 후 북루(정상)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한다. 반야봉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함양과 진주의 남강, 남해와 거제의 군도까지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유두류록에 28개의 주변 산들을 모두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그날의 가시거리가 매우 좋은 쾌청한 날씨였음을 알 수 있다. 점필재가 주변의 산 이름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최석기 교수님) 또 '천왕봉..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3)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3) 3. 향적사에 머물다[천왕봉-향적사] ○ 8월 16일 경진일, 천왕봉 성모당에서 아침에 일어나니 비바람이 거세므로 종자들을 향적사로 보내고, 정오 무렵 비가 조금 그쳤을 때, 통천문을 지나 향적사로 내려온다. 날이 저물 무렵 구름이 걷히기 시작해 남해 바다와 섬까지 조망되고, 천왕봉 성모당의 흰 깃발이 펄럭이는 것까지 보였으며, '한밤중에는 별빛과 달빛이 모두 환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모사에서 1박을 하고 일기로 인해 추석 달맞이를 못하고 안갯속을 내려온 선생은 을씨년스러운 향적사에서 1박을 하게 되는데, 당시의 정황과 풍경이 시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사람의 발길이 없어 출입하는 길에 혜란초는 웃자라 있고, 샘터와 홈통, 타다 남은 향이 쌓여..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2)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2) 2. 천왕봉에 오르다[고열암-천왕봉] 8월 15일 날씨 흐림, 고열암 요주(寮主)(*)가 '오늘은 필시 비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담부(擔夫, 짐꾼)를 일부 돌려보내고 고열암 중에게 시 한 수를 남기고 출발한다. * 요주(寮主) : 선사(禪寺)의 소임(所任). 요원(寮元)을 보좌(補佐ㆍ輔佐)하는 소임(所任)으로, 한 달ㆍ반 달ㆍ10일씩 교대함. 贈古涅僧(고열암 중에게 주다) 求名逐利兩紛紛 : 명예를 구하고 이익을 좇는 일 둘 다 어지러우니 緇俗而今未易分 : 지금은 승려와 속인을 분간하는 것이 쉽지 않구나 須陟頭流最高頂 : 모름지기 두류산의 최고봉 천왕봉에 올라보게나 世間塵土不饒君 : 세간의 흙먼지는 그대를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네 紛紛 : 어지..

대원사 계곡 장항동의 성명 석각(200110)

대원사 계곡 장항동의 성명 석각(200110)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장항동 석각 인물들을 검색하니 대원교 직전 석각 성명 도사(都事) 강재순(姜在淳)은 한말 지방 관료로 1919년 3월 18일 진주 정촌(井村)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로 나오고, 유석근(劉錫謹)은 1921년 남천(南川) 이도묵(李道默 ; 1843~1916)의『南川集』을 간행한 기록이 있고, 대원사 앞 바위 석각의 박응종(朴膺鍾,1893~1919)은 字가 경우(景愚) 號는 이당(易堂), 면우(俛宇) 곽종석과 회봉(晦峰) 하겸진先生의 門人으로, '파리장서운동의 전개와 영남지역의 숨은 협력자' 논문(*)에 이름이 나와 있어, 남사 마을 분으로 판단하고, 이사재 주인 월헌(月軒) 박우근(朴雨根) 선생께 연락을 하여, 밀양 박씨 세보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