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4)

도솔산인 2020. 1. 18. 00:30

1472년 김종직 유두류록의 점필재길 길라잡이(4)

 

4. 여러 산과 봉우리들을 살피다[천왕봉-영신사]

 

17, 신사일. 향적사에서 일출을 보고 새벽밥을 재촉하여 먹고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오른다. 그날의 기온은 '신에 밟힌 초목들은 모두 고드름이 붙어 있었다,' 라고 하였으니 영하의 날씨였다. 성모묘에 들어가 예를 올린 후 북루(정상)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한다. 반야봉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함양과 진주의 남강, 남해와 거제의 군도까지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유두류록에 28개의 주변 산들을 모두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그날의 가시거리가  매우 좋은 쾌청한 날씨였음을 알 수 있다. 점필재가 주변의 산 이름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동국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최석기 교수님)  또 '천왕봉에서 좌고대가 보인다.'라고 하였는데 좌고대에 오르면 실제로 천왕봉이 보인다. 김종직 선생은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상봉을 출발하여 통천문을 지나 제석봉에 오른다. 제석봉의 당시 이름은 중산임을 알 수 있다. 유두류록 云,「엄천(嚴川)을 경유하여 오르는 자들은 북쪽에 있는 제이봉(第二峯)중산(중봉)이라 하는데, 마천(馬川)을 경유하여 오르는 자들은 증봉(甑峯, 촛대봉)을 제일봉으로 삼고 이 봉우리를 제이봉으로 삼기 때문에 그들 또한 이것을 중산(중봉)이라 일컫는다.」 김종직 선생은 천왕봉과 제석봉에서 '再登天王峯''中峰望海中諸島' 2수의 시를 남긴다.

 

☞ 코스 : 향적사(出)→천왕봉→통천문→중산(제석봉)→증봉(촛대봉)→저여원(세석)→창불대→영신암(宿)

 

 

 

천왕봉 사진<弘雲>님

 

 

통천문 사진<조봉근>님

 

 

통천문 사진<조봉근>님

 

 

 

再登天王峯 : 다시 천왕봉에 오르다

 

五嶽鎭中原 : 오악이 중원을 진압하고

東岱衆所宗 : 동쪽 대산(동악, 태산)이 뭇 산의 종주인데...

豈知渤海外 : 어찌 알았으리요? 발해 밖에

乃有頭流雄 : 바로 웅장한 두류산이 있음을...

崑崙萬萬古 : 곤륜산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地軸東西通 : 지축地軸이 동서로 통하고

幹維掣首尾 : 줄기가 머리와 꼬리를 연결했으니

想像造化功 : 조화의 공을 상상할 만하구나.

繄我乏仙骨 : ! 나는 신선의 골상이 되기는 모자라

塵埃久飄蓬 : 속세에서 오래도록 떠돌아다니다

牽絲古速含 : 옛 속함(함양) 고을의 수령이 되었는데

玆山在雷封 : 이산이 함양 관내에 있을 줄이야...

省斂馬川曲 : 마천 구석의 가을걷이를 살피는데

時序秋正中 : 계절은 가을의 정 중앙이라.

試携二三子 : 시험 삼아 두 세 제자를 거느리고

翫月天王峯 : 천왕봉에 달구경 간다네.

捫蘿恣登頓 : 등나무 넝쿨 잡고 멋대로 오르다 지쳐서

足力寄短筇 : 발의 힘을 짧은 지팡이(단장)에 맡겼는데

山靈似戲劇 : 산신령이 연극하는 것과도 같아서

霧雨兼顚風 : 안개비에 아울러 세찬바람까지 불어대는구나.

齋心且默禱 : 마음을 깨끗이하고 또 마음 속으로 기도하여

庶盪芥蒂胸 : 거의 가슴의 답답함을 씻어버렸네.

今朝忽淸霽 : 오늘 아침에는 홀연(문득) 맑게 개이니

神其諒吾衷 : 산신령이 (아마)내 정성을 살펴주신 것이라.

遂忘再陟勞 : 드디어 다시 오르는 수고를 잊고서

絶頂窺鴻濛 : 정상에서 천지 자연의 광대함을 엿보고

浩浩俯積蘇 : 넓고 넓은 우거진 숲을 굽어보니

如脫天地籠 : 천지의 새장을 벗어난 듯하구나.

群山萬里朝 : 여러 산들은 멀리서 조회하듯

眼底失窮崇 : 눈 아래 높은 것이 하나도 없어라.

北望白玉京 : 북쪽으로 백옥경(한양)을 바라보는데

滅沒南飛鴻 : 남쪽으로 날던 기러기는 사라지네.

溟海卽咫尺 : 큰 바다는 바로 지척이라

際天磨靑銅 : 하늘 끝에서는 청동을 연마하네.

乖蠻與隔夷 : 오랑캐 섬들과는 멀리 떨어져

雲水和朦朧 : 구름과 바다의 조화가 몰롱하구나.

遠瞻若迷方 : 먼 곳을 보면 방향이 헷갈린 듯하나

近挹忻奇逢 : 가까이 읍하면(보면) 기이한 만남(구경)이 기쁘구나.

蒼虯舞素壁 : 푸르고 굽은 소나무 절벽 위에 춤추고

赤羽低晴空 : 붉은 태양은 날 개인 하늘에 낮게 드리우네.

萬壑水奔流 : 만 구렁(골짜기)의 물은 세차게 흘러서

逶迤拕玉虹 : 구불구불 옥무지개를 끌어당기고

十洲隱積皺 : 십주는 쌓인 주름(골짜기)에 숨어있어

指顧面面同 : 가까이에서 보면 저마다(면면이) 같구려.

諸峯悉醞藉 : 여러 봉우리는 모두 너그러워

有似兒孫從 : 마치 자손이 (부조를) 따르고

般若欲爭長 : 반야봉은 높이를 다투려고 하여

紫蓋於祝融 : 자개가 축융의 경우와 같구려.

懷哉靑鶴洞 : 그립구나! 청학동이여!

千載祕仙蹤 : 천년도록 신선의 자취 숨겼기에...

長嘯下危磴 : 길게 읊조리며 위험한 산비탈 내려가니

如將値靑童 : 청학동의 선동을 만날 것만 같구나.

飇梯起輕霧 : 棧道(사다리)에 광풍이 부니 안개는 가볍게 일고

返照明丹楓 : 빛이 반사되어 단풍이 밝구나.

雖負端正月 : 비록 단정한 달(한가위 보름달)은 없었지만

眞源今已窮 : 선도의 본원은 이제 이미 다 궁구(탐색)하였네.

倏陰而倏晴 : 갑자기 구름이 끼었다가 갑자기 날이 개이니

厚意牋天公 : 정중한 마음으로 천제님께 편지를 올리려네.

累繭不足恤 : 발 부르튼 건 족히 근심할 것도 없고

信宿靑蓮宮 : 진실로 청련궁(사찰)에서 이틀 밤을 묵었나니

明朝謝煙霞 : 내일 아침에는 연하선경을 떠나서

繩墨還悤悤 : 공무로 다시 바쁘리라.

 

 

 

中峰望海中諸島[중봉에서 바다 가운데 여러 섬들을 바라보다]

 

前島庚庚後立立 : 앞 섬은 가로 놓이고 뒤 섬은 서서 있으니

蒼茫天水相接連 : 파란 하늘과 아득한 바다가 서로 접하여 이어져있네.

似有雲帆疾於鳥 : 구름 돛단배는 새보다 빠른 듯하니

古來說得乘槎仙 : 예로부터 도를 깨달은 신선이 탄 뗏목이네.

代輿員嶠更何處 : 신선이 사는 대여산과 원교산은 또 어느 곳인가?

巨鼇不動應酣眠 : 거오(큰 자라) 움직이지 않으니 응당 단잠이 들었나보다.

寄書紫鳳問舊侶 : 자색 봉황새에 편지를 보내어 옛 친구에게 묻노니

我今亦在方丈巓 : 지금 또한 나는 방장산 정상에 있다네.

 

세석평전은 유두류록에서 저여원(沮洳原)으로 '낮고 습기있는 지대'를 뜻하는데 <詩經 魏風>篇에 '彼汾沮洳 言采其莫' 라는 시구에서 인용하였다.  저여원(沮洳原)은 '물이 많은 습지 고원'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1545(乙巳)년 4월 良(1517~1563)이 남긴 錦溪集에도 細石을  저여원(沮洳原)이라고 하였다. 1851 하달홍의 두류기(頭流記)에는 적석평(積石坪), 1871년 裵瓚은 유두류록에서 細磧平田[(세적평전) : 작은 돌이 많은 평전]이라고 하였고, 1879년 송병선의 두류산기에서는 세석평(細石坪)이라고 하였으며, 1903년 안익제의 두류록에 드디어 오늘의 명칭인 세석평전(細石坪田)이 등장한다. 당시 시냇가(세석 아래 샘터)에는 두어 칸 되는 초막(草廠)이 있었는데 이것은 내상군(內廂軍)이 매(鷹)를 잡는 막사였다고 한다. 세석평전이 일본식 지명이라는 설은 낭설이다.  

 

 

 

촛대봉(증봉)에서 바라본 세석평전(저여원)

 

 

* 세석평전의 지명에 대한 변천 과정

유람록 세석 명칭 음양수샘 비고
1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遊頭流綠) 저여원(沮洳原)

2  1545년 황준량의 금계집(錦溪集) 저여원(沮洳原)

3  1851년 하달홍의 두류기(頭流記) 적석평(積石坪) 외적평(外積坪)
4  1871년 배찬의 유두류록(遊頭流綠) 세적평전(細磧平田)

5  1879년 송병선의 두류산기(頭流山記) 세석평(細石坪) 외세석(外細石) 음양수[石泉(돌샘)]
6  1903년 안익제의 두류록(遊頭流綠) 세석평전(細石坪田)

 

 

김종직 선생은 촛대봉(증봉)에서 세석평전을 거쳐 영신봉 헬기장을 지나 창불대에 이른다. 그리고 창불대의 풍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云,『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너무 높아서 그 아래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躑躅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 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이한 광경이었다.』   영신사로 내려가니 절 북쪽 비탈에는 석가섭(石迦葉) 한 구()가 있고,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좌고대가 있는데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이 때 종자인 옥곤(玉崑)과 염정(廉丁)은 능란히 올라가 예배를 하므로, 내가 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급히 사람을 보내서 꾸짖어 중지하게 하였다. 』이 문구는 아리왕탑에서 좌고대 상단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서북쪽으로 높은 봉우리에는 조그마한 탑()이 있었는데, 그 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웠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이다. 법당(法堂)에는 몽산 화상(蒙山和尙)의 가섭도 탱화 족자에 안평대군이 쓴 贊이 있는데 김종직 선생은 그 내용을 그대로 유두류록에 남겼는데 관련 자료는 링크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김종직 선생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영신암 시 한 수를 남긴다.

 

 

☞ 다시 읽어보는 영신대에 숨어있는 석가섭의 비밀 : http://blog.daum.net/lyg4533/16487817

 

 

 

靈神菴(영신암에서)

 

 

箭筈車箱散策回 : 전괄(창불대)와 거상(나바론 계곡)을 산책하고 돌아오니,

老禪方丈石門開 : 방장(주지승)의 노선사가 석문을 열어주네.

明朝更踏紅塵路 : 내일 아침이면 속세의 길 다시 밟으리니,

須喚山都沽酒來 : 모름지기 촌장(은둔선비)을 불러 술이나 받아오게.

 

靑鶴仙人何處棲 : 청학 탄 신선은 어느 곳에서 사는고?

獨騎靑鶴恣東西 : 홀로 청학을 타고 동서로 마음껏 다니겠지.

白雲滿洞松杉合 : 흰 구름 골에 가득하고 소나무 삼나무가 모여 있으니

多少遊人到自迷 : 약간(어느정도)의 유산객만 들어와도 저절로 길을 헤맨다네.

 

千載一人韓錄事 : 천 년의 세월 속에 일인자인 한녹사는

丹崖碧嶺幾遨遊 : 붉은 절벽 푸른 고개서 얼마나 노닐었던고

滿朝卿相甘奴虜 : 조정 가득한 경상(정승판서)664들은 노예와 포로 됨을 감수하는데

妻子相携共白頭 : 처자들을 이끌고 들어와 함께 백발이 되었네.

 

雙溪寺裏憶孤雲 : 쌍계사 안에 고운을 생각하니

時事紛紛不可聞 : 어지러웠던 당시의 일을 들을() 수가 없구나.

東海歸來還浪跡 : 해동(신라)으로 돌아와 도리어 유랑했던 발자취는

秖緣野鶴在鷄群 : 다만 야학이 군계 속에 있었던 연유로다.

(고운이 여럿 가운데 홀로 특출난 까닭이라네)

 

 

 

 

 

 

창불대

 

 

영신대(영신암)

 

 

석가섭

 

 

좌고대 사진<순천 산님>

 

 

추강암에서 내려다 본 좌고대

 

 

 

4. 여러 산과 봉우리들을 살피다[천왕봉-영신사]

 

17, 신사일.

새벽녘 해가 양곡(暘谷)에서 솟아오르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기운이 노을 빛깔이었다. 좌우에서는 모두 내가 몹시 피곤하여 다시 천왕봉을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생각컨대, 수일 동안 짙게 흐리던 날이 갑자기 개어 하늘이 나를 대단히 도와준 것인데, 지금 지척에 있으면서 힘써 다시 올라가지 않는다면 평생 동안 마음속에 담아온 것을 끝내 씻어내지 못하리라 여겨졌다. 그래서 마침내 새벽밥을 재촉하여 먹고는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고 지레 석문(石門)을 통하여 올라가는데, 신에 밟힌 초목들은 모두 고드름이 붙어 있었다. 성모묘에 들어가서 다시 술잔을 올리고 사례하기를, “오늘은 천지가 맑게 개이고 산천이 환하게 트였으니, 이는 실로 신의 도움을 힘입은 것이라, 참으로 깊이 기뻐하며 감사드립니다.” 라고 하고, 이에 유극기, 해공과 북루(北壘)를 올라가니, 조태허는 벌써 판옥(板屋)에 올라가 있었다. 아무리 높이 나는 큰 기러기와 고니일지라도 우리보다 더 높이 날 수는 없었다. 이 때 막 날이 개니 사방에는 구름 한 점도 없고, 다만 대단히 아득하여 끝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대체로 먼 데를 구경하면서 그 요령이 없다면 나무꾼의 소견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니 어찌 먼저 북쪽을 바라본 다음, 동쪽, 남쪽, 서쪽을 차례대로 바라보고 또 가까운 데로부터 시작하여 먼 데에 이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하니, 해공이 그 방도를 아주 잘 일러 주었다.

[원문]

辛巳. 曉日升暘谷. 霞彩映發. 左右皆以余困劇. 必不能再陟. 余念數日重陰. 忽爾開霽. 天公之餉我. 多矣. 今在咫尺. 而不能勉強. 則平生芥滯之胸. 終不能盪滌矣. 遂促晨餔. 褰裳. 徑往石門以上. 所履草木. 皆帶氷凌. 入聖母廟. 復酹而謝曰. 今日. 天地淸霽. 山川洞豁. 實賴神休. 良深欣感. 乃與克己解空. 登北壘. 太虛已上板屋矣. 雖鴻鵠之飛. 無出吾上. 時因新霽. 四無纖雲. 但蒼然茫然. 不知所極. 余曰. 夫遐觀而不得其要領. 則何異於樵夫之見. 盍先望北而次東. 次南次西. 且也自近而遠. 可乎. 空頗能指示之.

 

이 산은 북쪽에서 이어와서 남원(南原)에 이르러 우뚝 솟아난 것이 반야봉(般若峯)인데, 동쪽으로 거의 이백 리를 뻗어 와 이 봉우리에 이르러 재차 우뚝하게 솟아올라 북쪽으로 이어져 다하였다. 그 사면(四面)의 빼어남을 경쟁하고 흐름을 다투는 조그만 봉우리와 계곡들에 대해서는 계산에 능한 사람이라도 그 숫자를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살펴보면 성첩(城堞)을 끌어서 둘러놓은 것과 같이 생긴 것은 함양(咸陽)의 성()일 듯하고, 청황색이 복잡하게 섞인 속에 흰 무지개가 관통한 것과 같은 모습은 진주(晉州)의 강과 같은 듯하며, 푸른 산봉우리들이 한점씩 얽히어 사방으로 가로질러서 곧게 늘어 선 것들은 남해(南海)와 거제(巨濟)의 군도(群島)일 듯하다. 산음(山陰), 단계(丹谿), 운봉(雲峯), 구례(求禮), 하동(河東) 등의 고을들은 모두 겹겹의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원문]

是山. 自北而馳至南原. 首起爲般若峯. 東迤幾二百里. 至此峯. 更峻拔. 北蟠而窮焉. 其四面支峯裔壑. 競秀爭流. 雖巧曆. 不能究其數. 見其雉堞. 若曳而繚者. 咸陽之城歟. 靑黃膠戾. 而白虹橫貫者. 晉州之水歟. 靑螺點點. 庚而橫. 矗而立者. 南海巨濟之群島歟. 若山陰丹谿雲峯求禮河東等縣. 皆隱於襞積之中. 不得而視也.

 

그리고 북쪽으로 지척에 있는 산들은 바로 황석(黃石) 안음(安陰)에 있다.과 취암(鷲巖) 함양(咸陽)에 있다.이고, 멀리 있는 것들은 덕유(德裕) 함음(咸陰)에 있다., 계룡(鷄龍) 공주(公州)에 있다., 주우(走牛) 금산(錦山)에 있다., 수도(修道) 지례(知禮)에 있다., 가야(伽耶) 성주(星州)에 있다.이다. 또 동북쪽으로 지척에 있는 산들은 황산(皇山) 산음(山陰)에 있다.과 감악(紺嶽) 삼가(三嘉)에 있다.이고, 멀리 있는 것들은 팔공(八公) 대구(大丘)에 있다., 청량(淸涼) 안동(安東)에 있다.이다. 동쪽으로 지척에 있는 산들은 도굴(闍崛) 의령(宜寧)에 있다.과 집현(集賢) 진주(晉州)에 있다.이고, 멀리 있는 것들은 비슬(毗瑟) 현풍(玄風)에 있다., 운문(雲門) 청도(淸道)에 있다., 원적(圓寂) 양산(梁山)에 있다.이다. 동남쪽으로 지척에 있는 산은 와룡(臥龍) 사천(泗川)에 있다.이고, 남쪽으로 지척에 있는 산들은 병요(甁要) 하동(河東)에 있다.와 백운(白雲) 광양(光陽)에 있다.이고, 서남쪽으로 멀리 있는 산은 팔전(八顚) 흥양(興陽)에 있다.이다.

서쪽으로 지척에 있는 산은 황산(荒山) 운봉(雲峯)에 있다.이고, 멀리 있는 것들은 무등(無等) 광주(光州)에 있다., 변산(邊山) 부안(扶安)에 있다., 금성(錦城) 나주(羅州)에 있다., 위봉(威鳳) 고산(高山)에 있다., 모악(母岳) 전주(全州)에 있다., 월출(月出) 영암(靈巖)에 있다.이고, 서북쪽에 멀리 있는 산은 성수(聖壽) 장수(長水)에 있다.이다.

[원문]

山之在北而近曰黃石安陰. 曰鷲巖咸陽. 遠曰德裕咸陰. 曰雞龍公州. 曰走牛錦山. 曰修道知禮. 曰伽耶星州. 東北而近曰皇山山陰. 曰紺嶽三嘉. 遠曰八公大丘. 曰淸涼安東. 在東而近曰闍崛宜寧. 曰集賢晉州. 遠曰毗瑟玄風. 曰雲門淸道. 曰圓寂梁山. 東南而近曰臥龍泗川. 在南而近曰甁要河東. 曰白雲光陽. 西南而遠曰八顚興陽. 在西而近曰荒山雲峯. 遠曰無等光州. 曰邊山扶安. 曰錦城羅州. 曰威鳳高山. 曰母岳全州. 曰月出靈岩. 西北而遠曰聖壽長水. 

 

이상의 산들이 혹은 조그마한 언덕 같기도 하고, 용이나 범 같기도 하며, 혹은 음식 접시들을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칼끝 같기도 한데, 그 중에 동쪽의 팔공산과 서쪽의 무등산만이 여러 산들보다 약간 높게 보인다. 그리고 계립령(鷄立嶺) 이북으로는 푸른 산 기운이 하늘에 널리 퍼져 있고, 대마도(對馬島) 이남으로는 신기루가 하늘에 닿아 있어, 안계(眼界)가 이미 다하여 더 이상은 분명하게 볼 수가 없었다. 유극기에게 알 만한 것을 기록하게 한 것이 이상과 같다. 마침내 서로 돌아보고 자축하여 말하기를, “예로부터 이 봉우리를 오른 사람들은 많겠지만, 어찌 오늘날 우리들만큼 유쾌한 구경이야 했겠는가?”라고 하고는, ()를 내려와 바위에 걸터앉아 술 두어 잔을 마시고 나니, 해가 이미 정오였다. 여기에서 영신사와 (×) 영신봉()좌고대를 바라보니, 아직도 멀리 있었다.

[원문]

或若培塿. 或若龍虎. 或若飣餖. 或若劍鋩. 而唯東之八公. 西之無等. 在諸山稍爲穹隆也. 雞立嶺以北. 縹氣漫空. 對馬島以南. 蜃氣接天. 眼界已窮. 不復了了也. 使克己. 志其可識有如右. 遂相顧自慶曰. 自古. 登此峯者有矣. 豈若吾曹今日之快也. 下壘距磴而坐. 酌數杯. 日已亭午. 望靈神. 坐高臺. 尙遠.

 

속히 석문(石門)을 통해 내려와 중산(中山)에 올라가 보니 이곳도 토봉(土峯)이었다. 고을 사람들이 엄천(嚴川)을 경유하여 오르는 자들은 북쪽에 있는 제이봉(第二峯)을 중산이라 하는데, 마천(馬川)을 경유하여 오르는 자들은 증봉(甑峯)을 제일봉으로 삼고 이 봉우리를 제이봉으로 삼기 때문에 그들 또한 이것을 중산(中山)이라 일컫는다. 여기서부터는 모두 산등성이를 따라서 갔는데, 그 중간에 기이한 봉우리가 10여 개나 있어, 모두 올라서 사방 경치를 바라볼 만하기는 상봉(上峯)과 서로 비슷했으나, 아무런 명칭이 없었다. 그러자 유극기가 말하기를, “선생께서 이름을 지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고증할 수 없는 일은 믿어주지 않음에야 어찌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곳 숲에는 마가목(馬價木)이 많은데, 지팡이를 만들만 하였으므로, 종자를 시켜 매끄럽고 곧은 것을 골라서 가져오게 하였더니, 잠깐 사이에 한 다발을 가져왔다.

 

[원문]

亟穿石門而下. 中山. 亦土峯也. 郡人由嚴川而上者. 以北第二峯爲中. 自馬川而上者. 甑峯爲第一. 此爲第二. 故亦稱. 自是. 皆由山脊而行. 其間奇峯. 以十數. 皆可登眺. 與上峯相埒. 而無名稱. 克己曰. 自先生名之. 可矣. 余曰. 其於無徵不信. . 林多馬價木. 可爲杖. 使從者. 揀滑而直者取之. 須臾盈一束.

 

 

 

증봉(甑峯)을 넘어 진펄의 평원에 이르니, 마치 문설주와 문지방의 형상으로 굽은 단풍나무가 좁은 길에 서 있었는데,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 등을 구부려야 했다. 산의 등성이에 위치한 이 평원은 5, 6리쯤 넓게 탁 트인 곳에 숲이 무성하고 샘물이 돌아 흘렀으므로, 사람이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기에 적당하였다. 시냇가에는 두어 칸 되는 초막草廠이 있었는데, 빙 둘러 섶으로 울짱을 치고 온돌土炕도 놓았다. 이것은 내상군(內廂軍)이 매를 잡는 막사였다. 나는 영랑재(永郞岾)로부터 이 곳에 이르는 동안, 언덕과 산 곳곳에 설치해 놓은 매잡이 도구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보아왔다. 아직은 가을이 깊지 않아 매 잡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은하수雲漢사이를 날아간다는 매가 어찌 이 빼어난 곳에 큼직한 덫을 설치해 두고 엿보는 자가 있는 줄을 알겠는가? 그래서 미끼를 보고 그것을 탐하다가 갑자기 그물에 걸려 노끈에 매이게 되니, 이것으로도 사람을 경계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라에 바치는 것은 고작 1, 2()에 불과한데, 재미있는 놀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난한 백성들로 하여금 눈보라를 견뎌가면서 밤낮으로 천 길 산봉우리의 꼭대기에 엎드려 있게 하니, 어진 마음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차마 못할 일이다.

[원문]

甑峯. 沮洳. 原有楓樹當徑. 屈曲狀棖闑. 由之出者. 皆不俛僂. 原在山之脊也. 而夷曠可五六里. 林藪蕃茂. 水泉縈廻. 可以耕而食也. 見溪上草廠數間. 周以柴柵. 有土炕. 乃內廂捕鷹幕也. 余自永郞岾至此. 見岡巒處處設捕鷹之具. 不可勝記. 秋氣未高. 時無採捕者. 鷹準. 雲漢間物也. 安知峻絶之地. 有執械豐蔀而伺者. 見餌而貪. 猝爲羅網所絓. 絛鏇所制. 亦可以儆人矣. 且夫進獻. 不過一二連. 而謀充戲玩. 使鶉衣啜飧者. 日夜耐風雪. 跧伏於千仞峯頭. 有仁心者. 所不忍也.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너무 높아서 그 아래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躑躅) 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 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이한 광경이었다. 해공이 여러 산골짜기가 모인 곳을 가리키면서 신흥사동(新興寺洞)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절도사(節度使) 이극균(李克均)이 호남(湖南)의 도적 장영기(張永己)와 여기에서 싸웠는데, 장영기는 개나 쥐 같은 자라서 험준한 곳을 이용했기 때문에 이공(李公) 같은 지략과 용맹으로도 그가 달아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끝내 장흥 부사(長興府使)에게로 공()이 돌아갔으니, 탄식할 일이다.

 

[원문]

暮登唱佛臺. 巉巉斗絶. 其下無底. 其上無草木. 但有躑躅數叢. 羚羊遺矢焉. 俯望荳原串麗水串蟾津之委. 山海相重. 益爲奇也. 空指衆壑之會曰. 新興寺洞也. 李節度克均. 與湖南賊張永己戰于此. 永己. 狗鼠也. 以負險故. 李公之智勇. 而不能禁遏其奔逬. 卒爲長興守之功. 可嘆已.

 

해공이 또 악양현(岳陽縣)의 북쪽을 가리키면서 청학사동(靑鶴寺洞)이라고 하였다. ! 이곳이 옛날에 신선(神仙)이 산다는 곳인가. 인간의 세계와 그리 서로 멀지도 않은데, 미수(眉叟) 이인로(李仁老)는 어찌하여 이 곳을 찾다가 못 찾았던가? 그렇다면 호사가가 그 이름을 사모하여 절을 짓고서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인가? 해공이 또 그 동쪽을 가리키면서 쌍계사동(雙溪寺洞)이라고 하였다. 세속에 얽매이지 않았던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노닐었던 곳으로 각석(刻石)이 남아 있었다. 기개를 지닌 데다 난세를 만났으므로, 중국에서 불우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내 고고하게 속세 밖에 은둔함으로써 깊고 그윽한 산천은 모두 그가 노닐며 거쳐간 곳이었으니, 세상에서 그를 신선이라 칭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겠다.

 

[원문]

又指岳陽縣之北曰. 靑鶴寺洞也. . 此古所謂神仙之區歟. 其與人境. 不甚相遠. 李眉叟何以尋之而不得歟. 無乃好事者慕其名. 構寺而識之歟. 又指其東曰. 雙溪寺洞也. 崔孤雲嘗遊于此. 刻石在焉. 孤雲. 不羈人也. 負氣槩. 遭世亂. 非惟不偶於中國. 而又不容於東土. 遂嘉遯物外. 溪山幽闃之地. 皆其所遊歷. 世稱神仙. 無愧矣.

 

영신사(靈神寺)에서 머물렀는데 여기는 승려가 한 사람뿐이었고, 절 북쪽 비탈에는 석가섭(石迦葉) 한 구()가 있었다. 세조 대왕(世祖大王) 때에 매양 중사(中使)를 보내서 향()을 내렸는데, 그 석가섭의 목에도 갈라진 곳이 있는데, 이 또한 왜구(倭寇)가 찍은 자국이라고 했다. ! 왜구는 참으로 도적이로다. 산 사람들을 남김없이 도륙했는데, 성모와 가섭의 머리까지 또 칼로 베는 화를 입혔으니, 어찌 비록 아무런 감각이 없는 돌일지라도 사람의 형상을 닮은 까닭에 환난을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오른쪽 팔뚝에는 마치 불에 탄 듯한 흉터가 있는데, 이 또한 겁화(劫火)에 불탄 것인데 조금만 더 타면 미륵(彌勒)의 세대가 된다.”고 한다. 대체로 돌의 흔적이 본디 이렇게 생긴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황당하고 괴이한 말로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서, 내세(來世)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서로 다투어 돈과 베를 보시(布施)하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다.

[원문]

宿靈神寺. 但有一僧. 寺之北崖. 石迦葉一軀. 世祖大王時. 每遣中使行香. 其項有缺. 亦云爲倭所斫. . 倭眞殘寇哉. 屠剝生人無餘. 聖母與迦葉之頭. 又被斷斬. 豈非雖頑然之石. 以象人形而遭患歟. 其右肱有瘢. 似燃燒. 亦云劫火所焚. 稍加焚. 則爲彌勒世. 夫石痕本如是. 而乃以荒怪之語誑愚民. 使邀來世利益者. 爭施錢布. 誠可憎也.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坐高臺)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네모난 돌이 얹혀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 정도였는데, 승려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이 때 종자인 옥곤(玉崑)과 염정(廉丁)은 능란히 올라가 예배를 하므로, 내가 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급히 사람을 보내서 꾸짖어 중지하게 하였다. 이 무리들은 매우 어리석어 거의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능히 스스로 이와 같이 목숨을 내거니, 부도(浮屠)가 백성을 잘 속일 수 있음을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겠다. 법당(法堂)에는 몽산 화상(蒙山和尙)의 그림 족자가 있는데, 그 위에 쓴 찬(),

 

 

蒙山畫幀迦葉圖贊

 

                         匪懈堂 李瑢

 

頭陁第一是爲抖擻: 마하가사파존자께서는 두타 수행인 두수를 바르게 실천하시어

外已遠塵內已離垢: 밖으로 이미 번뇌를 떨치시고, 안으로 離垢의 경지에 오르셨네

得道居先入滅於後: 앞서 (아라한과)를 깨달으시고 뒤에 적멸의 경지에 드셨으니

雪衣雞山千秋不朽: 눈 덮인 계족산에 깃들어 천추에 사라지지 않고 길이 전하리라

 

하였고, 그 곁의 인장(印章)은 청지(淸之)라는 소전(小篆)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비해당(匪懈堂)의 삼절(三絶)이었다.

[원문]

迦葉殿之北峯. 有二巖突立. 所謂坐高臺. 其一. 下蟠上尖. 頭戴方石. 闊纔一尺. 浮屠者言. 有能禮佛於其上. 得證果. 從者玉崑廉丁. 能陟而拜. 予在寺望見. 亟遣人叱土之. 此輩頑愚. 幾不辨菽麥. 而能自判命如此. 浮屠之能誑民. 擧此可知. 法堂有蒙山畫幀. 其上有贊. . 頭陁第一. 是爲抖擻. 外已遠塵. 內已離垢. 得道居先. 入滅於後. 雪衣雞山. 千秋不朽. 傍印淸之小篆. 乃匪懈堂之三絶也.

 

그 동쪽 섬돌 아래에는 영계(靈溪)가 있고, 서쪽 섬돌 아래에는 옥천(玉泉)이 있는데, 물맛이 매우 좋아서 이것으로 차를 달인다면 중령(中泠), 혜산(惠山)도 아마 이보다 낫지는 못할 듯하였다. 샘의 서쪽에는 무너진 절이 우뚝하게 서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영신사이다. 그 서북쪽으로 높은 봉우리에는 조그마한 탑()이 있었는데, 그 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웠다. 이 또한 왜구에 의해 넘어졌던 것을 뒤에 다시 쌓고 그 중심에 철()을 꿰어놓았는데, 두어 개의 층은 유실되었다.

 

[원문]

東砌下有靈溪. 西砌下有玉泉. 味極甘. 以之煮茗. 則中泠惠山. 想不能過. 泉之西. 壞寺巋然. 靈神. 其西北斷峯有小塔. 石理細膩. 亦爲倭所倒. 後更累之. 以鐵貫其心. 失數層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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