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3)

도솔산인 2020. 1. 17. 23:08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점필재길 길라잡이(3)

 

 

3. 향적사에 머물다[천왕봉-향적사]

 

8월 16경진일, 천왕봉 성모당에서 아침에 일어나니 비바람이 거세므로 종자들을 향적사로 보내고, 정오 무렵 비가 조금 그쳤을 때, 통천문을 지나 향적사로 내려온다. 날이 저물 무렵 구름이 걷히기 시작해 남해 바다와 섬까지 조망되고, 천왕봉 성모당의 흰 깃발이 펄럭이는 것까지 보였으며, '한밤중에는 별빛과 달빛이 모두 환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모사에서 1박을 하고 일기로 인해 추석 달맞이를 못하고 안갯속을 내려온 선생은 을씨년스러운 향적사에서 1박을 하게 되는데, 당시의 정황과 풍경이 시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사람의 발길이 없어 출입하는 길에 혜란초는 웃자라 있고, 샘터와 홈통, 타다 남은 향이 쌓여있는 쟁반 또한 사실감을 더해 준다. 이날의 코스는 상봉(성모당)→통천문→제석봉(전망대)→향적사에서 1박을 한 후에 다음날 다시 천왕봉에 오른다. 천왕봉의 등로는 제석봉 전망대에서 향적사로 비스듬하게 트레버스 하여 오르내린 것으로 추정한다.   

 

☞ 코스 : 천왕봉-통천문-향적사

 

사진 조봉근님

 

 

향적사지

 

 

금강대

 

 

금강대

 

 

 

 

 

 

 

香積庵無僧已二載(중이 떠난 지 이미 2년이 넘은 향적암에서)

 

携手扣雲關(휴수구운관) : 손을 잡고 운무로 뒤덮인 문을 두드리니

塵蹤汚蕙蘭(진종오혜란) : 속인의 발자국이 혜란초를 더럽히네.

澗泉猶在筧(간천유재견) : 아직 실개천 샘터에는 홈통이 남아있고

香燼尙堆盤(향신상퇴반) : 타다 남은 향불도 (아직) 쟁반에 쌓였어라.

倚杖秋光冷(의장추광랭) : 지팡이를 기대니 가을빛은 차가운데

捫巖海宇寬(문암해우관) : 바위를 잡고 (금강대에)오르니 온 세상이 넓구나.

殷勤報猿鶴(은근보원학) : 은근히 원숭이와 학에게 알리노니

容我再登攀(용아재등반) : 내가 다시 오르는 것을 용납해다오.

 

: 이미. : (해년), (해추). 塵蹤 : 속인의 발자취. : 산골물간, (아직유) = (). : 깜부기불신 타다가 남은 것, 탄 나머지 : 어루만질문, 붙잡을문, 海宇 : 해내의 땅, 국내. : 넓을관

 

원숭이는 산에 사는 사람으로 학은 은둔 선비로 보았다. 과연 원숭이와 학은 무엇이고 영신암 시에서 산도는 무엇일까? '猿鶴원숭이와 학' : 猿鶴沙蟲(원학사충)의 준말로 은거하는 선비를 이르는 말. 주목왕周穆王의 군대가 몰살되어 군자는 죽어서 원숭이나 학이되고 소인은 죽어 모래나 벌레가 된다는 고사[한한대사전(단국대동양학연구소)10257]

 

 

宿香積夜半開霽 [향적암에서 자는데 한밤중에야 활짝 개었다]

 

 

飄然笙鶴瞥雲聲 : 선학이 표연히(가볍게) 나니 별안간 구름 소리가 나고

千仞岡頭秋月明 : 천길 산꼭대기(천왕봉)엔 가을 달(보름달)이 밝구나.

應有道人轟鐵笛 : 응당 어떤 도인이 날라리(轟鐵철적)를 시끄럽게 불어대니

更邀回老訪蓬瀛 : 다시 회도인을 만나 (신선이 사는) 봉래와 영주를 찾으리라.

 

笙鶴 : 선학(仙鶴)과 같은 뜻으로 생황을 즐겨불던 王子喬(왕자교)가 흰 학을 타고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함. 飄然 : 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모양, 훌쩍 떠나는 모양,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양. 세상일에 구애되지 않은 모양. : 瞥眼間(별안간) 岡頭 뫼 꼭대기. 鐵笛 : 쇠로만든 피리. 날라리. : 응당 ~하겠다. : 어느, 어떤(불특정대명사) : 시끄러울굉. : 다시갱. : 만날요. 回老 : 회도인 당나라 여동빈의 별칭. 여동빈은 당나라 8중의 하나로 꼽히는 인물. 蓬瀛 : 봉래와 영주로 신선이 사는 곳.

 

선생이 향적사에서 잠을 자다가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니 구름이 마치 선학이 나는 듯 '구름에 달가는 상황' 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선학이 가벼이 날며 구름을 헤치는 소리가 난다.' 는 구절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시어의 극치 아닐까 생각한다. 1연 에서는 마치 우리가 향적사에서 8월 기망(旣望, 음력 16일)의 둥근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천문을 아는 이가 있다면 1472816일의 월령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 가을 달밤 어디선가에서 들리는 (날라리)철적의 소리는 천왕봉 성모사에서 제 의식을 지내는 소리는 아닌지 상상해 보았다. 결구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선생이 자연에서 살고 싶은 한 가닥 염원이 들어있다.

 

 

 

3. 향적사에 머물다

 

16, 경진일.

비바람이 아직 거세므로, 먼저 향적사(香積寺)에 종자들을 보내어 밥을 준비해 놓고 지름길을 헤치고 와서 맞이하도록 하였다. 정오가 지나서는 비가 약간 그쳤는데 돌다리가 몹시 미끄러우므로, 사람을 시켜 붙들게 하여 내려왔다. 몇 리쯤 가니 철쇄로(鐵鎖路)가 있었는데 매우 위험하므로, 석혈(石穴)을 뚫고 나와 힘껏 걸어 향적사에 이르렀다. 향적사에는 승려가 남아 있지 않은 기간이 벌써 2년이나 되었지만 계곡 물은 아직도 쪼개진 나무에 의지하여 졸졸 흘러서 물통으로 떨어졌다. 창문의 자물쇠와 향반(香槃)의 기름이 이전처럼 남아 있었으므로, 깨끗이 청소하도록 하고 분향(焚香)하게 한 다음 들어가 거처하였다.

[원문]

庚辰. 風雨猶怒. 先遣從者於香積寺. 具食. 令披徑路來迎. 過午. 雨少止. 石矼滑甚. 使人扶携推轉而下. 數里許有鐵鎖路. 甚危. 便穿石穴而出. 極力步投香積. 無僧已二載. 澗水猶依剖木. 潺湲而落于槽. 窓牖關鎖及香槃佛油. 宛然俱在. 命淨掃焚香. 入處之.

 

날이 저물 무렵 자욱한 구름이 천왕봉으로부터 거꾸로 불려 내려오는데, 그 빠르기가 일순간도 채 안 되었다. 그리하여 먼 하늘에는 석양이 반사된 데도 있어, 나는 손을 들어 매우 기뻐하면서, 문 앞의 너른 바위로 나아가 바라보니, 육천(䔖川)이 길게 이어져 있고, 여러 산과 해도(海島)는 완전히 혹은 반쯤만 드러나고 혹은 꼭대기만 드러나, 장막 안에 있는 사람의 상투를 보는 것과 같았고, 꼭대기를 쳐다보니 겹겹의 봉우리가 둘러싸여 어제 어느 길로 내려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당 옆에 있는 흰 깃발은 남쪽으로 펄럭였는데, 회화승(繪畫僧)이 나에게 그 곳을 알 수 있도록 알려준 것이다. 여기에서 남북의 두 바위를 내키는 대로 구경하면서 달이 뜨기를 기다렸는데, 이 때는 동방(東方)이 완전히 맑지 않았다. 다시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 등걸불을 태워서 집을 훈훈하게 한 다음에야 잠자리에 드니, 한밤중에는 별빛과 달빛이 모두 환하였다.

 

[원문]

 薄暮. 雲靄自天王峯倒吹. 其疾不容一瞥. 遙空或有返照. 余擧手喜甚. 出門前盤石. 望䔖川蜿蜒. 而諸山及海島. 或全露. 或半露. 或頂露. 如人在帳中而見其䯻也. 仰視絶頂. 重巒疊嶂. 不知昨日路何自也. 祠旁白旆. 南指而颺. 蓋繪畫僧報我知其處也. 縱觀南北兩巖. 又待月出. 于時. 東方未盡澄澈. 復寒凜不可支. 令燒榾柮. 以熏屋戶. 然後就寢. 夜半. 星月皎然.

 

* 유두류록 출처 : 한국문화 콘텐츠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