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신 화백님의 점필재길 이야기II(180805~06)
2017년 2월 25일 촛불 시위로 나라가 어수선하던 시절, 무작정 집을 나서서 차를 세운 곳이 남사 마을이다. 매화가 아직 피지 않았으나 혹시 하는 기대에 남사마을을 찾았는데 이호신 화백님이 어떤 손님을 안내하고 계셨다. 화백님이 말씀을 하시는 중간에 끼어들어 '저도 화백님의 해설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고 불고염치(不顧廉恥) 따라붙었다. 사양정사의 정씨매, 전주최씨 고가의 최씨매, 원정구려의 원정매는 보았지만, 문이 잠긴 성주이씨 고가의 이씨매를 처음 감상하였고, 이사재의 박씨매를 둘러본 후, 이화백님에게 '지금은 꽃자리(時芳齋)'에서 茶를 얻어 마시다가 이 화백님의 지리산 산수화를 접하고 다짜고짜 1472년 점필재 길을 화폭으로 복원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지난, 6월초 불일협곡 청학동 화첩산행을 하였고, 7월말과 8월초에 두 차례에 거쳐 폭염 속에서 점필재길 화첩 복원산행을 진행하게 되었다. 인문역사 복원이라는 의미 있는 산행에 선인들의 유람록과 기행시를 집대성하신 최석기 교수님과 지리산의 건달바신(乾達婆神) 민병태 선생님과 지난 2월 남사마을에서 만난 어떤 손님이 함께하셔서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회조사단 답사산행에 커다란 의미를 더하였다.
玄石 이호신 화백님은 김홍도식 부감법(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는)과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법을 뛰어넘어 관념의 그림이 아닌 반드시 그 장소, 현장에서 실물 스케치. 빠르고 정확한 화법, 주제의 캐취. 대단한 추진력과 작가정신. 열정. 늙지 않는 만년 청년의 기상이 보인다. 삼복염천(三伏炎天)에 함께하신 여러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산행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李 화백님이 복원하신 점필재길 이야기'를 의미 있게 鑑賞하시기 바랍니다.^^
점필재 선생 濯纓之所(탁영지소)
나는 본래 사람을 모으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도, 내가 남을 아는 것도, 누가 나를 아는 것도,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혹여 나의 이런 모습이 어찌 비추어 질지 모르지만, 나는 항시 이번이 마지막 산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으로 인하여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삶은 어차피 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지우며, 자기방식대로 오늘을 도려내고 살아가는 것이다. 산행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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