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점필재길

1472년 점필재길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화첩산행II(180804~06)

도솔산인 2018. 8. 6. 19:26


1472년 점필재길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화첩산행II(180804~06)



▣ 일   시 : 2018년 08월 04일~06일

▣ 코   스 : 백무동-우리동-구제석당터-제석당터-향적사터-장터목-촛대봉-적석동소지-세석산장-영신봉-영신대-창불대-세석-바른재능선-점필재탁영소-백무동

▣ 인   원 : 8명(최석기 교수님, 一丁 선생님, 송연목님, 김자준님, 조봉근님, 이상운님, 정혜종님), 2일차 합류 2명(이호신 화백님, 신용석 소장님)

▣ 날   씨 : 찜통, 맑음



지난 7월 20일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 점필재 길 1차 산행에 이어 향적암에서부터 2차 답사산행이 이어졌다. 백모당에서 제석당까지는 1610년 감수재 박여량선생의 길이라 두류산일록을 참고하였고, 향적암에서 영신사까지는  1463년 청파 이륙 선생의 유지리산록과 1487년 추강 남효온 선생의 지리산일과, 1489년 탁영 김일손 선생의 속두류록과 1611년 어우당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지명을 비교 분석하여 참고 자료로 삼았으며, 1472년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과 기행시를 기본 교재로 삼았다.


산행에 앞서 자료를 발췌하여 답사하시는 분들에게 보내드렸고 이미 선수 학습이 된 상황이라 답사 산행의 이해도가 높았다. 선인들의 두류산 유람록과 기행시를 집대성하신 최석기 교수님께서 지난 1차 산행에 이어 이번 산행에도 함께하셔서 점필재 길 복원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고, 이호신 화백님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음에도 점필재 길을 화폭으로 복원하시기 위해 신용석 소장님과 세석으로 달려오셨다. '학은 굶어죽어도 남의 곡식을 입에 담지 않는다.'라고 장담하고 살았는데, 본의 아니게 산장이 가장 바쁜 성수기에 반갑지 않은 많은 손님이 되어 대피소 직원 분들께 국밥의 폐를 끼친 것이 참으로 미안했다.


산행 전날 사천 완사에 있는 미산재에 들러 미산 선생님과 점심을 먹고 덕산을 지나 밤머리재를 넘어 백무동 야영장에 도착했다. 지리산국립공원 백무동 탐방지원센터에서 텐트를 내줘서 하룻밤을 留하고 이튿날 산행에 임했다. 점필재 길은 음력 8월15일을 전후하여 4박 5일로 진행해야 되지만, 혹서기에 많은 인원이 박산행을 한다는 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서 2박 3일씩 두 차례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화첩 복원산행을 통해 지리산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선인들의 유람길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면 산행의 목적은 이미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2회에 거쳐 1472년의 점필재 길을 복원하였고, 조사단의 열정과 역량에 따라 지리산 인문&역사 문화 DB구축의 자료로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산행을 마치고 신용석 소장님께서 마천 중국집에서 점심과 하산주를 내셨고, 이어서 남명 선생의 후손인 함양분소 조형구 소장님에게 차와 음료수 대접을 받은 후, 음정에 있는 如如山房을 둘러보고 妻城子獄으로 돌아왔다.  끝.





산천재


화암




향적사 금강대


향적사지



帝釋堂朴魯翊建屋壬戌七月日(1922년 7월)


♣ 개벽 제 34호 지리산보(192341)

현재 咸陽郡守 閔麟鎬씨는 空殼名勝古蹟이나마 보존하랴고 保勝會를 조직하고 智異山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하야 智異山誌葺輯 중이오, 同郡有志 姜渭秀씨는 遊山하는 의 편리를 키 위하야 山上望海亭을 건축하고 朴魯翊 及 靈源寺僧 一同帝釋堂을 건축하얏스며 李璡雨 及 碧松寺僧 一同馬岩堂을 건축하야(兩處皆 中峯) 本年 陽春佳節開山式하랴 한다. 本山이라 할지.


帝釋岩(제석암)




甘露泉(사진 이상운)


甘露泉


제석당터









고려낙운거사이청련서



1. 1851 하달홍의 두류기(頭流記)

무자일(85)거림촌에서 미금동(美禽洞) [*현 청학연못 아래에 위치했던 옛 마을 터 : 해석의 오류]으로 갔는데, ()에서 말하기를 두류산 남쪽 산기슭에 푸른 학이 날아와서 둥지를 틀었는데, ()의 이름이 이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미금동은 거림의 학동을 가리킴] 옷을 벗고 관을 벗고 몸을 굽혀 20 를 가서 중봉(中峰)[*촛대봉으로 추정]에 이르렀다. 꼭대기에 있는 석각(石刻)高麗樂雲居士李靑蓮書 열 글자를 쓴 것인데, 필력이 고풍스러우면서도 건장하다.


♣ 1851 하달홍의 두류기(頭流記) : http://blog.daum.net/lyg4533/16487782



2. 1879년 송병선 두류산기(頭流山記) 

누대를 오르니 왼편에는 누운 바위가 벼랑을 이루고 있고 정면에는 학동임(鶴洞壬)’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근래에 기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짓인 듯하였다. 아래에는 작은 못을 만들었고, 또 그 몇 보 아래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연수정(延壽井)’이라 하였다. 누대의 뒤에는 촉봉이 우뚝 솟아나 있었다.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율시 한 편이 새겨져 있었다.[上臺左有臥巖作崖. 面刻鶴洞壬三字. 此似近世好詭者之事矣. 底築小池. 又下幾步有井曰延壽. 臺後燭峯聳出. 巖面刻一律詩曰]

  

頭流山逈暮雲低(두류산형모운저) : 두류산 저 멀리 저녁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으니

萬壑千巖似會稽(만학천암사회계) : 만개의 골짝과 천개의 바위가 회계산(會稽山) 같구나.

杖策浴尋靑鶴洞(장책욕심청학동) : 지팡이를 짚고 청학동을 찾아가려 하는데

隔林空聽白猿啼(격림공청백원제) : 숲 너머로 부질없이 흰 원숭이의 울음소리만 들리네.

樓臺縹緲三山近(누대표묘삼산근) : 누대에선 아득히 삼신산이 가깝고

苔蘚依俙四字題(태선의희사자제) : 이끼 낀 바위에는 어렴풋한 네 글자가 새겨져 있네.

試問仙源何處是(시문선원하처시) : 시험 삼아 선원이 어디냐고 물어보노니

落花流水使人迷(낙화유수사인미) : 떨어진 꽃 흐르는 물이 사람을 미혹케 하네.

 

그 옆에는 낙운거사이청련(樂雲居士李靑蓮)이 쓴 여덟 글자가 있었는데 사람들 말로는 미수(眉叟) 이인로(李仁老)의 고적(古迹)이며, 대개 이 산에 청학동이 있다고 하였다.[傍有樂雲居士李靑蓮書八字 人言李眉叟仁老古迹也 蓋此山有靑鶴洞云]


♣ 1879년 송병선 두류산기(頭流山記) : http://blog.daum.net/lyg4533/16487786



宜人羅州鄭氏之墓(宜人은 조선 시대, 문무관 아내에게 주어지던 품계)






延壽井(연수정)





좌고대



추강암에서 본 좌고대



석가섭(170514)




창불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濯纓之所



下山吟[산에서 내려와 읊다]-김종직

 

杖藜纔下山 : 명아주 지팡이 짚고 겨우 산에서 내려오니

澄潭忽蘸客 : 갑자기 맑은 연못이 산객을 담그게 하네

彎碕濯我纓 : 굽은 물가에서 앉아 내 갓끈을 씻으니

瀏瀏風生腋 :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에서 나오는구나.

平生饕山水 : 평소 산수 욕심을 부렸는데

今日了緉屐 : 오늘은 나막신 한 켤레가 다 닳았네

顧語會心人 : 여정을 함께한 사람(제자)들에게 돌아보고 말하노니

胡爲赴形役 : 어찌 (우리가)육체의 노역에 나아갔다고 하겠는가?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점필재길 2차 답사자료(180801)


1. 백모당에서 향적암까지

 

. 1610년 박여량 선생의 두류산일록

94일 을사일 맑음.

舍馬理屐各戒從者使期會于方谷乃携杖始事登陟俯視所歷漸似高遠所謂登高必自卑者也步步緣磴樹木蔽日者幾數十里于里洞洞之半有巖屹立其底稍欿號曰河東巖世傳河東太守至此困不前進遂宿巖下因稱焉云

 

(백모당에) 말을 놓아두고 나막신을 신고서 따라온 자들에게 단단히 일러 방곡(方谷)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지팡이를 짚고 비로소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얼마쯤 올라 지나온 곳을 굽어보니 점점 높고 멀게 느껴져, 이른바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시작한다.”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비탈길을 따라가는데 해를 가린 나무들이 거의 수십 리나 늘어서 있었다. 바로 우리동(于里洞)이었다. 우리동 중간쯤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그 밑은 조금 움푹하였는데 하동암(河東巖)이라고 불렀다. 세상에 전하기를 하동태수가 이곳에 이르러 지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이 바위 아래서 묵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始達古帝釋堂舊基登眺左右巖壑指點山川形勢滿山所見非蒼檜則紅樹也非紅樹則自枯木也靑紫白黑參錯相暎如錦繡然

 

겨우 겨우 옛 제석당(帝釋堂) 에 도착하였다. 올라가서 좌우의 바위와 골짜기를 조망하고, 산과 내의 형세를 가리키며 둘러보았다. 온 산에 보이는 것이라곤 푸른 회나무가 아니면 붉게 물든 나무였으며, 붉게 물든 나무가 아니면 저절로 말라죽은 나무였다. 푸르고 붉고 희고 검은 색깔이 뒤섞여 서로 비추어서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았다.

 * = 가리킬점

 

西望百里餘有新刱蘭若二在無住之西曰靈源在直嶺之西曰兜率率乃僧舍印悟所築而自居者也悟以吾儒書爲世俗文只以識佛經爲諸僧立赤幟足跡不出洞門云

 

서쪽으로 1백여 리쯤 되는 곳을 바라보니 새로 지은 두 절이 있는데, 무주암 서쪽에 있는 절을 영원암(靈源庵)’이라 하고, 직령(直嶺) 서쪽에 있는 절을 도솔암(兜率庵)’이라 하였다. 도솔암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집으로 인오(印悟)가 지어 살고 있는 곳이다. 인오는 우리 유가의 글을 세속의 문장으로 여겨, 단지 불경(佛經)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여러 승려를 위하여 암자 앞에 붉은 깃발을 세워두었고, 발자취가 동구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日已昏黑矣萬壑烟冥萬竅風號使望之者只認其大包冲漠之間有許多生植之類隱然含蓄之量而人莫之測也到此境界尤可奇也與諸君分占東西房困睡一塲後乃喫了夕飯

 

제석당 앞에 이르자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온 골짜기에 안개가 짙게 깔리고 바람소리가 윙윙거렸다.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막막하고 어렴풋한 세계에 허다한 생물들이 은연중 그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할뿐, 인간의 지혜로서는 세세한 것을 헤아릴 수 없었다. 이곳에 올라보니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동쪽서쪽 방을 나누어 차지하고서 곤히 한숨 자고 난 뒤 저녁밥을 먹었다.

* 沖漠 : 막연하여 일정함이 없음. 막연하여 생각이 없는 모양

 

堂之制頗宏濶樑之長幾至二十三四尺矣除左右夾房外作廳三大間上以板覆之而下釘旁亦以板子圍之而無泥壁問其改刱之由則有一老媼爲化主不一月而成之云老媼幺麽之力能使人感之而作一鉅役於咄嗟之間人心之易惑難解良可歎矣

제석당의 규모는 제법 넓어 들보의 길이가 거의 23~4 정도나 되었다. 좌우의 곁방을 제외하고 가운데 삼 칸의 대청이 있었다. 지붕은 판자로 덮었는데 못을 박지 않았고, 벽 또한 흙을 바르지 않고 판자로 둘러놓았다. 다시 지은 연유를 물었더니, 한 노파가 돈을 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완성하였다고 한다. 미약한 노파의 힘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켜 순식간에 큰일을 이루었으니, 미혹되긴 쉽고 이해하긴 어려운 사람 마음에 대해 참으로 탄식할 만하다.

* 鉅役 : 큰일. 咄嗟 : 순식간에, 당장에, 몹시 바름을 이름.

 

五日丙午晴

早起趣食將發堂主老媼告曰有本官留鄕所推捉文字馬川里色掌所傳也誠可悶迫云余等共致書于鄕所使緩其令

 

5일 병오일 맑음 일찍 일어나 조반을 재촉해 먹고 출발하려는데, 제석당의 주인인 노파가 고하기를 본 고을의 유향소에서 잡으러 온다는 전갈을 마천리(馬川里)의 색장(色掌)[조선시대 성균관 소속의 임원]이 전해왔습니다. 참으로 근심스럽고 괴롭습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들이 함께 그 명령을 늦추어 달라고 유향소에 서신을 보냈다.

 

堂後有泉出自巖穴築石而貯之極淸洌迤南而行一里許出南岡之上其下有西天堂香積寺極可觀也堂則新設而寺則舊制也汝昇諸君卽下遊于西天香積余與德顒辭以曾所遊歷直至中峰同其高峻無有差別至此而望見上峯則突兀層霄高下絶等可見遠視不如近視之詳而非親履之不可妄論其高下也

 

제석당 뒤에는 바위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샘이 있었다. 돌을 쌓아 물을 막아놓았는데 물맛이 매우 시원했다.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1리쯤 가서 남쪽 묏부리 위에 올라서니 그 밑에 서천당(西天堂)과 향적사(香積寺)가 있었는데 매우 볼 만한 경관이었다. 서천당은 새로 지었고 향적사는 옛날 그대로였다. 박여승과 여러 사람들은 곧바로 서천당과 향적사로 내려가 둘러보았다. 하지만 나는 정덕옹과 함께 예전에 가본 적이 있다고 사양하고서 곧장 중봉(中峰)[제석봉]에 이르렀다. 여기는 높이가 엇비슷하여 별반 차이가 없었다[누락부분][이곳에 이르러서 상봉을 바라보면 우뚝 솟은 모양이 하늘에 닿아 높고 낮음이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멀리서 보는 것이 가까이서 자세히 보는 것만 못함을 알겠으니, 직접 밟아보지 않고 높낮이를 함부로 논할 수 없는 일이다.

* : 비스듬이 가다. 突兀 : 우뚝 솟은 모양.

 

. 개벽 제 34호 지리산보(192341)

현재 咸陽郡守 閔麟鎬씨는 空殼名勝古蹟이나마 보존하랴고 保勝會를 조직하고 智異山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하야 智異山誌葺輯 중이오, 同郡有志 姜渭秀씨는 遊山하는 의 편리를 키 위하야 山上望海亭을 건축하고 朴魯翊 及 靈源寺僧 一同帝釋堂을 건축하얏스며 李璡雨 及 碧松寺僧 一同馬岩堂을 건축하야(兩處皆 中峯) 本年 陽春佳節開山式하랴 한다. 本山이라 할지.

 

2. 향적사에서 영신사까지

 

. 14638월 이륙 선생의 유지리산록 영신사 관련

靈神寺東壇. 迦葉石像. 肩臂如火燒然. 諺傳. 燒盡人世當更. 卽有彌勒佛住世. 甚有靈驗云. 後峯有奇石削立如檣. 北臨萬丈. 復戴小石如床. 向般若峯稍低. 人有攀緣而登. 四向拜者. 以爲根性. 然其能之者. 千百僅有一二.

 

영신사(靈神寺) 동쪽 제단에는 가섭(迦葉)의 석상이 있는데 어깨와 팔에 불에 탄 듯한 자국이 있다. 세속에서 전하기를, “이 석상이 다 타면 인간 세상이 변해서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올 것이니 매우 영험함이 있다.”라고 한다. 뒤쪽의 봉우리에는 기이한 바위가 돛대처럼 솟아 있는데 북쪽으로 만 길이나 되는 벼랑에 맞닿아 있고 상처럼 생긴 돌을 그 위에 또 이고서 반야봉을 향해 조금 기울어져 있다. 부여잡고 올라 사방을 향해 절하는 자는 근기가 잘 잡혀 있다고 여겨지는데 해낼 수 있는 자는 천 명 중에 한 두 명이 있을까 말까할 정도이다.

 

庭下有小泉. 水性堅. 香甚味. 號神泉. 下而爲花開川. 東有石峯. 如浮屠狀. 居僧以爲龜社主崔文昌. 不死在此云.

 

뜰아래 작은 샘이 있는데 물이 세고 매우 맛있어서 신천(神泉)이라고 불리는데 흘러 내려가 화개천이 된다. 동쪽에 바위 봉우리가 있는데 부도(浮屠) 모양처럼 생겼다. 여기 사는 승려들은 귀사(龜社)의 주인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이 죽지 않고 여기에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 1487년 남효온 선생의 지리산일과

101일 정묘일 빈발암에 이르다.

十月丁卯朔. 留米一斗別一囧. 香積. 少年臺. 穿綿竹度鷄足. 山行三十里. 抵貧鉢庵. 庵下有霛神庵. 庵後有伽葉殿. 世俗所謂有霛驗者. 余詳視之. 一石頑然. 余從伽葉殿後攀枝仰上一山. 名曰坐高臺. 有上中下三層. 余止上中層. 心神驚悸. 不得加上. 臺後有一危石高於坐高臺. 余登其石. 俯視臺上. 亦奇玩也. 義文坐臺下. 恐懼不得上. 是日之西面淸明. 倍於曩日. 西海及鷄龍諸山. 歷歷可辨. 須臾. 還下貧鉢夕飯. 時落日在庵. 人寰夜黑.

 

시월 정묘일 1일 쌀 한 말을 남겨두고 일경과 작별하였다. 향적암을 출발하여 소년대(少年臺)에 올랐다. 솜대綿竹를 뚫고 계족봉(雜足峰)을 지나 산길로 30리를 걸어 빈발암(貧鉢庵)에 이르렀다그 아래에는(암자 아래에) 영신암(靈神庵), 암자 뒤에는 가섭전(伽葉殿)이 있었는데 세속에서 영험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그곳을 자세히 보니 한 덩이의 돌이 완연히 있을 뿐이었다. 나는 가섭전 뒤쪽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좌고대(坐高臺)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상, , 3층이 있었는데 나는 중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는데 심신이 놀라고 두근거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대의 뒤에는 위험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좌고대보다 더 높았다. 나는 그 바위에 올라 좌고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기이한 풍경이었다. 의문은 좌고대 아래에 앉아서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 날 서쪽 방면은 전날보다 훨씬 청명하여, 서해와 계룡산 등의 여러 산을 두루 분별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빈발암으로 돌아 내려와 저녁밥을 먹었는데 마침 암자에서 지는 해를 보았다. 해가 지자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 1489년 김일손 선생의 속두류록(續頭流錄)

영신암에서 자다(1489424)

()十四日壬子. 宿靈神. 前有唱佛臺. 後有坐高臺. 突起千仞. 登而目可及遠. 東有靈溪. 注於剖竹之中. 西有玉淸水. 僧云鷹所飮也. 北有石迦葉像. 堂中有畫迦葉圖. 匪懈堂三絶. 煙煤雨淋. 惜其奇寶之見棄於空山. 欲取之. 伯勖曰. 私於一家. 曷若公於名山. 以備具眼者之遊賞也. 遂不取. 百姓施財. 邀福於迦葉與天王等. 夜宿法堂. 昏霧顚風. 敲戶排窓. 氣襲人甚惡. 不可得以久留也.

 

24, 임자일. 영신사(靈神寺)에서 묵었는데, 이 절 앞에는 창불대가 있고 뒤에는 좌고대가 있는데, 천 길이나 솟아 있어 올라가면 눈으로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동쪽에는 영계(靈溪)가 있는데, 대나무 홈통을 따라 물이 흘러들었고 서쪽에는 옥청수(玉淸水)가 있는데, 매가 마시는 물이라고 승려가 말하였다. 북쪽에는 석가섭상이 있었다. 당 안에는 찬()이 적힌 가섭도(伽葉圖)가 있는데, 비해당의 삼절(三絶)이었다. 연기에 그을리고 비에 젖은 흔적이 있으나 이 진귀한 보물이 빈 산에 버려진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가져가려 하였다. 그러자 백욱이 말하기를, “사가(私家)에 사사로이 소장하는 것이, (어찌누락)명산에 공적으로 보관해두고 안목을 갖춘 사람들이 유람하며 감상하게 하는 것만 하겠습니까?”라고 하여 가져가지 않았다. 백성들이 시주하여 가섭상에 복을 비는 것이 천왕봉의 성모상에게 비는 것과 같았다. 밤에 법당에서 묵었는데 안개가 자욱하고 바람이 휘몰아쳐 문짝을 후려쳤다. 사람을 엄습하는 찬 기운이 매우 사나워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 1611년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

사자봉을 지나 의신사에 들다.

甲戌. 早辭香積. 出昂藏老樹下. 踏氷雪凌飛梯. 直南而下. 先行者在下. 後行者在上. 官士處卑. 僮僕處高. 可敬者履加其髻. 可慢者頭戴其足. 又間事類是行哉.

 

45일 갑술일. 일찍 향적암을 떠났다. 높이 솟은 고목 밑으로 나와 빙판 길을 밟으며 허공에 매달린 사다리를 타고서 곧장 남쪽으로 내려갔다. 앞서 가는 사람은 아래에 있고 뒤에 오는 사람은 위에 있어, 벼슬아치와 선비는 낮은 곳에 있고 종들은 높은 곳에 처하게 되었다. 공경할 만한 사람인데 내 신발이 그의 상투를 밟고, 업신여길 만한 자인데 내 머리가 그의 발을 떠받들고 있으니, 또한 세간의 일이 이 행차와 같구나.

 

見路傍有石如屋危. 一踴而登. 獅子峯. 昔日從下望之. 峭峭然揷雲漢者非耶. 下睇無地. 萬山陂陀. 眞壯觀亞於天王峯者也. 歷玆以降. 綿竹不過膝者. 布濩陵岊. 遂藉而坐歇. 可以替氍毹.

 

길가에 지붕처럼 우뚝 솟은 바위가 있는 것을 보고서 일제히 달려 올라갔다. 이 봉우리가 바로 사자봉(獅子峯)이다. 전날 아래서 바라볼 때 우뚝 솟아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 봉우리가 아닐까? 아래를 내려다보니 평지는 없고 온통 산비탈뿐이었다. 참으로 천왕봉에 버금가는 장관이었다. 이 봉우리를 거쳐 내려가니 무릎 정도 높이의 솜대綿竹가 언덕에 가득 널려 있었다. 이를 깔고 앉아 쉬니, 털방석을 대신할 수 있었다.

* 사자봉 촛대봉으로 추정됨. 불교식 이름으로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보현보살은 코끼리를 탔다고 함.

 

仍降萬丈蒼壁. 靈神菴. 諸峯環拱面内. 如相向而揖. 毗盧峰在其東. 坐高臺峙其北. 阿里王塔樹其西. 迦葉臺壓其後. 遂投杖. 手足行陟毗盧峯上. 凜乎不可久留也. 菴有茶鼎. 香爐. 而不見居僧. 將樵蘇白雲而不知處耶. 抑厭避塵人而潛跡亂峯間耶. 節屆淸和. 始見杜鵑花半綻. 亦知山候稍暖於上峯也.

 

이어 만 길이나 되는 푸른 절벽을 내려가 영신암(靈神菴)에 이르렀는데, 여러 봉우리가 안쪽을 향해 빙 둘러서 있는 것이 마치 서로 마주보고 읍을 하는 형상이었다. 비로봉은 동쪽에 있고, 좌고대는 북쪽에 우뚝솟아 있고, 아리왕탑(阿里王塔)은 서쪽에 서 있고, 가섭대(迦葉臺)는 뒤에 있었다. 지팡이를 내려놓고 기다시피 비로봉 위로 올라갔지만 추워서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암자에는 차솥, 향로 등이 있었지만 살고 있는 승려는 보이지 않았다. 흰 구름 속으로 나무를 하러 가서인가? 아니면 속세 사람을 싫어하여 수많은 봉우리 속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인가? 청명하고 온화한 계절이어서 두견화가 반쯤 핀 것을 비로소 보았고 산 속의 기후도 천왕봉보다는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靈神行四十里許. 山之嶄絶. 過於釰閣. 而風磴直下. 不作百八盤之勢. 緣而下者. 如自靑天落黃泉. 牽蘿引繩. 自卯至申. 而俯瞰繁綠之隙. 猶黯黯然不見底. 深矉太息. 幾乎齰指而垂戒矣. 然後下入幽谷. 披高竹㝷義神寺而宿. 夜聞杜宇亂啼. 溪聲繞榻. 始覺吾遊逸乎人間世矣.

 

영신암에서 40리쯤 내려갔는데 산세가 검각(劍閣)보다 더 험하였다. 108번 굽이친 형세가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탈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은 마치 푸른 하늘에서 황천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넝쿨을 부여잡고 끈을 잡아당기며 이른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 걷고 또 걸었다. 푸른 나무숲 틈새로 내려다보았는데, 어두컴컴하여 아래가 보이지 않아 이맛살을 찌푸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을 깨물며 정신을 차린 뒤에 내려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대나무 숲을 헤치고 의신사(義神寺)를 찾아 들어가 묵었다. 밤에 두견새 우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개울물 소리가 베갯머리에 맴돌았다. 그제야 우리의 유람이 인간 세상에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3. 영신사에서 백무동으로

徑由直旨而下 : 지름길로 직지봉(直旨峯)을 돌아 내려오는데[徑由直旨而下 : 곧바로 지름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直指로 봄]

直旨는 바른재를 한역한 것으로 보임. 

  

下山吟[산에서 내려와 읊다]

 

杖藜纔下山 : 명아주 지팡이 짚고 겨우 산에서 내려오니

澄潭忽蘸客 : 갑자기 맑은 연못이 산객을 담그게 하네

彎碕濯我纓 : 굽은 물가에서 앉아 내 갓끈을 씻으니

瀏瀏風生腋 :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에서 나오는구나.

平生饕山水 : 평소 산수 욕심을 부렸는데

今日了緉屐 : 오늘은 나막신 한 켤레가 다 닳았네

顧語會心人 : 여정을 함께한 사람(제자)들에게 돌아보고 말하노니

胡爲赴形役 : 어찌 (우리가)육체의 노역에 나아갔다고 하겠는가?

 

5. 기타자료

. 蒙山畫幀迦葉圖贊

 

                         匪懈堂 李瑢

頭陁第一是爲抖擻: 마하가사파존자께서는 두타 수행인 두수를 바르게 실천하시어

外已遠塵內已離垢: 밖으로 이미 번뇌를 떨치시고, 안으로 離垢의 경지에 오르셨네

得道居先入滅於後: 앞서 (아라한과)를 깨달으시고 뒤에 적멸의 경지에 드셨으니

雪衣雞山千秋不朽: 눈 덮인 계족산에 깃들어 천추에 사라지지 않고 길이 전하리라

 

 

. 촛대봉 명칭의 변천 과정


유람록

촛대봉

영신봉

비고

1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遊頭流錄)\

증봉(甑峰)

雪衣雞山


2

 1487년 남효온의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

빈발봉(賓鉢峰)

鷄足峰


3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록(頭流山錄)

사자봉(獅子峰)



4

 1851년 하달홍의 두류기(頭流記)

중봉(中峰)



5

 1879년 송병선 두류산기(頭流山記)

촉봉(燭峯)



 


. 세석평전의 지명에 대한 변천 과정


유람록

세석 명칭

음양수샘

비고

1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遊頭流綠)

저여원(沮洳原)



2

 1545년 황준량의 금계집(錦溪集)

저여원(沮洳原)



3

 1851년 하달홍의 두류기(頭流記)

적석평(積石坪)

외적평(外積坪)


4

 1871년 배찬의 유두류록(遊頭流綠)

세적평전(細磧平田)



5

 1879년 송병선의 두류산기(頭流山記)

세석평(細石坪)

외세석(外細石)

石泉(돌샘)

6

 1903년 안익제의 두류록(遊頭流綠)

세석평전(細石坪田)




 

. 선인들의 유산기에 나오는 세석일원의 지명

구분

좌고대

석가섭

비로봉

창불대

영신봉

촛대봉

1463년 이   륙

奇石削立如檣

迦葉臺 迦葉石像

東有石峯 如浮屠狀




1472년 김종직

坐高臺

石迦葉 迦葉殿


唱佛臺

雪衣鷄山

甑峰

1487년 남효온

坐高臺

迦葉殿



鷄足峰

賓(氷)鉢峰

1489년 김일손

坐高臺

石迦葉像


唱佛臺



1545년 황준량


千尋迦葉


唱佛臺



1611년 유몽인

坐高臺

迦葉臺

毘盧峰



獅子峰



♣ 참고문헌 및 자료

1.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과 기행시 11수 : http://blog.daum.net/lyg4533/16488033

2.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점필재 길 2차 답사 자료 : http://blog.daum.net/lyg4533/16488051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과 기행시.hwp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점필재 길 2차 답사자료.hwp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점필재 길 2차 답사자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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