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5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두류암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두류암 선인들의 유람록에서 두류암에 대한 기록은 1580년 변사정의 유두류록과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1867년 김영조의 유두류록에 주변의 풍광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변사정과 유몽인은 두류암 북쪽에 있는 대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고, 높은 대에 올라가 바라본 폭포와 암자 앞 봉우리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세 사람은 송대에서 미타봉 능선을 넘어 두류암으로 넘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서 나는 송대에서 두류암으로 직접 이어지는 길을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송대에서 장구목을 지나 어름터와 두류암 삼거리 고개에는 길이 깊게 파여있어 가축이 이동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당시 광점동에서 두류암으로 올라오는 길도 있었겠지만, 두류암이나 어..

점필재 김종직의 九隴(구롱) 길과 미타봉 소림 선방 가는 길

점필재 김종직의 아홉 모롱이(九隴) 길 길과 미타봉 소림 선방 가는 길 ▣ 일 시 : 2020년 04월 04일(토)~05일(일) ▣ 코 스 1일 차 : 광점동-두류암추정터-어름터-석상용 장군묘-부도터-아홉 번째 구롱-일강-미타봉-고열암 2일 차 : 고열암-일강(一岡)-미타봉-소림선방-벽송사 능선-장구목-어름터-빙티-두류암 터-광점동 ▣ 인 원 : 5명(미산님, 하림 조박사님, 광광자 소혼님, 지산님)+산영님(첫날 당일산행) ▣ 날 씨 : 맑음(영하 2도) 議論臺(의논대) - 김종직(1431~1492) 兩箇胡僧衲半肩 : 참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 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 : ..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지장사와 지장사 갈림길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지장사와 지장사 갈림길 3년 전 지장사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잠시 있었다. 김경렬 선생은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코스를 의탄에서 고열암으로 올라온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지리 99의 탐구팀은 김경렬 선생의 의탄설을 바로잡아 엄천에서 고열암 루트로 수정하였다. 그러나 엄천을 건너 당산나무-구시락재(구슬박재)-거머리재까지는 잘 넘어와서 엉뚱하게 한쟁이골로 진입하여 상대날등에서 지장사로 들어간 것으로 오판하여 경로를 이탈하였다. 이런 논리를 펼친 것은 유두류록 국역본에 지장사 부분의 구두점 오류로 지장사에 들른 것으로 국역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에 대해 아무런 상식도 없는 문외한이지만, 2008년 처음 지장사 터라는 곳을 답사하였을 때, 암자터가 아님을 직감하여 유두류록 원문을 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동부(洞府)와 구롱(九隴)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동부(洞府)와 구롱(九隴)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답사를 하면서 대부분의 지명을 이해하였는데, 오랫동안 유독 동부(洞府)와 구롱(九隴)을 풀지 못하였다. 지난번 박여량 길인 상류암에서 초령을 연결한 후에 지리 동부에서 마지막 남은 숙제이기도 하다. '천 번을 갈아야 비로소 거울이 밝아진다.(千磨鏡始明)'라는 퇴계 선생의 말씀대로 지난 10여 년 동안 아마도 수백 번 가까이 생각한 어휘일 것이다. 내가 아둔해서 글자만 알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것은 곧바로 답사 산행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하여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은 내 삶의 충전재이기도 하다. 점필재 길과 박여량 길에서 마지막 벽에 부딪혀 시간을 보낼 즈음, ..

점필재의 아홉 모랭이 길을 열다(고열암~구롱~청이당)

점필재의 아홉 모랭이 길을 열다(고열암~구롱~청이당) ▣ 일 시 : 2020년 03월 28일(토)~29일(일) ▣ 코 스 1일 차 : 엄천-당산나무-구시락재-적조암(차량)-지장사터-환희대-선열암-의논대-고열암 2일 차 : 고열암-일강(一岡)-동부(洞府)-구롱(九隴) 초입 바위-암자터?-벽송사 능선-송대 ▣ 인 원 : 4명(산영님, 칠성님, 소혼님) ▣ 날 씨 : 맑음(영하 2도) 宿古涅庵(숙고열암) 病骨欲支撑 : 지친 몸 지탱하려고 暫借蒲團宿 : 잠시 포단 빌려 잠을 자는데 松濤沸明月 : 소나무 물결 달빛 아래 들끓으니 誤擬遊句曲 : 구곡 선경에 노니는 듯 착각하였네. 浮雲復何意 : 뜬 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가? 夜半閉巖谷 : 한밤중 산 골짜기 닫혀있구나 唯將正直心 : 오직 올곧은 마음을 가진다면 倘得山..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기행시(엄천에서 청이당까지)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기행시(엄천에서 청이당까지) 1. 두류산을 유람하기로 하다[엄천-고열암] 나는 영남(嶺南)에서 나고 자랐으니, 두류산은 바로 내 고향의 산이다. 그러나 남북으로 떠돌아 벼슬하면서 세속 일에 골몰하느라 나이 이미 마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유람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묘년(1471년, 성종2년) 봄에 함양 군수(咸陽郡守)가 되어 내려와 보니, 두류산이 바로 그 봉내(封內)에 있어 고개만 들면 푸르게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흉년으로 인한 민사(民事)와 부서(簿書) 처리에 바빠서 거의 2년이 되도록 한 번도 유람하지 못했다. 그리고 매양 유극기(兪克己), 임정숙(林貞叔)과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항상 걸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금년(1472년, 성..

점필재 길 동부(洞府)에서 일강(一岡)을 넘어 고열암 가는 길

점필재 길 동부(洞府)에서 일강(一岡)을 넘어 고열암 가는 길 ▣ 일 시 : 2020년 03월 21일(토)~22일(일) ▣ 코 스 : 송대-벽송사 능선-사립재골-구롱(일강)-상허리길-고열암-송대-용유담 ▣ 인 원 : 3명(송연목님, 덕자님) ▣ 날 씨 : 맑음 청이당에서 고열암까지 거꾸로 가는 점필재 길에서 자꾸 만해의 심우장이 생각나는 까닭은 어째서인지... 심우장(尋牛莊) 만해 한용운(1878∼1944)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 씨 분명하다면 찾은 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은 만해가 말년을 보냈던 집으로 성북동에 있다. 그는 이곳에서 입적했다.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북향(北向)으로 지었다고 한다. 시제(詩題)의 뜻이 '소를 찾는 집'인데, 시 ..

1472년 김종직 선생 유두류록의 동부(洞府)와 구롱(九隴)을 찾아서

1472년 김종직 선생 유두류록의 동부(洞府)와 구롱(九隴)을 찾아서 ▣ 일 시 : 2020년 03월 14일(토)~15일(일) ▣ 코 스 1일 차 : 새재 마을-상류 암-초령 안부-집터-점필재 루트(상 허리길)-광점동 쑥밭재 길 2일 차 : 집터-점필재 루트(상 허리길)-사립재-집터-옹암(진주 독바위)-상류암-새재 마을 ▣ 인 원 : 4명(조박사님, 산영님, 칠성님) ▣ 날 씨 : 첫날 맑음, 다음날 눈(영하 2도)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동부(洞府)와 구롱(九隴)을 오랫동안 풀지 못하였다. 엄천과 오봉에서 올라온 유람록에 새봉과 독바위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막연히 봉과 능선을 짧게 우회하는 길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산영님을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청이당..

세이암 마애 명문 전 판서 최익현 외

세이암 마애 석각 명문 전 판서 최익현 외 前判書 崔益鉉 成彛永 崔鎭晏 李圭在 崔柄采 司果 崔廷鉉 崔柄訓 崔鎭璿 郭漢紹 崔尙鉉 ☞ 면암선생문집 부록 이해(1902년) 봄에 하동(河東)에 있는 종인(宗人) 최정현(崔廷鉉)이 횡천(橫川)에 문창후의 사당을 다시 설립하고 전에는 금천(琴川)에서 제향하였는데 이번에 옮겨 세웠다. 봉안(奉安)하는 날짜를 통고하면서 선생에게 참석하기를 굳이 청했다. 마침 문인 유기석(柳淇錫)ㆍ신종식(愼宗軾)과 종인 최기호(崔基鎬)가 와서 뵙고, 두류산을 관람하기에는 이번이 알맞은 시기라고 하였다. 선생이 이로 인해서 길을 떠났는데 문인 곽한소(郭漢紹)가 모시고 따랐다. 출처 : http://blog.daum.net/jirisanlove/7682947 ○임인년(1902, 광무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