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4

상류암에서 새봉까지 박여량 루트를 잇다(200307~08)

상류암에서 새봉까지 박여량 루트를 잇다(200307~08) ▣ 일 시 : 2020년 03월 07일(토)~08일(일) ▣ 코 스 : 1일차 새재마을-상류암-초령[새봉](원점회귀) 2일차 상류암-상류암&청이당 갈림길-동부능선-점필재 루트 상 허리길-옹암(진주독바위)-상류암-새재마을 ▣ 인 원 : 7명(一丁 선생님, 굴암산님, 산영님, 도필락님, 송연목님, 김자준씨) ▣ 날 씨 : 첫날 눈, 다음날 맑음(새벽 온도 영하 1도) 금요일(6일) 저녁 늦게 출발하여 단성면 길리 지리산 참숯굴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산천재에 문안을 드린 후, 지난 2월 22일~23일 마을터에서 능선의 안부까지 미답 구간을 연결하여 상류암에서 초령 가는 길을 완성하였다. 눈이 귀했던 지난 겨울을 보상이라도 하듯, 조개골 계곡을 들..

만수천 영대(靈臺)의 도탄변선생유대 석각

만수천 영대(靈臺)의 桃灘邊先生遺䑓 석각(200107) 산내에서 뱀사골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영대(靈臺 : 산신령 바위) 앞 만수천 계곡가의 외진 곳에 도탄 변사정 선생 관련 석각이 있다. 桃灘邊先生遺䑓(도탄변사정선생유대)의 석각은 도탄 변사정의 제자들이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리산 둘레길 안내판에 쓰여있는 영대(靈臺)와 1611년 어우당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영대촌(嬴代村)과 한자가 일치하지 않아 영인본을 찾아보니 영대촌(嬴代村)이라... 선생께서 영대촌의 유래를 잘 모르고 오기를 했을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는지(신강님). 아무튼 석각의 내용(도탄 변선생이 남긴 대)으로 미루어 도로가 나기 전에는 도탄 변사정 선생이 남긴 영대(靈臺)의 석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운성지..

선과 임병기 선생님이 보내온 카톡 석각 사진 無學○

선과 임병기 선생님이 보내온 카톡 석각 사진 無學○ 온 나라가 코로나 19로 인해 암울한 시국에도 옛님의 숨결과 그 정취를 찾아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시고, 오후에 내게 마애 無學○ 석각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쑥밭재 아래 무명 암자와 사리암터의 승탑에 대한 질문으로 인연이 되어 가끔 카톡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분으로, 승탑과 석재(石材) 불구(佛具) 연구가로 4500여 개의 관련 자료를 축척한 학계와 재야를 통틀어 최고의 권위자이다. ○字는 서예대자전과 고금이체자전(日, 雄山出版刊, 1980)에는 나오지 않고, 강희자전(中)과 한한대사전(韓,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刊 16권)에 나오는데, 台+土에서 厶의 필획을 일부 생략(?)한 것으로 본다. 무학대사는 합천 삼가현 출신으로 합천군 대병면 마애 석각 뒤에는..

천왕봉의 망해정과 제석봉의 제석당과 중봉의 마암당

천왕봉의 망해정과 제석봉의 제석당과 중봉의 마암당 천왕봉의 망해정과 제석봉의 제석당 중봉의 마암당에 대한 기록은 1923년 '개벽 제34호 지리산보(1923년 4월 1일)'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있다. '함양 군수 민인호가 함양명승고적보존회(보승회)를 조직하여 동군 유지 강위수(姜渭秀)는 등산객들의 편리를 위하여 天王峯에 망해정(望海亭)을 짓고, 박노익(朴魯翊)과 영원사승(靈源寺僧) 일동은 제석당(帝釋堂)을 건축하였으며, 이진우(李璡雨)와 벽송사승(碧松寺僧) 일동은 마암당(馬岩堂)을 건축하였는데 두 곳이 모두 중봉이다.[兩處는 皆 中峯 : 마천에서 오르는 자들은 제석봉을 中山이라고 하고, 엄천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중봉을 中山이라고 함.(김종직의 유두류록)]이다.'라는 내용에서 천왕봉의 망해정과 제석봉의 제..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석문과 옹암에 대하여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석문과 옹암에 대하여 유몽인 선생은 1611년 4월 4일 새벽 두류암을 출발하여 석문→옹암→청이당→영랑대→소년대→천왕봉→향적암에 이르는데, 여기에서는 석문과 옹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유몽인의 기행시와 두류산일록에 석문과 옹암이 등장하는데, 전후 어떤 유람록에도 옹암에 대한 언급은 없다가, 1937년 김학수의 유방장산기행에도 옹암이 보인다. 여기에서는 독바위 아래 독바위양지 마을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석문에 대해서는 1922년 권도용 방장산부에서는 금강문, 1924년 강계형의 유람록에서는 통천문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옹암에 대한 언급은 없다. 유람한 분들이 옹암에 대하여 기록을 누락할 수도 있지만, 전하는 기록대로 본다면 석문을 지나가면서 옹암에 들르지 않..

청이당에서 상류암을 지나 새봉 가는 길(200222~23)

청이당에서 상류암을 지나 새봉 가는 길(200222~23) ▣ 일 시 : 2020년 02월 22일(토)~23일(일) ▣ 코 스 : 새재마을-상류암 터-청이당(두류암 갈림길)-옹암(진주 독바위)-상류암터-초령(새봉)-상류암 터-새재마을 ▣ 인 원 : 6명(산영님, 칠성님, 도원님, 날개님 부부 ▣ 날 씨 : 맑음(새벽 온도 영하 5도) . 2018년 4월 14일(*) 아침부터 비가 종일 내리던 날, 진주독바위(옹암)와 새봉 사이 독바위골(현 지도에서 독바위양지 지명은 오류)로 올라가 옹암(진주독바위)에서 노숙을 한 후, 15일 독바위 앞 골짜기를 내려오면서 상류암터를 찾게 되는데, 이후 캠샤프트 해프닝과 지리 99 꼭대님의 온갖 조롱과 비난에도 나는 박여량 길 답사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2019년 9월 ..

대원사 옛길 심원대의 독립운동가 김황(金榥) 성명 석각

대원사 옛길 심원대의 독립운동가 김황(金榥) 성명 석각 대원사 앞 이당(易堂) 박응종(朴膺鍾, 1893~1919) 선생의 석각을 찾은 후, 남사마을 니사재(尼泗齋)의 주인 월헌(月軒) 박우근(朴雨根) 선생 댁에서 박응종(朴膺鍾) 선생의 문집 이당고(易堂稿, 목활자본)를 접하게 되는데, 이당고(易堂稿)에서 중재(重齋) 김황(金榥, 1896~1978) 선생의 이름을 처음 본듯하다. 이번 산행에서 산영(山影) 조규완 교수님의 안내로 박여량 길(청이당-상류암 터-초령)을 답사한 후에, 대원사 앞 옛길 심원대(尋源䑓)에서 김황(金榥) 선생의 성명 석각을 만났다. 석각을 안내한 산영(山影)님은 남명 선생의 13대 후손이고, 칠성님은 니사재(尼泗齋) 밀양 박씨 송월당의 후손이며, 심원대(尋源䑓)의 성명 석각 김황(金..

삼신동 세이암 석각(180428)

삼신동 세이암 석각(180428) 1489년 濯纓(탁영) 선생의 [두류산기행록]에는 洗耳嵒과 濯纓臺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4월 25일 영신사를 출발해서 덕평봉에서 내려와 의신사에서 잠시 쉬었다가 신흥사에 이르러 '절 앞에 맑은 못과 널찍한 바위가 있었는데 저녁 내내 놀 만하였다. 이 절은 시냇가에 세워져서 여러 사찰 중에서 가장 빼어나 유람 온 사람이 돌아가기를 잊게 하기에 충분하였다.'라고만 기록하였지 洗耳嵒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 한 가지는 어떤 유산기에도 濯纓臺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막연하게 김일손선생의 호가 濯纓이라 하여 濯纓이 쓴 글씨라고 추측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전국의 명산대천에 濯纓臺가 수없이 많은데, 김일손 선생의 글씨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한말에 새겨졌을..

영랑대에서 쑥밭재를 지나 새봉 가는 길(200213~14)

영랑대에서 쑥밭재를 지나 새봉 가는 길(200213~14) ▣ 일 시 : 2020년 02월 13일(목)~14일(금) ▣ 코 스 : 새재마을-청이당-행랑굴-영랑대-국골 사거리-쑥밭재-옹암(진주 독바위)-새봉-새재-새재마을 ▣ 인 원 : 3명(백두대간 송대장님, 자일산악 고사장) ▣ 날 씨 : 맑음(새벽 온도 0도) 夜坐即事 : 밤에 앉아서 穌齋 盧受愼(1515∼1590) 高坐容先整 : 곧추 앉아 먼저 자세부터 가다듬으니 才求放便回 : 겨우 놓쳤던 마음이 바로 돌아왔건만 不敎奔似馬 : 고삐 풀린 말처럼 내닫지 못하게 하니 只怕死如灰 : 싸늘하게 식은 재 같이 될까 두려워라 饑鼠閑行止 : 굶주린 쥐는 느릿느릿 가다가 멈추니 輕風自往來 : 가벼운 바람만 저절로 오고 가는구나 何須閉耳目 : 어찌 굳이 눈과 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