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대원사 계곡 장항동의 성명 석각(200110)

도솔산인 2020. 1. 15. 12:46

 

대원사 계곡 장항동의 성명 석각(200110)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장항동 석각 인물들을 검색하니 대원교 직전 석각 성명 도사(都事) 강재순(姜在淳)은 한말 지방 관료로 1919년 3월 18일 진주 정촌(井村)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로 나오고, 유석근(劉錫謹)은 1921년 남천(南川) 이도묵(李道默 ; 1843~1916)의『南川集』을  간행한 기록이 있고, 대원사 앞 바위 석각의 박응종(朴膺鍾,1893~1919)은 字가 경우(景愚) 號는 이당(易堂), 면우(俛宇) 곽종석과 회봉(晦峰) 하겸진先生의 門人으로, '파리장서운동의 전개와 영남지역의 숨은 협력자' 논문(*)에 이름이 나와 있어, 남사 마을 분으로 판단하고, 이사재 주인 월헌(月軒) 박우근(朴雨根) 선생께 연락을 하여, 밀양 박씨 세보에 있는 인물임을 확인하였다.

 

* 파리장서운동의 전개와 영남지역의 숨은 협력자들 : http://cafe.daum.net/jangdalsoo/ZdH1/67

 

 

* 석각소재 :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산 3-4번지

 

贈貞夫人 密陽朴氏有功碑丙午四月/都事姜在淳 夫人南平文氏有功碑丙寅三月[위치 : 대원교 직전]

 

都事 姜在淳 : 진주 정촌 사람. 한말 지방 관료 . 1919년 3월 18일의 진주군 정촌면(晋州郡 井村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추정.[丙午:1906년.丙寅:1926년] 대안면장, 1912년 봉양학교 설립. 남평문씨 학교 설립기금 출연한 사람. 1915년 아들 강상호(1887~1957) 봉양학교 운영, 삼일운동 옥고를 치름, 국채보상운동, 형평사 운동 등에 심혈을 기울임. 진주 석류공원 묘와 비석이 있음.[조사자 : 송창준님]강재순은 진주 대안면장으로 있으면서 민간 서당인 봉양재를 승계해 면 소유의 농지에 1910년 사립 진주봉양학교를 주도적으로 세워 초대 교장으로 취임함. 이런 부친의 영향으로 장남 강상호는 형평운동을 비롯한 독립과 교육, 인권 운동에 힘썼다. 진주지역 최초의 서양화가로 스물넷에 요절한 강신호는 아래 동생이다. 진주시 주약동 석류공원 밑 새벼리 길가에 위치정삼품통정대부강공재순지처숙부인전주이씨시덕불망비(正三品通政大夫姜公在淳之妻淑夫人全州李氏施德不忘碑)(1917) 

 

 

 

경남일보 1910년 11월 7일(월) 3면 ‘잡보’에 실린 내용

 

夫人南平文氏 경남일보 보도 내용 

文夫人紀念 當地 居하는 前參奉 李圭復氏의 夫人 南平文氏는 私立 鳳陽學校의 庇瓦修理費 四百환을 寄附함은 已報어니와 同校에서는 同夫人의 涓義함을 紀念하기 爲하야 該校 附近에 碑石을 竪立 表彰한다더라. 진주에 사는 전 참봉 이규복씨의 부인 남평 문씨는 사립 봉양학교의 지붕 기와 수리비 사백환을 기부하였다는 것은 이미 보도했지만, 봉양학교에서는 문씨 부인의 의로운 기부를 기념하기 위하여 봉양학교 부근에 비석을 세우고 이를 표창한다더라. 출처 : 경남일보(http://www.gnnews.co.kr)

* 봉래초등학교 기념비(1910)/진주성내 불망비(1917)/장재동 164번자 불망비(1927)

 

 

 

 

 

우로부터 유석근(劉錫謹), 유석정(劉錫鼎), 박규삼(朴奎參)[위치 : 대원교 직전]

 

유석근(劉錫謹) : 남사마을의 남천(南川) 이도묵(李道默 ; 1843~1916)의 제자로 추정. 1921년 유석근(劉錫謹)이남천집』을  간행함, 유석정(劉錫鼎), 박규삼(朴奎參[미상]

 

 

 

 

우로부터 권달용(權鐽容), 박응종(朴膺鍾), 양화용(梁華容) [위치: 대원사 앞 계곡 바위]

 

☞ 박응종(朴膺鍾, 1893~1919) : 字 경우(景愚) 號는 이당(易堂), 곽면우(郭俛宇, 곽종석)와 하회봉(河晦峰, 하겸진) 先生의 門生으로 한말 유학자. 파리장서운동의 숨은 협력자 논문에 나옴.

* [密陽朴氏世譜] 字景愚號易堂。一八九三癸巳生。郭俛宇河晦峰先生門生。文學夙就。不幸短命。世皆惜之。有文集二卷行干世。河晦峰先生序。一九一九年己未四月三日卒。享年二十七。○墓望椒亭後谷巳坐。有石物。碣濟南河經洛撰。行狀滄溪金銖撰。墓碣銘重齋金榥撰。<자료제공 : 남사마을 이사재 박우근님> 

 

 

 

 

김병석(金炳錫) [위치 : 대원사 앞 石杠(석강 : 돌다리) 직전 도로변]

 

☞ 고종 15년 무인(1878)125(을해) 서원을 복구해 설립하라는 명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경상도 유생 유학 박주종(朴周鍾, 1813년∼1887) 등의 상소에 이름이 보이나 동일인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장항동을 유람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상우도 사림 유생들로 동일인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장항령에 멈추어 다시 한번 옛길의 흔적을 확인하고 대원교와 대원사 주차장 앞 석각을 살펴보았다. 대원교 앞 석각 도사(都事, 종 5품 관찰사 보좌관) 강재순(姜在淳) 진주 정촌(井村) 사람으로 한말 관료이다. 1919년 3월 18일의 진주군 정촌면(晋州郡 井村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추정되고 석각의 시기는 1926년이다. 그 옆에 세 명의 성명 석각이 있는데,  유석근(劉錫謹)1921년 남천(南川) 이도묵(李道默, 1843~1916)의『남천집』을 간행한 인물로 남천(南川)의 제자로 보이며, 유석정(劉錫鼎)은 유석근의 형제로 추정, 박규삼(朴奎參)은 미확인, 남천 이도묵은 자는 경유(致維), 호는 남천(南川)이며 성산인(星山人)으로 한말 남사 마을에 살았던 유학자이다. 1877년 남천은 효효재 문진영, 후산 허유, 물천 김진호, 면우 곽종석, 월연 이도추, 약헌 하용제 등과 대원암을 경유하여 천왕봉을 유람하였다.

 

대원사 앞 바위에 있는 석각 박응종(朴膺鍾,1893~1919) 號는 이당(易堂), 곽종석과 하겸진의 제자이다. 한말 유학자로 '파리장서운동의 숨은 협력자' 논문에 그이름이 보이며, 이분은 남사 마을 밀양 박씨이다. 석각 김병석(金炳錫)고종 15년 무인(1878)125(을해) 서원을 복구해 설립하라는 명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경상도 유생 유학 박주종(朴周鍾, 1813∼1887, 예천 용문 출신)의 상소에 이름이 보인다. 아무튼 성명 석각은 대부분 남명 선생의 발자취를 좇아 장항동을 유람한 사람들은 졍상우도 사림 유생들이다. 남사마을 이사재(尼泗齋)를 관리하시는 박우근 선생께 전화를 하여 박응종 선생의 생몰 연대를 묻고, 석각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를 확인하니 모르고 계셨다. 이당(易堂) 박응종(朴膺鍾)선생은 밀양박씨 세보에 '문학(文學)을 일찍 성취하였으나 불행하게도 단명하여 세상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다.(文學夙就。不幸短命。世皆惜之).'라고 한다. 향년 27세로 단명하여 사후에 양자를 들였고 이사재 박선생님의 당숙이다.

 

* 1893년 : 대원사에서 남명집 교정,

* 1904년 6월 ~ 1905년 9월 : 대원사 남천 이도묵 주자어류 重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