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0

부자암(父子岩)과 비리내(飛離奶)골 이야기

부자암(父子岩)과 비리내(飛離奶)골 이야기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三丁里) 하정(下丁) 마을에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마을에는 선유정(仙遊亭)이 있는데,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에서 선유정(仙遊亭)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선유정(仙遊亭) 입구의 바위에 석문암(石門巖) 석각과 그 아래에 '선녀가 승천한 바위'라고 하여 선녀승천유지(仙女昇天遺址)를 암각한 명문이 있다. 또한 선녀가 목욕하였다는 구시쏘(槽沼)가 있다. 1976년 송암(松菴) 정창학(鄭昌學) 선생의 선유정기(仙遊亭記)에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옛날 삼정리 하정마을에 사는 나무꾼 인걸(人傑)이 선녀들이 구시쏘(槽沼)에서 목욕하는 것을 엿보다가 아미(阿美)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다.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恥菴自矜韵(치암자긍운)외

恥菴自矜韵(치암자긍운) 頭流北麓自生鄕 : 두류의 북록은 我生의 고을이요 獨擅豪華八十霜 : 독천으로 호화로이 팔순이 되었네 宏壑瀑潭雄鼓笛 : 큰골의 폭담은 북소리 웅장하고 竹林禽譟奏笙簧 : 죽림의 새소리는 생황의 연주로세 春園寂寞鶯歌囀 : 춘원은 적막한데 앵가를 울리고 秋景美風畵幅張 : 가을 경치 고운 단풍 화폭을 펼쳤네 莫道書生骨相薄 : 서생의 골상이 박하다 말을 마오 自矜淸福享無量 : 자신의 자랑 청복 누림이 무량하오 槍岩山將軍大坐訣(창암산장군대좌결) 方壺屹立脉流連 : 방호산 높이 서서 맥이 흘러 연했고 淑氣灵棱壙席圓 : 맑은 기운 신령스런 능맥 천광 자리 둥글다. 縱閱滄桑猶不変 : 비록 창상을 겪었으나 오히려 변함이 없고 槍岩大坐孰能穿 : 창암산 장군대좌 누가 능히 찾으리 甑蛮庚兌三峯揖 : 시루봉은 ..

1593년 진주성 함락과 의병장 변사정의 부장 이잠(李潛)

1593년 진주성 함락과 의병장 변사정의 부장 이잠(李潛) 1. 燃藜室記述卷之十六 宣祖朝 晉州城陷阴兵撤還 ○ 二十九日賊陷晋州。倡義使金千鎰與其子象乾。慶尙右兵使崔慶會。忠淸兵使黃進。(以上三人三忠祠于晉陽) 全羅復讎大將高從厚。右義兵副將高得賚。左義兵副將張潤。義兵副將李潛。靈光義將沈友信。泰仁義將閔汝雲。海南義將任希進。陶灘伏兵將姜希甫。義兵將李繼璉。金海府使李宗仁。泗川縣監金俊民。藍浦縣令宋悌。本州府使徐禮元。義兵將姜熙說。金海縣令曹慶亨。判官崔琦弼。佐郞梁山璹(숙)。主簿柳復立等。皆死之。(忠淸守令之從兵使死者多不記) 1593년 6월 29일(음) 왜적이 진주성을 함락하였다.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1537-1593)과 그의 아들 김상건(金象乾), 경상도우병사 최경회(崔慶會, 1532-1593), 충청병사 황진(黃進, 1550-1593), ..

1686년 정시한 산중일기의 묘적암 전대(前臺)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 전대(前臺)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은 상헌수필(橡軒隨筆)에서 '만물을 잘 관찰하는 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만물이 없다.(善觀物者 無物不爲助)'라고 하였다. 유람록 답사는 암자터와 암자터, 샘터와 샘터, 돌포장과 축대, 숯굴과 숯굴을 연결하는 퍼즐 맞추기 놀이이다. 1686년 9월 2일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아침 식사 후에 아들 도항(道恒)이와 혜철(惠哲) 수좌와 함께 묘적암으로 가는 도중에 계학(戒學) 스님을 만나 서암(西庵) 터에 들른다. 여기에서 서암은 서동고암터를 가리키는 듯하고, 묘적암터는 회암당 승탑터로 추정한다. 정시한은 무주암에서 서암(西庵) 터를 다녀온 후 묘적암으로 돌아와 묘적암 전대에 올라갔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선..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영신사-의신사)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영신사-의신사) ▣ 일 시 : 2021년 10월 09일(토)~10일(일) ▣ 코 스 : 의신-대성마을-대승암터-대성폭포-영신대-칠선봉-선비샘-덕평마을터(천우동)-의신사 ▣ 인 원 : 3명(일정 민병태님, 정혜종님) ▣ 날 씨 : 맑음 1611년 4월 5일 향적암을 출발하여 영신암에서 의신사에 이르는 유몽인의 일정이다. 10여 년 전 선비샘에서 의신으로 하산한 일이 있으나, 당시는 유람록을 모르고 발이 산행하던 시절이라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얼마전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한국농어민신문, 2021.08.24 18:22)'를 읽고 하산길에 의문이 있어 답사를 하게 되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탈길’, ‘마치 푸른 하늘에서 황천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라는 길의 묘사를 보아 ..

지리산 최고의 조망터 금대산(211005~06)

지리산 최고의 조망터 금대산(211005~06) ▣ 일 시 : 2021년 10월 05일(화)~6일(수) ▣ 코 스 : 금대산-금대암-금계마을 ▣ 인 원 : 3명(백승철님, 김정기님) ▣ 날 씨 : 맑음 금계동(金鷄洞)에서 내려다 보이는 새별들에는 탄수(灘叟) 공의 장조카 은계(隱溪) 이진우(李璡雨, 1897~1954) 선생의 '德巖' 석각 명문이 있다. 이 덕암 위에 20개 정도의 성혈이 있는데 별자리로 추정된다. 이 인근에는 칠성동, 추성동, 새별들, 금계동(金鷄洞), 천진(天津)폭포, 성교대(星橋臺) 등 별과 관련된 지명들이 있다.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1879~1951)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에 '碧松寺를 지낸後에 七星洞을 살펴보니 北斗楸城 照臨이라.'라는 내용이 나온다. 칠선계곡을 칠성..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암자터를 찾아서III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암자터를 찾아서III ▣ 일 시 : 2021년 09월 26일(일) ▣ 코 스 : 무량굴-샘터-상무주암-서동고암-회암당승탑-암자터-석굴암자터-정자(?)터-샘터-상무주암-문수암-견성암-도마마을 ▣ 인 원 : 5명 ▣ 날 씨 : 흐림 이번 답사에서 무량굴→상무주암 등로 샘터→석굴 암자터를 연결하였고, 묘적암터(회암당부도 추정) 앞 남쪽 대를 확인하였다. 무량굴에서 등고선으로 트래버스하면 상무주암 등로 샘터 아래에 닿는다. 상무주암 등로 샘터에서 석굴이 있는 암자터까지는 고도를 조금씩 높여서 진행해야 한다. 중간에 숯가마터 2개가 있다. 무량굴→상무주암 등로 샘터→숯가마터B→숯가마터A→정자터→샘터→석굴 암자터→암자터B→묘적암터(회암당부도 추정)→무주암으로 정시한 길이 연결된..

송대마을 은병암(隱屛岩)에서 청이당 가는 길

송대마을 은병암(隱屛岩)에서 청이당 가는 길 ▣ 일 시 : 2021년 09월 23일(목) ▣ 코 스 : 송대마을-은병암(隱屛岩)-선녀굴-의논대-고열암-일강-사립재골(습지)-세모롱이 바위(三隴巖)-방장문-청이당-방장문-두리의 폐사지-품개동(야철지)-강계형의 장구목-장암(마당바위)-송대마을 ▣ 인 원 : 5명(송장섭님, 이광수님, 백승철님, 조교수님) ▣ 날 씨 : 맑음 曺교수님에게 선녀굴 아래 마을 터에서 '은병암(隱屛岩) 강시영(姜時永)' 인명 석각의 발견 소식을 듣고, 남해에 계신 송장섭 선생님 팀과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 안내 산행 약속을 잡았다. 송선생님은 선인들의 유람록과 관련 자료를 읽고 유람록 길을 답사하시는 분이다. 선생님은 함양 지곡의 개평 마을 출신으로 얼마 전에 '박여량의 초령이 새재..

송대 선녀굴 아래 집터 마애석각 隱屛岩

송대 선녀굴 아래 집터 마애석각 隱屛岩 은병암(隱屛岩) : 주자(朱子, 1130~1200)의 이름은 희(熹), 자는 원회(元晦), 호는 회암(晦庵).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학을 집대성함. 54살 되던 1183년에 무이구곡(武夷九曲) 중 다섯 번째 구비에 해당하는 은병암(隱屛岩) 밑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세우고 제자를 가르쳤다. 그가 터를 잡고 신진들을 가르친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예전부터 중국에서 신선이 살았던 곳으로 이름난 명승지이다. 중국 복건성 숭안현에 있다. 강시영[姜時永, 1788년(정조 12)-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량(汝亮, 汝良). 1819년(순조 19)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수찬을 지내고, 1829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으로 정사 이광문(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