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0

마천면 섬말(도촌리) 짚신문학 기념비

마천면 강청리 섬말(도촌) 짚신문학 기념비 소재지 :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도촌 571-3 행적자 : 오동춘 박사 창립 연대 : 1999년 3월 1일(제80주년 3.1절) 건립 시기 : 2019년 10월 9일 제573돌 한글날 세운이 : 짚신문학회 회원 일동 [개요] 오동춘 박사는 1937년 부 오문달 님과 모 하정임 님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4년 8살 때에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서 귀국하여 아버지의 고향인 마천면 도촌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천초등학교와 함양중학교 졸업하고, 1954년 서울 용문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하였다.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하여 외솔 최현배(1894-1970) 박사, 한결 기윤경(1894-1969) 박사에게 한글사랑 나라사랑 정신을, 청록파 시인 박두진(1916-1..

김종직의 유두류기행시 영신암(靈神菴) 복원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영신암(靈神菴) 복원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에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마천은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침묵하는 사람」,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아첨하고 동조하는 사람」, 나처럼 상황 파악도 못하고 「사슴을 사실대로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2006년 10월 중순 세석산장 앞 습지의 영신사지라는 곳을 다녀온 후, 의문이 들어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두류 기행시를 읽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2008년부터 점필재길 답사를 시작하였다. 영신암 시 1, 2구 "창불대와 거상곡을 산책하고 돌아오니/노선사의 방장은 석문이 열려있네"에서 1472년 8월 17일 창불대에서 영신암 석문까지 점필재의 ..

주유천하 조용헌의 방랑 고수기행I(220117~19)

주유천하 조용헌의 방랑 고수기행(220117~19) ▣ 일 시 : 2022년 01월 17일(월)~19일(수) ▣ 코 스 : 내원수행처-피아골 봉산금표-연곡사-청매암-신농산삼약초원-금대암 ▣ 인 원 : 2명 ▣ 날 씨 : 맑음 마천에 내려가 있는 것을 어찌 알고 연락이 와서, 조용헌 교수와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내원수행처에 동행하였다. 출발 전 자봉 스님께 미리 방을 덥혀놓으라고 부탁을 드렸다. 구례구역에서 픽업을 하여 내원골로 들어갔다. 주민들이 길을 막아 철조망을 통과하고 능선을 넘어 템플스테이관에 겨우 닿아 산길로 접어들었다. 쌍계사에서는 내원골 초입에 대문을 세우고, 주민들은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과 윤형철조망을 설치했다. 강호의 동양학을 창시한 조용헌 교수와 자봉 스님의 만남은 어렵게 이루어졌다. ..

점필재의 아홉모랭이길로 청이당 가는 길(220114~0115)

점필재의 아홉모랭이길로 청이당 가는 길(220114~0115) ▣ 일 시 : 2022년 01월 14일(금)~15일(토) ▣ 코 스 : 송대-선녀굴-의논대-노장대-고열암-일강-미타봉-향로봉-방장문-청이당-방장문-석상용장군묘-광점동 ▣ 인 원 : 2명(와일드지리산님) ▣ 날 씨 : 영하 5도(맑음) 본래는 눈이 내린 영랑대에 가려고 했지만, 방향을 바꿔 미타봉으로 향했다. 송대마을 박영남 할머니 댁에서 오미자차 한 잔을 마시고 점심때가 다되어 출발하였다. 배낭 무게 16kg, 이제는 극지용 침낭(2.4kg) 대신 940g 간절기용으로 겨울을 난다. 그 흔한 에어매트도 우모복도 없다. 모자가 달린 콜핑 패딩 하나가 여벌 옷의 전부이다. 취사도구도 코펠 하나뿐이다. 버닝칸 배낭을 메면 중량이 15kg 이내가 된..

마천면 삼정리 소재 벽소령의 봉산정계 금표석각

마천면 삼정리 소재 벽소령의 봉산정계 금표석각 조선 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봉산금송(封山禁松)」 조를 보면 송림 벌목을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 송금(松禁)이란 국가가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소나무가 자라는 곳을 선정해 보호하고 벌목을 금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 금산(禁山)과 봉산(封山)이 있다. 둘 다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벌목을 금지한 제도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인구가 증가하고 개간이 진행되어 삼림자원이 황폐되자, 국용재(國用材)·조선재(造船材)·궁용재(宮用材) 등을 위해서 소나무 숲 보호에 적극성을 보였고, 법령으로써 송목금양(松木禁養)에 대처해나갔다.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금산(禁山) 제도였다. 즉, 금산(禁山)이라는 것은 땔감 채취·모경(冒耕)·화전..

마천면 구양리 오도재 전망공원 시비(詩碑) 조형물

마천면 구양리 오도재 전망공원 시비(詩碑) 조형물 智異山 (지리산) 경암(敬菴) 문동도(文東道) ​ 浩浩復浩浩(호호부호호) : 넓고 넓은 그위에 또 겹쳐 광대한 모습 悠然出世塵(유연출세진) : 그렇게 아득히 세속 먼지 벗어났네 花落溪流錦(화락계류금) : 꽃이 떨어져 계곡에는 비단 같은 물 흐르고 雲生壑舖茵(운생학포인) : 구름이 생겨나니 구렁에 자리를 펼쳤네. 山川人覓道(산천인멱도) : 산과 시내에는 사람들이 길을 찾으며 天地鳥鳴春(천지조명춘) : 온세상에서 새들이 지져귀는 봄이로구나. 欲題探勝句(욕제탐승구) : 절경을 찾아서 시구를 쓰고자 하여 憑崖筆驅神(빙애필구신) : 언덕에 의지해 서니 붓은 절로 흐르는구나. ☞ 문동도[文東道, 1646(인조24년)~1699(숙종25년)] 조선후기의 시인, 본관은 ..

벽소령 봉산정계 금표 석각과 소금쟁이 능선

벽소령 봉산정계 금표 석각과 소금쟁이 능선 ▣ 일 시 : 2022년 01월 07일(금) ▣ 코 스 : 벽소령 작전도로-벽소령-봉산정계 금표-소금쟁이능선-지리산자연휴양림-진평왕 왕자 태실지 금표석각 ▣ 인 원 : 3명(선과 임병기님, 자유기고가 김희태님) ▣ 날 씨 : 맑고 쾌청함 봉산금표(封山禁標)와 태실지, 승탑을 연구하시는 분들과 만남은 서로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이번 답사는 벽소령 봉산정계 금표 석각과 마천면 가흥리 소재 진평왕 왕자 태실지 금표 석각을 조사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덤으로 추가한 것은 벽소령에서 지리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광암동까지 소금길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31일 2박 3일 산행을 하고 5일 대전에 올라왔다가 답사 전날(6일) 다시 마천으로 내려가 날이 밝기를 기다렸..

지리산 천왕봉 일월대 가는 길(211231~220102)

지리산 천왕봉 일월대(日月臺) 가는 길(211231~220102) ▣ 일 시 : 2021년 12월 31일(금)~2011년 01월 02일(일) ▣ 코 스 : 광점동-구롱길 일곱모랭이-방장문-청이당-영랑대-중봉-천왕봉(일월대)-제석당-백무동 ▣ 날 씨 : 첫날 영하 17도, 둘째날 셋째날 영하 10도 지난해 마천면지 편찬위원회에서 함양군 마천면 소재 마애 석각 명문과 비문& 정려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천면 가흥리 도로 옆 밭에서 반쯤 묻힌 승지정태현세불망비(承旨鄭泰鉉永世不忘碑)를 발견하였다. 이곳에는 좌우로 鄭近相施惠不忘碑(정근상시혜불망비)와 鄭殷相施惠不忘碑(정은상시혜불망비)가 있다. 정태현(鄭泰鉉)은 천왕봉 일월대의 필획과 같은 이름이고, 鉉과 相은 하동정씨 문헌공파 항렬자이다. 이런..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덕평마을 천우동(天羽洞) 석각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덕평마을 천우동(天羽洞) 석각  천우동(天羽洞) 석각은 청학동이라고 알려진 곳의 하나인 덕평동(德平洞)에 있다. 움막터 샘터 뒤의 바위에 천우동(天羽洞) 경태임오춘(景泰壬午春) 이청련서(李靑蓮書) 세로로 새겨져 있다. '李靑蓮書'는 육안으로 판독이 불가능하다. 경태(景泰)는 명나라 대종(代宗)의 연호이다. 경태제(景泰帝)는 중국 명나라 7대 황제(재위 1449~1457)로 이름은 주기옥(朱祁鈺)이다. 묘호는 대종(代宗) 연호는 경태(景泰)이다. 경태제(景泰帝)는 명나라 황제 영종(英宗, 정통제正統帝/天順帝)의 이복 아우로 정통제(正統帝)가 몽골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잠시 왕위에 올랐다. 영종(英宗)이 풀려나면서 왕위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임오년(壬午年)은 대종(代宗)의 재위하였을 ..

휴정(休靜) 서산대사의 유허지 三철굴암을 찾아서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유허지 三철굴암을 찾아서 ▣ 일 시 : 2021년 12월 26일(일) ▣ 코 스 : 용화정사-중철굴암-상철굴암-파란움막터-만국기터-도덕봉-의신 ▣ 인 원 : 3명(曺교수님, 지리산마실 양민호님) ▣ 날 씨 : 맑음(영하14도) 불교에 까막눈이 삼철굴암을 두 번 다녀오고, 뭔가 있나 싶어서 다시 3차 답사를 하였다. 절집에 대한 인연은 86년 대전 동구 가오동에 있는 자광사 실내 공사를 하였다. 대학에서 대불련 활동을 하였던 집사람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잠시 절집에 와있었다. 절에서 만난 인연으로 결혼을 하였다. 그런 연유로 절에 몇 년을 다녔지만 초파일에 등이나 켜는 사이비 불자였다. 그것도 오래되지 않아 발길을 끊었으니, 물고기를 얻고 통발의 고마움을 잊은 격이다.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