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1

군자사지(君子寺址)와 진평왕 태자 태실지 소고(小考)

군자사지(君子寺址)와 진평왕 태자 태실지 소고(小考) 1. 진평왕(眞平王)과 군자사(君子寺) 1684년(숙종 10년) 방장산 승려 형곡(荊谷) 복환(復還)이 쓴 군자사 사적기에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군자사에 머물며 태자를 낳았고, 이후 환도하면서 머물던 곳을 사찰로 만들어 ‘군자사’라는 사명(寺名)을 지었다. 고려조 1198년에 불일국사(佛日國師)가 상무주암에서 수도를 마치고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에 옛터를 보고 영건(營建)하려다가 이루지 못한 것을 한하였다. 이듬해 1199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곳에 중창하였다. 이후 다시 흥폐를 거듭하다가 1317년(충숙왕 4)에 혜통(慧通) 화상이 군자사를 중수하였다. 여말선초 왜구의 침략으로 소실된 것을 1404년(태종 4년)에 행호(行呼)대선사가 중창하였다..

感樹齋先生文集券之五 雜著 天嶺孝烈錄

感樹齋先生文集券之五 雜著 天嶺孝烈錄  愼孝先字百源。居池谷村。以善父母友兄弟。見稱於人。父母有疾。雖流離困頓中。憂悸之色。常在於面。藥餌之物。傍求必致。連遭父母喪。啜粥過哀。遂不起。其葬也。余佐幕本道。哀孝子之無勸。且憐其窮無以入土。發軍窆之。事聞㫌閭。 신효선의 자는 백원(百源) 지곡촌(池谷村)에 살았다. 부모님을 잘 봉양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비록 떠돌며 가난한(困頓) 가운데에도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빛이 항상 얼굴에 있었다. 약이 되는 음식(藥餌之物)을 가까운데서 구하여 반드시 이루었다. 연달아 부모의 상을 당하여 죽을 마시며 애통함이 지나쳐 마침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 장례를 행할 때 내가 본도(경상도)의 좌막(비장, 보좌관)이 되어 효자를 위해 힘쓸 것이 없음을 슬퍼하였다. 또 그 궁벽..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신광선(愼光先)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신광선  감수재 박여량과 두류산 유람을 함께 했던 신광선(愼光先, 1559~?)의 字는 경원(慶源), 본관은 거창(居昌), 지곡마을(유림면 손곡리 지곡마을) 사람이다. 박여량은 고대 정경운에게 사정이 생겨서 하루 늦게(9월 2일)  함양군 수동면 도천(현 도북리)을 출발한다. 어은정에서 고대 정경운을 만나 목동 마을(휴천면 목현리) 첨지 박춘수의 집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9월 3일) 지름길로 잔닥재를 넘어 탄감촌을 지나 용유담으로 향한다. 하루 먼저 출발한 박명부 일행은 9월 2일 지곡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신광선과 함께 다음날 용유담에서 박여량, 정경운과 합류한다. 9월 3일 군자사에서 묵고, 9월 4일 제석당, 9월 5일 천왕당, 9월 6일 상류암에서 숙박을 ..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남창에서 숙성치 가는 길)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남창에서 숙성치 가는 길) ▣ 일 시 : 2021년 07월 17일(토) ▣ 코 스 : 남창-남악사지-원달리-수락-능선사거리-오미자농장-숙성치 ▣ 인 원 : 3명(지리산아님, 박준현님) ▣ 날 씨 : 맑음 1. 잊지 말자 정유재란 길 사람이 살면서 잊어야 할 일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유몽인 길에서 '정유재란 길'을 만났다. 구례에서 숙성치를 넘어 남원으로 가는 길은 정유재란(1597년) 때에 왜군 5만7 천명이 넘어온 길이다. 거꾸로 남원에서 구례로 향하면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이다. 구례쪽에서 숙성치를 넘는 길은 계척리, 원달리, 수기리 세 군데가 있다. 그동안 숙성치를 세 번 답사하였지만 완전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 수락 마을에서 숙성치를 연결하였다. ..

지리동부 아란야 영랑대(210715~16)

지리동부 아란야 영랑대(광점동~백무동) ▣ 일 시 : 2021년 07월 15일(목)~16일(금) ▣ 코 스 : 광점동-얼음터-방장문-청이당-영랑대-중봉-상봉-장터목-백무동 ▣ 인 원 : 3명 ▣ 날 씨 : 흐림 선인들의 유람록 길을 복원하면서 지리동부 영랑대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리동부는 1472년 김종직, 1610년 박여량, 1611년 유몽인, 1871년 배찬, 1877년 허유, 박치복 등 선인들의 향기가 남아있는 곳이다. 금년 들어 달라진 것이 있다면 평일에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날 내려가서 다음날 산행을 하니 운행에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체력의 부담도 덜 느낀다. 유몽인 길 답사를 뒤로 미루고 잠시 휴식을 위해 방장문을 통해 영랑대로 들어갔다. 아홉 모롱이길은 누군가 케른을 더 ..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상류암지와 초령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상류암지와 초령    이 글은 2015.11.11. 12:36에 작성한 것으로, 내용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재작성했다. 상류암에 대해서 【진양지】 불우조(佛宇條)에서는 『장항동(獐項洞) 위쪽 에 있는데, 난후(亂後)에 중건(重建)하였다(在獐項洞上, 亂後重建)』고 하였고, 【산청군지(山淸郡誌)】내고장 전통(傳統)편 寺址 목록에서 『上流庵址는 삼장면 油坪里에 있다』고 하였다. 【진양지】 산천조의 덕산동(德山洞) 지명에서는 『서흘산(鉏屹山)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상류암(上流菴)을 거쳐 장항동(獐項洞)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 삼장천(三壯川)되어 살천(薩川)과 더불어 양당촌(兩堂村)앞에서 합하니 이를 덕천(德川)이라 이른다.』고 했다. ☞ 장항동(獐項洞)에 대하여 : http..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답사자료 II(목동~용유담)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답사자료 II(목동~용유담) ▣ 일 시 : 1610년(광해 2) 09월 02일~09월 08일 ▣ 대상산 : 두류산 ▣ 동 행 : 박여량(57세, 전世子侍講院文學), 정경운(55세, 남계서원임), 박명부(40세, 합천군수), 박명계, 신광선, 박명익, 이윤적, 노륜, 안국사 승려(처암, 운일), 악공(윤걸), 종[박여승의 종(혜금연주), 신광선의 종(피리연주), (박여량의 종(옥로, 손득)]등외(15명외) ▣ 일정&코스 • 9/2 : 함양 수동면 도천-어은정-목동 박춘수의 집 • 9/3 : 목동(함양군 휴천면 목현리)-탄감촌(휴천면 문정리)-용유담-군자사(마천면 군자리) • 9/4 : 군자사-백모당-하동암(우리동)-옛제석당터-제석당 • 9/5 : 제석당-향적사(서천당)-중봉(..

대둔산 민간산악구조대 1박 2일(수락리~석천암)

대둔산 민간산악구조대 1박 2일(수락리~석천암) ▣ 일 시 : 2021년 07월 3일(토)~4일(일) ▣ 코 스 : 수락리-수락폭포-석천암 ▣ 인 원 : 홀로 ▣ 날 씨 : 비 대둔산 석천암 암굴 입구에 양쪽에 마애 석각 枕石(침석)과 漱泉(수천)이 있는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의 필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석천(石泉)이 나오는 암굴(巖窟) 상단 중앙에 '일엄(一广)'이라는 마애 석각이 있다. 일엄(一广)은 조선 후기 영조와 순조 때에 충남 연산에 살았던 김장생의 6대손인 김상일(金相日, 1756~1822)이라는 인물이다. 김상일(金相日)의 문집 일엄유고(一广遺稿) 권지삼(卷之三) 부록(附錄) 묘지문(墓誌文)에 1805년(순조 5년) '일엄(一广)'의 나이 50세에 '大..

지리산 외삼신봉 미륵암지 마애석각(210703)

지리산 외삼신봉 미륵암지 마애석각(210703)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서 미륵암에 대한 기록은 1899년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 1870∼1946)의 유두류록이 유일하다. 1899년 8월 16일부터 8월 24일 지리산 화개동천과 불일암 등을 유람하는데, 8월 23일 쌍계사를 출발하여 불일암에서 상불재를 넘어 미륵암을 가다가 중도에서 포기하고 묵계로 내려갔다는 내용이다. 회봉은 유두류록에서 이름난 사찰 20개를 꼽는데 미륵암도 여기에 포함된다.(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5권 최석기외, 1899년 회봉 하겸진의 유두류록 p69~p71) 현재 미륵암 터에는 미륵암 중수기념 마애석각 명문이 남아있다. 彌勒菴重修記念(미륵암중수기념) 勝山菩薩具蓮花(승산보살구연화) 和尙菩薩金雙德(화상보살김쌍덕) 中元甲壬午三月 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