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감수재길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답사자료 II(목동~용유담)

도솔산인 2021. 7. 5. 12:39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답사자료 II(목동~용유담)

 

 

▣ 일 시 : 1610년(광해 2) 09월 02일~09월 08일

▣ 대상산 : 두류산

▣ 동 행 : 박여량(57세, 전世子侍講院文學), 정경운(55세, 남계서원임), 박명부(40세, 합천군수), 박명계, 신광선, 박명익, 이윤적, 노륜, 안국사 승려(처암, 운일), 악공(윤걸), 종[박여승의 종(혜금연주), 신광선의 종(피리연주), (박여량의 종(옥로, 손득)]등외(15명외)

 

▣ 일정&코스

• 9/2 : 함양 수동면 도천-어은정-목동 박춘수의 집

• 9/3 : 목동(함양군 휴천면 목현리)-탄감촌(휴천면 문정리)-용유담-군자사(마천면 군자리)

• 9/4 : 군자사-백모당-하동암(우리동)-옛제석당터-제석당

• 9/5 : 제석당-향적사(서천당)-중봉(제석봉)-천왕봉-천왕당

• 9/6 : 천왕봉-증봉(甑峰)-마암(중봉샘)-소년대(하봉)-행랑굴(현 마암)-두류암과 상류암 갈림길(쑥밭재)-상류암

• 9/7 : 상류암-초령-사립재-방곡촌(方谷村)-신광선(愼光先)의 정자-최함씨의 계당

• 9/8 : 최함씨의 계당-엄뢰대(嚴瀨臺)-상사(上舍) 정여계(鄭汝啓)의 집-뇌계(㵢溪)-도천 감수재(感樹齋)

 

 

 

▶ 1610년 감수재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경술년(1610) 8월 중순이 지난 뒤에 합천(陜川)의 박명부(朴明榑) 여승(汝昇), 고대(孤臺) 정경운(鄭慶雲) 덕옹(德顒)과 함께 9월 초하루에 두류산 유람을 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이 날 정고대(정경운)에게 일이 생겨 다시 다음날로 약속하였다.

 

○ 1610년 9월 2일(계묘)

도천(桃川)을 출발하여 어은정(漁隱亭)에 도착했다. 정덕옹(정경운)이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 목동(木洞) 이수(李秀)씨 집 앞에 있는 오래된 정자에 닿았다. 목동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박여승은 전에 초하룻날 떠나자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어제 그의 아우 박명계(朴明桂), 사위 노륜(盧)과 함께 와서 이수 씨의 집에서 자고 지곡(池谷)을 향해 출발한 지 한 식경쯤 지났다고 하였다.

우리가 그를 좇아가려 하였으나 이수 씨가 술을 가져와 마시고, 비도 올 것 같아 출발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첨지(僉知) 박춘수(朴春壽) 씨의 집에서 묵었다. 첨지는 나의 선군(先君)과 동갑으로 76세나 된 노인인데도 귀와 눈이 밝고 기력이 강건하여, 젋은이처럼 우스갯소리를 곧잘 했다. 내가 옛 친구의 아들이라고 매우 정성껏 대접해주었으며, 하룻밤 묵어가라고 붙잡았다. 나 또한 아버지의 옛 친구이기 때문에 매우 공손히 대하였다.

 

3일(갑진) : 용유담에서 박명부 박명계, 신광선, 박명익,이윤적 노륜등이 합류함.


맑음. 이수 씨가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아침 일찍 와서 인사를 시켰다.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그들과 함께 먹었다. 이수 씨가 두 아들이 지은 부(賻)를 꺼내 보였는데, 형식미를 추구하는 취향이 많이 있었다. 식사를 한 뒤 곧바로 출발하여 박대주(朴大柱)로 하여금 앞장서게 하였다. 박첨지 집 뒤의 고개를 넘어 곧장 용유담(龍遊潭)으로 향했다. 박대주는 박첨지의 아들이다. 탄감촌(炭坎村) 앞에 이르러 정덕옹과 박대주가 거기서 박여승을 기다리려 하였다. 나는 허락하지 않고 “먼저 가서 용유담에 자리를 잡고 주인으로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네”라고 하였다.

 

* 박대주 : 첨지 박춘수의 아들. 첨지는 첨지중추부사의 준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는 조선시대 중추원에 속하는 정삼품 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