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1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사지I 승탑(210529)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사지I 승탑(210529) ▣ 일 시 : 2021년 05월 29일(토) ▣ 코 스 : 산천재-거림-내대리사지I(거림암터)-운주선원-내대리사지II-삼장사지-대원사 ▣ 인 원 : 명(일정 민선생님, 선과 임병기님, 하림 조박사님) ▣ 날 씨 : 맑음 지난해 9월 말 내대리사지 대나무 밭에서 一丁 민병태 선생님이 승탑 육각 기단석과 육각 옥개석을 발견하였다. 불적 유물에 대해 까막눈이 뭔가 싶어서 승탑 연구가 선과 임병기 님을 모시고 답사를 하였다. 아직 학계와 문화재청에 보고되지 않은 미발굴 승탑 부재이다. 육각 승탑 상륜부는 파손이 되었고, 탑신석은 아래로 굴러 내려와 민가 옆의 길가에 세워져 있다. 유낙근 교수님께서 밭에 있는 것을 길가에 옮겨놓았다고 한다. 육각 대좌와 육각 옥개석은..

함양군 휴천면 마적사지와 석불대좌 하대석(201213)

함양군 휴천면 마적사지와 석불대좌 하대석(201213) ▣ 일 시 : 2020년 12월 13일(일) ▣ 코 스 : 송대-천진전터-마적사터-세진대-송대 ▣ 인 원 : 6명(문 회장님, 일정 민선생님, 산학동자님, 송연목님, 조중제님) ▣ 날 씨 : 흐리고 비 지리산길 지도에 대종교 시설인 천진전을 마적사지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선답자들이 천진전에 있는 석불 대좌 하대석을 보고 잘못 판단한 듯하다. 천진전은 전답 자리로 물이 표출되어 지표수가 흐른다. 대종교에서 복토를 하였지만 용출되는 수맥을 잡지 못했다. 또한 천진전에서 용유담은 보이지도 않는다. 절터가 될 수 없다. 꼭대님이 주장하는 천진전은 마적사지가 아니다. 석등 하대석도 이름이 틀린다. 이 석불 대좌 하대석은 1980년 무렵 천진전 단군 교당 강..

지리산 남악사(智異山 南嶽祠)

지리산 남악사(智異山 南嶽祠) 남악사는 통일신라가 삼산오악(三山五嶽)의 산악숭배 사상을 중국에서 도입하면서 유래되었다. 신라에서는 삼국통일 직후에 지방 통치 편제로 9주 5소경과 삼산오악을 배치하면서 남원에 남원경을 두고 지리산을 남악으로 삼았다. 이와 같이 고대부터 지리산은 왕실 및 국가와 긴밀한 관계가 있었으며, 고려시대에는 태조 왕건의 고려왕조 창업과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사전(祀典)에 중사(中祀)로 지리산신사에서 지방수령이 제사를 봉행하는 장소였다. 통일신라가 전국에 삼산오악을 배치하면서 지리산에 성모천왕을 산신으로 배향한다. '삼국유사' 권5 「감통」7 선도성모수희불사조에 따르면, 통일신라 조정에서 지방통치의 수단으로 삼산오악을 배치하면서 선도산의 성모(聖母)를 지리산 천왕봉에 이식시..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의 승탑과 석탑 외(201206)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의 승탑과 석탑외(201206) ▣ 일 시 : 2020년 12월 06일(일) ▣ 코 스 : 군자사터-도마사터-벽송사-신농산삼약초원-천진전-마적사터 ▣ 인 원 : 4명(문 회장님, 일정 민선생님, 선과님) ▣ 날 씨 : 맑음(포근함) 경암당과 남곡당 승탑은 군자사 터에서 옮겨왔다고 함. 통일신라 작품을 계승한 고려전기 석탑으로 추정 벽송사 창건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함. 선과님의 설명으로는 인근 폐사지(군자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함.

함양군 마천면 군자사지 승탑 지대석과 옥개석(201206)

함양군 마천면 군자사지 승탑 지대석과 옥개석(201206) ▣ 일 시 : 2020년 12월 06일(일) ▣ 코 스 : 군자사터-도마사터-벽송사-신농산삼약초원-천진전-마적사터 ▣ 인 원 : 4명(문 회장님, 일정 민선생님, 선과님) ▣ 날 씨 : 맑음(포근함) ☞ 옛 숨결 그 정취를 찾아 : https://blog.daum.net/12977705/8727049?category=5252 ▶ 참고자료 : 군자사 관련 옛 문헌의 기록 1. 군자사 관련 진평왕의 기록 가.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경상도(慶尙道) 군자사(君子寺) 지리산에 있다. 전설에,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왕위를 피해서 여기에 살다가, 태자를 낳아서 나라에 돌아가고, 집은 희사하여 절로 만들었다.” 한다. 나. 함양군수(1601-..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와룡정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와룡정 ▣ 일 시 : 2021년 05월 23일(일) ▣ 코 스 : 쌍계사-화개-와룡정(?)-남창(구례 광의면)-숙성치-용담-남원관아(남원 용담초교) ▣ 인 원 : 2명(지리산아님) ▣ 날 씨 : 맑음 유람록을 읽고 답사를 하면서 옛 지명을 이해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작년 1월 초 남원의 신강님과 백장암에서 와운 마을까지 차량으로 답사를 하였다. 그 후 재간당에서 백장암, 백장암에서 도탄, 반선에서 영원사, 영원사에서 군자사, 용유담에서 마적사, 송대에서 두류암, 두류암에서 옹암, 남원관아(용성초교)에서 숙성치, 쌍계사에서 숙성치로 이어나갔다. 구례군 토지면 용두리 섬진강변에 용호정이 있다. 나는 용두리의 지명과 용호정이라는 정자 이름에 주목하였다. 1..

영랑대에서 부르는 호연재의 야음(210521~22)

영랑대에서 부르는 호연재의 야음(210521~22) ▣ 일 시 : 2021년 05월 21일(금)~22(토) ▣ 코 스 : 광점동-얼음터-칠롱(七隴, 일곱모롱이)-방장문-청이당-영랑대-청이당-아홉모롱이길-미타봉-광점동 ▣ 인 원 : 4명(미산님, 조박사님, 정대장) ▣ 날 씨 : 흐리고, 맑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독서를 많이 하지 않은 것, 후회하지 않는 일은 지리산에 원 없이 다닌 것이다. 당분간 영랑대에 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두 주일만에 다시 영랑대를 찾았다. 구롱(九隴, 아홉모롱이)을 지나서 쑥밭재로 나아가는데 구름이 눈 앞에서 산죽을 스치고 지나갔다. 문득 점필재의 유두류록에 「구롱을 다 지나서는 문득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데, 가는 구름이 나직하게 삿갓을 스치고, 초목들은 비를 맞지 ..

추성동 서복공원 원암대圓巖坮(210524)

추성동 서복공원 원암대圓巖坮(210524)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서복공원 계곡 행적자 : 1960년대 추성동 마을 주민 연대 : 1960년대 후반 석각시기 : 1965년~68년 [개요] : 1960년대 후반 추성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도회지로 나가자, 추성동 洞契의 회원들이 뜻을 모아 바위에 원암대 석각을 함. 원암대 주변의 넓은 반석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를 지내고 화전놀이 했던 장소라고 함. 축문이 전한다고 하나 국역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망실됨.(칠선휴게소 허상옥님)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남창(南倉)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나오는 남창(南倉) ▣ 일 시 : 2021년 05월 23일(일) ▣ 코 스 : 쌍계사-화개-와룡정(?)-남창(구례 산동면)-숙성치-용담-남원관아(남원 용담초교) ▣ 인 원 : 2명(김문광님) ▣ 날 씨 : 맑음 1611년 당시 현 구례군의 산동면(산동방)과 광의면(소의방)은 남원부 관할이었다. 쌍계사를 출발한 유몽인이 4월 7일 하룻밤 묵은 남창(南倉)은 소의방(㪽義坊, 현 구례군 광의면)에 있었다.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신·구남창(新·舊南倉)에 대한 기록이 있다. 1750년 해동지도의 남원부 지도와 1871년 호남읍지(규12175) 남원부 지도를 보면 소의방(㪽義坊, 현 구례군 광의면) 지역에 구남창(舊南倉), 수지방(水旨坊, 현 남원시 ..

장당골 石南巖藪 観音巖의 石造毘盧遮那佛坐像

지리산 장당골 石南巖藪 観音巖의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다음 내용은 전국 방방곡곡 승탑과 불적을 찾아 답사하시는 선과 임병기님의 답사기이다. 작년에 내게 석남암수(石南巖藪)에서 '巖藪' 의 의미를 물어오신 일이 있다. 고전번역원 DB를 검색해보니, 명재유고(明齋遺稿)의 문하생 감사(監司) 이탄(李坦)의 시에 '깊은 산 수풀 속에 둥지를 트니/留着在巖藪', 김도수.남유기(南遊記, 1727년)에 '쓸쓸히 홀로 깊은 산속에서 사는 자가/蕭然孤棲於巖藪之中者',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1873년∼1933년)의 암서집(巖棲集) 권23(1909년) 송자경뢰사(宋子敬誄辭)에 '깊은 산속에 은둔한 이를 찾아가/訪隱淪於巖藪兮', 정다산의 시문집 7권에 '긴 여름날을 홀로 암수에 붙여 있노라니/長夏無伴寄巖藪',의 용례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