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민간산악구조대 1박 2일(수락리~석천암)
▣ 일 시 : 2021년 07월 3일(토)~4일(일)
▣ 코 스 : 수락리-수락폭포-석천암
▣ 인 원 : 홀로
▣ 날 씨 : 비
대둔산 석천암 암굴 입구에 양쪽에 마애 석각 枕石(침석)과 漱泉(수천)이 있는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의 필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석천(石泉)이 나오는 암굴(巖窟) 상단 중앙에 '일엄(一广)'이라는 마애 석각이 있다. 일엄(一广)은 조선 후기 영조와 순조 때에 충남 연산에 살았던 김장생의 6대손인 김상일(金相日, 1756~1822)이라는 인물이다. 김상일(金相日)의 문집 일엄유고(一广遺稿) 권지삼(卷之三) 부록(附錄) 묘지문(墓誌文)에 1805년(순조 5년) '일엄(一广)'의 나이 50세에 '大芚山에 一广枕石漱泉濯纓仁智라는 열 글자를 새겼다.‘라는 기록이 있다. 枕石漱泉(침석수천)은 '돌을 베개로 삼고 샘물로 양치질 한다.'는 의미로 '山水를 벗삼아 자연에서 살아간다.'라는 뜻이다. 탁영(濯纓)과 인지(仁智)의 석각은 확인하지 못해 설명을 유보한다. 枕石(침석)과 漱泉(수천)의 마애 석각이 우암(尤菴)의 필획이라고 하는 것은 와전(訛傳)된 것이고, 一广(일엄) 김상일(金相日)의 필획이다. 이곳 석천암(石泉庵)은 예로부터 학문을 하는 선비들이 공부를 하였던 곳으로, 해방을 전후하여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이 주역(周易)을 강론하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문] 一广遺稿 卷之三 附錄 墓誌文 : 弱冠遊金剛。晩年刻一广枕石漱泉濯纓仁智十字於大芚。(출처 : 고전번역원 일엄유고)
* 김상일[金相日] 1756년(영조 32) ~ 1822년(순조 22) 자는 자산(子山), 호는 일엄(一广) 또는 농수(聾叟). 충청남도 연산 출신. 김장생(金長生)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기택(箕澤)이다.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고 『심경(心經)』·『근사록』 등을 탐독하여 「문견록(聞見錄)」을 지었다. 산수를 좋아하였으며 시문에 뛰어났다. 저서로는 『일엄유고』 2권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김상일 [金相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一广遺稿 : 3권 2책. 활자본. 아들 숙(肅+心)이 편집, 1853년(철종 4) 손자 재직(在直)이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재직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298수, 권3에 서(序) 4편, 기 1편, 발 2편, 설(說) 2편, 잠(箴) 1편, 명 5편, 제문 4편, 잡저 6편, 부록으로 묘지명·묘갈명 각 1편, 그리고 『소안재유고(小安齋遺稿)』에 시 62수와 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서(書)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시는 곤륜(崐崙)·한라(漢拏)·금강(金剛)·지리(智異) 등 명승을 읊은 것이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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