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암자터를 찾아서I

도솔산인 2021. 6. 25. 21:59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암자터를 찾아서I

 

 

▣ 일 시 : 2021년 06월 25일(금)

▣ 코 스 : 안국사-임천-뇌전동-두타암-차량이동-무량굴-동대-상무주암-서동고암-묘적암(회암당 부도)

▣ 인 원 : 2명(일정 민선생님)

▣ 날 씨 : 맑고 더움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은 1686년 3월 어머니 3년상을 마친 후, 62세부터 3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순력(巡歷)하며 산중일기를 남겼다. 우담이 산과 산사를 탐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첫 유람은 1648년 스물네 살 때였는데, 아버지 임지인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회양은 금강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선생은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산수벽(山水癖)에 빠진 듯하다. 1676년에는 속리산, 1680년에는 백운산과 두타산을 유람하였다. 산중일기를 지은 이후에도 1689년에는 소백산과 학가산, 1690년에는 청량산과 치악산, 1691년에는 미륵산 등 해마다 명산대천을 유람하였다.

 

1686년(丙寅) 3월 13일 강원도 원주를 출발하여 3월 16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보은 속리산 법주사, 김천 황악산 직지사, 성주 쌍계사, 김천 수도암, 합천 가야산 해인사, 진주 안양사 등을 거쳐 원주를 출발한 지 한 달여만인 4월 15일에 함양의 지리산 군자사로 들어온다. 정시한의 지리산 유람 일정은 9월 7일 금대암을 떠날 때까지 5개월 넘게 함양과 남원 하동과 구례 일원의 지리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에 머물며 사찰과 암자의 주위 환경과 감상, 만난 승려들의 이름과 성품까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특히, 지리산에서 170여 일의 기록은 17세기 지리산의 사찰과 암자 현황과 인물에 대한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

 

그동안 선답자들이 오랜 각고(刻苦)의 노력으로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무주암과 천인암, 상고대암, 견성암, 무량굴의 위치를 밝혔다. 지난주 삼정산의 묘적암(妙寂菴)과, 서동고암(西洞古菴) 추정터를 찾았지만, 한 번의 답사로 속단하기는 어렵다. 또한 산중일기에 나오는 암자터의 위치를 모두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나의 암자터를 찾는데 십수 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 못 찾을 수도 있다. 함께 답사하는 사람도 의견이 각각 다르다. 입을 다물고 귀를 열어야 비로소 눈이 밝아진다. 유람록을 복원하는 데는 답사 이외에 왕도가 없다. 1686년 우담(愚潭)은 4월 15일 지리산에 들어와 군자사에서 1박을 하고 안국사를 3일을 머문 뒤, 4월 19일 가마를 타고 무주암을 향한다. 임천을 건너 나귀를 타고 10리쯤 간 다음 가마를 타고 5리쯤 가서 두타암에 이른다. 가마꾼을 돌려보내고 도보로 이동 무량굴에서 저녁을 먹은 후에 무주암으로 올라간다. 그의 노정을 요약하면 안국사→임천→두타암(15리)무량굴→무주암(5리)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안국사에서 차량으로 이동하여 뇌전 마을에서 도보로 임도를 따라 두타암을 향했다. 절골로 들어서 전답이 끝나는 지점부터 대규모의 너덜지대가 시작된다. 뇌전 마을의 유래를 알 것 같다. 돌무더기뢰(磊)는 돌석(石)이 셋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三은 많다는 의미이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부터 두타암으로 오르는 길은 잘 구축된 길이다. 암자터 A는 정남향에 동남간이 천왕봉 방향이다. 넓이는 16m×17m이고 좌측에는 2단으로 작은 터가 있다. 암자터 B로 오르는 임도에는 기와 편이 즐비하다. 선답자들은 어떻게 이곳을 찾았을까. 어떤 길이든 처음 가는 사람은 어렵고 뒤에 가는 사람은 쉽다. 대단한 일이다. 정시한이 이곳을 들러 무량굴로 갔다면 현재의 길이 아닐 것이다. 암자와 비슷한 고도(850m~900m)에서 모랭이를 돌아 무량굴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상무주암 초입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무량굴로 향했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다음으로 미룰 수 없었다. 등로 초입에서 어림잡아 오르니 무량굴의 축대가 눈에 들어왔다. 1686년 4월 19일 정시한은 안국사를 출발하여 두타암에 들렀다가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무주암으로 오른다. 아마 옛길이 무량굴에서도 샘터쪽으로 있을 것이다. 암자에서 암자, 샘터에서 샘터로 길은 이어진다. 동대에 올라 조망을 보니 주능선이 흐릿하게 들어온다. 상무주암을 지나 서동고암 추정터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서동고암은 암자의 이름이 아니고 상무주암에서 '서쪽 구렁(골)에 있는 오래된 암자터'로 이해가 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샘터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샛길로 내려와 회암당 부도터에서 정시한의 산중일기를 다시 상기하였다. '묘적암은 비록 무주암(無住庵)에 미치지 못하나 이곳 역시 매우 밝고 산뜻하다. 다만 초막만 있어서 지내기에 마땅하지가 않았다.' 이곳이 혹 산중일기에 나오는 묘적암은 아닐까. 서대에서 잠시 앉아 생각에 잠기다가 어둠이 밀려오는 어스름한 산길을 내려오니 시간이 8시에 가깝다. 끝.

 

☞ 아마추어 답사가의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오류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세요.

 

 

안국사에서 바라본 삼정산 능선
무량수전
안국사
함양 안국암 승탑
함양 안국암 승탑

▶ 함양 안국암 승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

 

안국사 경내에는 4기의 부고가 있는데, 2기는 행호조사(行乎祖師)의 사리와 유골을 봉안한 것이고, 다른 2기는 금송당(禁松堂)과 서상대사(西上大師)의 사리를 봉안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4기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기단(基壇)에서부터 지붕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승탑이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 시대 8각부도의 형태를 계승한 고려시대의 것으로, 비교적 안정감이 있고 단정한 형태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출처 : 안내판>

 

 

전답 축대
돌포장길
뇌전(磊田)은 너덜, 또는 너덜겅이라는 의미이다.
암자터 A 담장 축대
암자터 A 가로17m× 폭16m
암자터 A 주춧돌
암자터 B(너무 넓어서 자로 재지 않았다.)
치석한 주춧돌
치석한 주춧돌
두타암 터는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된다.
너덜겅(너덜)을 한자로 쓰면 뇌전(磊田)이다.
기근도 교수님이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무량굴 축대
무량굴
샘터
와편
샘터
지자대(止慈臺)의 동대(東臺)
동대(東臺)에서 바라본 주능선
지자대(止慈臺)
각운선사 필단사리탑
무주암 축대시주 마애석각 명문
상무주암
서동고암 좌선대
서동고암 좌선대에서 바라본 별바위등
서동고암(西洞古菴) 터
서동고암(西洞古菴) 터
석문
회암당 승탑
회암당 승탑
서대(西臺)
서대(西臺)에서 바라본 신장 바위
동대에서 바라본 별바위등
지자대(止慈臺)
꽃송이버섯

 

 

 

▶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두타암과 무량굴, 묘적암과 서동고암 

 

○ 4월 19일 맑고 추웠다.(함양 상무주암)

 

새벽에 그릇에 담긴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어있다. (안국사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어깨에 메는 가마를 타고 떠났다. 안국사(安國寺)에서부터 승통 일겸이 스님이 따라오며 전송하였다. 냇가에 이르니 군자사의 법안(法眼), 선보 스님 등이 가마꾼을 데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임천)를 건너서 나귀를 타고 10여 리 남짓 간 다음 가마를 타고 5리쯤 가서 두타암(頭陀庵)에 닿았다. 원혜(圓慧) 노스님과 그 상좌 영인(靈印) 스님이 나와 맞이해 주었다. 같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가마를 돌려보내고 걸어서 무량굴(無量窟)에 올라갔다. 의철(義哲) 수좌는 을축생(1625년)인데 마중을 나와 주었다. 저녁 식사 뒤 상무주암(上無住庵)으로 올라갔다. 벼랑에 걸려 있는 석벽을 온 힘을 다해 올라가 5리쯤 갔다.

 

열 걸음에 한 번 쉬는 식으로 올라가  겨우 도착해 동대(東臺) 위에서 앉아 쉬었다. 바라보니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둘러져 있는 가운데 주산(主山)의 석봉은 기괴하여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었다. 서쪽 가에 석정(石井)이 있어서 거기에서 단물이 솟아오른다. 절터는 만길 높은 곳에 있지만  평온하고 남향이라서 정말로 명당이라고 할만했다. 이곳에서 여름을 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호준(湖俊) 노스님과 수좌 일곱 분이 이곳에 새로 거주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겸, 법안, 선보 스님 등이 인사하고 돌아갔다. 묘적암(妙寂庵)의 수좌 사철(思哲) 스님이 찾아왔다. 경진생(1640년)이라고 한다.

 

○ 4월 20일 맑음 바람이 불어 추웠다(함양 묘적암)

 

아침 식사 뒤 묘적암(妙寂菴)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묘적암 수좌) 사철 스님이 오셔서 같이 갔다. 절터는 비록 무주암(無住庵)에 미치지 못하나 이곳 역시 매우 밝고 산뜻하다. 다만 초막만 있어서 지내기에 마땅하지가 않았다.

 

○ 윤4월 9일 흐린 뒤에 맑음(함양 상무주암)

 

아침식사 뒤 삼응(三應) 스님과 함께 묘적암(妙寂菴)에 가서 잠시 앉아 있다가 사철·삼응 스님과 함께 서동고암(西洞古菴) 갔다. 암자는 석대 위에 자리 잡았는데 좌우의 입석이 기괴하다. 동쪽 가에는 석천(石泉)도 있다. 산세가 휘감아 돌아 바람도 많지 않으니 가히 몇 칸짜리 집을 지을 만하다. 더군다나 맑은 기운마저 서려 있으니 정말로 이 곳은 도인이 수련할 만한 곳이다. 신순 수좌를 무주암으로 오라 해서 집을 짓고 샘을 파면 어떠한지 헤아려보게 했다. 샘을 두 곳 파는 것은 샘물이 부족한 게 흠이기 때문이다.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경숙이가 군자사에서 잣을 구해왔다. 군자사 스님이 미나리 두 단을 보내왔다. 저녁식사 뒤 다시 지자대(止慈臺) 동대(東臺)에 갔다 온 다음 사철 수좌와 함께 잤다.

 

○ 윤4월 10일 흐린 뒤 맑음, 바람이 불었다.(함양 상무주암)


아침식사 뒤에 신순 스님과 함께 지자대(止慈臺)에 갔고, 또 사철 스님을 데리고 서대(西臺)에 갔다. 이 터에 우물을 파면 좋을 듯하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무주암으로 돌아왔다. 저녁식사 뒤 설청 스님과 지자대(止慈臺)에 다녀온 다음 사철 스님과 함께 잤다.

 

○ 윤4월 11일 새벽 천둥과 벼락 비가 그침(함양 상무주암)

 

아침식사 뒤에 삼응(三應) 수좌와 함께 무량굴로 갔다가 다시 묘적암(妙寂菴)으로 올라가 절터와 굴을 본 다음 묘적암에 도착했다. 사철(思哲)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무주암(無主菴)으로 돌아왔다. 약 10여리를 걸었는데 돌길이 몹시 험하여 오르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 윤4월 12일 맑은 뒤 흐려짐(함양 상무주암)

 

박진사가 인사하고 돌아갔는데 함께 묘적암(妙寂菴)까지 가서 작별했다.

 

출처 : 산중일기 신현대 번역/주석

 

 

 

▶ 정시한의 동선과 암자 숙박 현황(4월 15일~윤4월 16일까지 31일간)

 

414일 안양사 유숙 : 함양관아-진주 안양사

415일 군자사 향로당에서 유숙 : 안양사-용유동-군자사

416일 안국사 향로전에서 유숙 : 안국사-금대사-안국사

417일 안국사 향로전에서 유숙 : 안국사-서암-안국사

418일 안국사 향로전에서 유숙

​4월 19일 무주암 유숙 : 안국사-두타암-무량굴-무주암

420일 무주암 유숙 : 무주암-묘적암-무주암

421일 무주암 유숙 : 윤판옥 수리

422일 무주암 유숙

423일 무주암 유숙

424일 무주암 유숙 : 무주암과 윤판옥이 불에 타서 실상사, 견성암, 천인암 신세를 짐(12일간)

425일 실상사 유숙 : 무주암-천인암-상고대암-실상사

426일 견성암 유숙 : 실상사-견성암(10여 리)

427일 천인암 유숙 : 견성암-천인암

428일 천인암 유숙

429일 천인암 유숙

41일 천인암 유숙 : 다리의 힘을 조절을 할 요량으로 견성암 왕복

42일 천인암 유숙 : 견성암 왕복

43일 천인암 유숙 : 견성암 왕복

44일 천인암 유숙 : 견성암 왕복

45일 천인암 유숙 : 상고대암 왕복

46일 천인암 유숙 : 견성암 왕복

47일 천인암 유숙 : 견성암 왕복

48일 무주암 유숙 : 천인암-무주암, 윤판옥 수리가 끝나 다시 무주암으로 돌아옴.

49일 무주암 유숙 : 무주암-묘적암(妙寂菴)-서동고암(西洞古菴)-무주암

410일 무주암 유숙

411일 무주암 유숙 : 무주암-무량굴-묘적암(妙寂菴)-무주암

아침식사 후에 삼응(三應) 수좌와 함께 무량굴로 갔다. 또 묘적암(妙寂菴)으로 올라가면서 절터와 굴을 두루 보았다. 묘적암에 도착하여 사철(思哲)과 함께 잠시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무주암(無主菴)으로 돌아가니, 대략 10여리 쯤 되었다. 돌길이 매우 험하여 오르내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진사 박세기(朴世基)가 와서 보았다. 그리고 함께 유숙하였다.

 

412일 무주암 유숙 : 무주암-묘적암(妙寂菴)

413일 무주암 유숙

414일 무주암 유숙

윤4월 15일 두타암 유숙 : 무주암-무량굴-두타암, 무주암을 떠나 칠불사로 향함

윤4월 16일 도솔암 유숙 : 두타암-도솔암 (약 20여리)

417일 칠불사 유숙 : 도솔암-주봉(5)-주봉-반야봉 응막(15)-해질 무렵 칠불사 도착(40여리)

 

※ 정시한은 4월 15일~윤4월 16일까지 31일 동안 군자사 1, 안국사 3, 무주암 13, 실상사 1, 견성암 1, 천인암 10, 두타암 1, 도솔암 1박을 한다. 4월 24일 산불로 윤판옥이 불에 타서 12일동안 실상사(1일)와 견성암(1일), 천인암(10일)에 머문다. 산중일기에 서동고암의 승려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서쪽 구렁에 있는 오래된 암자터로 이해가 된다. 

 

 

☞ 뇌전(磊田) 마을의 유래

 

'말발 마을'로 불려 오고 있으며 뇌전(磊田) 마을이라 기록하고 있다. 돌무더기 뇌(磊)자를 쓴 것은 이 마을이 마천면의 마을 중에서 수리 안전답이 없고 거의가 밭이나 천수답으로 한발(旱魃)이 가장 심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옛적부터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어 생활해 왔지만 땅이 말라버린 밭이라 하여 말발이라고 불러왔는데 한자로 표현한 글자가 마땅치 않아 뇌전(磊田)이라고 쓰고 말발이라고 불러온 것이라 한다. <출처 : 함양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