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을 좇아서(남창~숙성치)

도솔산인 2021. 6. 26. 19:54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을 좇아서(남창~숙성치)

 

▣ 일 시 : 2021년 06월 26일(토)

▣ 코 스 : 원달리(상원덕 마을)-능선-오미자 농장-숙성치(원점회귀)

▣ 인 원 : 2명(지리산아님)

▣ 날 씨 : 아침에 비, 오후 맑음

 

 

1611년 당시 구례군의 산동방(현 산동면)과 소의방(현 광의면 일부)은 남원부 관할이었다. 쌍계사를 출발한 유몽인이 4월 7일 하룻밤 묵은 남창(南倉)은 소의방(㪽義坊, 현 구례군 광의면)에 있었다. 1871년 호남읍지(규12175) 남원부 지도를 보면 소의방(㪽義坊, 현 구례군 광의면) 지역에 구남창(舊南倉), 수지방(水旨坊, 현 남원시 수지면) 지역에 신남창(新南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구남창과 신남창에 대한 기록이 있다.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是日宿于本府南倉'의 문구는 '이 날 이 고을(本府, 남원부)의 남창(南倉, 구남창)에서 묵었다.'로 이해한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되면서 산동방(산동면)과 소의방(광의면 일부)는 구례군에 편입된다.

 

이번에 숙성치는 세 번째 답사이다. 처음에는 주천면 용궁리에서, 두 번째는 산동면 계척리에서, 이번에는 산동면 원달리 상원덕에서 숙성치로 올라갔다. 1917년 조선의 지형도에는 산동면 계척리와 산동면 원달리 수락촌에서 숙성치로 오르는 길이 표기되어 있다. 상원덕에서 상원저수지를 지나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능선(200m)에 오르니 옛길의 모습이 확연하다. 이길이 구례 사람들이 남원으로 장을 보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골이 깊게 파인 4거리가 나온다. 이길은 산동면 원달리 수락촌에서 숙성치로 오르는 길이다. 토목공사를 한 듯 길이 깊게 파여있다. 오미자 농장 위로는 옛길의 흔적이 없고 길을 새로 임도를 조성하였다. 서너 군데 사태 지역을 지나면 숙성치에 닿는다.

 

* 4월 8일 : 남창[소의방(㪽義坊, 현 구례군 광의면)]-산동면 원달리 수락촌-능선 4거리-오미자 농장-숙성치-용담-남원관아

 

 

 

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창고] 읍창(邑倉) 지혜창(紙惠倉) 진휼창(賑恤倉) 성부(城府)는 성내(城內)에 있다. 동창(東倉) 40리에 있다. 서창(西倉) 40리에 있다. 구남창(舊南倉) 40리에 있다. 신남창(新南倉) 40리에 있다. 구북창(舊北倉) 30리에 있다. 신북창(新北倉) 40리에 있다. 산창(山倉) 교룡산성(蛟龍山城)에 있다.<1530년, 제 39권, 전라도>

 

☞ 1860년대(1861~1866) 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전국 현지답사를 토대로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있음.

 

2.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일록

 

○ 4월 7일 병자일 (불일암을 유람하고 쌍계사를 출발하여 화개를 지나), 정오 무렵 섬진강을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 와룡정(臥龍亭)에서 쉬었다. 이 정자는 생원 최온(崔蘊)의 장원(庄園)이었다. 큰 둔덕이 강 속으로 뻗어 마치 물결을 갈라놓은 것 같았다. 말을 타고 반석 위로 나아가니 솜을 타놓은 듯 수백 보의 백사장이 보였다. 그 둔덕 위에 초당 서너 칸을 지어놓고 비취빛 대나무와 검푸른 소나무를 주위에 심어놓았다. 그림 같은 풍광이 둘러쳐져 초연히 속세를 떠난 기상이 있었다. 이 날 남원부 남창(南倉)에서 묵었다.

 

 4월 8일 정축일. 숙성령(肅星嶺)을 넘어 용담(龍潭) 가에서 잠시 쉬었다가 관아로 돌아왔다. 

 

 

1750년 해동지도
1871년 호남읍지 남원부 지도
1917년 조선의 지형도
상원덕에서 숙성치 가는 길
원달리 수락촌에서 숙성치 옛길
숙성치로 가는 옛길
숙성치로 가는 옛길
오미자 농장
오미자 농장(새로 조성한 임도)
숙성치
숙성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