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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길을 걷다.(방장문에서 곧은재까지)

점필재길을 걷다.(방장문에서 곧은재까지) ▣ 일 시 : 2023년 06월 03일(토)~05일(월) ▣ 코 스 : 광점동-방장문-청이당-영랑대-상봉-장터목-삼신봉-세석-좌고대-창불대-영신암-곧은재-백무동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지난 2년간 집필위원으로 참여한 '지리산 마천면사'가 간행되어 6월 2일 마천면 면사무소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산행에 비유하면 '마천면사'라는 장거리 종주산행을 완주한 셈이다. 문호성 마천면사 편찬위원회 위원장님을 비롯하여 함께하신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지리산 인문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지난 2년 동안 마천에서 지리산을 팔아 식객 노릇을 하였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됫박 글을 말 글로 써먹었다. 그냥 지나쳤던 곳도 이곳저곳을 숱하게 찾아다..

점필재길을 걷다.(적조암에서 방장문까지)

점필재길을 걷다.(적조암에서 방장문까지) ▣ 일 시 : 2023년 05월 25일(목)~26일(금) ▣ 코 스 : 적조암-지장사터-박쥐굴-환희대-선열암-독녀암-의논대-고열암-미타봉-방장문-광점동 ▣ 인 원 : 4명(박지 합류 1명) ▣ 날 씨 : 맑음 어득강(魚得江, 1470~1550)은 조선 전기, 이민구(李敏求, 1589~1670)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어득강(魚得江)은 산음십이영(山陰十二詠)을, 이민구(李敏求)는 산음팔영(山陰八詠)을 남겼다. 산음십이영(山陰十二詠)과 산음팔영(山陰八詠) 중에 독녀심선(獨女尋仙, 독녀암에서 신선을 찾다.)의 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녀암은 산음(山陰)의 12경과 8경이니, 독녀암이 당시에 산음의 행정구역이라는 점이다.(현재는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산 6-2번지)..

지리동북부 와불산의 독녀암과 미타봉

지리동북부 와불산의 독녀암과 미타봉 ▣ 일 시 : 2023년 05월 20일(토)~21일(일) ▣ 코 스 : 적조암-독녀암-의논대-고열암-미타봉(원점회귀) ▣ 인 원 : 10명 ▣ 날 씨 : 맑음 카카오 지도에 미타봉과 상내봉, 와불산이 이제야 제 이름을 되찾았다. 오류를 바로잡는 데까지 십수 년이 걸렸다. 지명이 지도에 한번 잘못 표기되면 바로잡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함양독바위는 노장대라는 본래의 이름이 있었다. 독녀암은 삼열암과 함께 유두류록 탐구가 류정자 님이 최초로 발굴하였다. 함양군에서 세운 노장대라는 팻말은 사라지고, 그 시점에 함양독바위는 고증 없이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에 오르면 함양 읍내가 보여서 함양독바위라고 했다고 한다. 지명의 유래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함..

비내리는 세석평전의 창불대와 영신대

비내리는 세석평전의 창불대와 영신대 ▣ 일 시 : 2023년 05월 17일(수)~19일(금) ▣ 코 스 : 백무동-세석대피소-창불대-영신대-좌고대-곧은재능선-백무동 ▣ 인 원 : 4명 ▣ 날 씨 : 흐리고 비 전괄(箭筈)은 화살촉처럼 뾰족한 창불대와 병풍바위를 가리키고, 거상(車箱)은 한번 내려가면 돌아갈 길이 없는 창불대골을 가리킨다. 창불대에서 영신대로 내려오는 사면길에 제1전망대가 있다. 여기에서 영신대를 바라보면 석가섭과 좌고대가 보인다. 좌고대에 올라간 종 염정과 옥곤을 꾸짖은 것을 보면 점필재도 이길로 내려선 듯하다. 영신암 시를 보면 영신대로 내려서면서 석문을 통과했다. 산도(山都)를 촌장으로 읽었는데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르겠다. 산도(山都)는 비비(狒狒, 원숭이)의 일종이다. 비 내리는 세..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불신당(佛神堂)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에 나오는 불신당(佛神堂) ■ 1940년 난사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불신당(佛神堂) 이암(鯉岩, 잉어바위)를 등지고(背) 산의 북쪽 기슭(北麓)을 우러르매(仰) 암벽(岩壁)의 돌 처마(石簷)가 높이(高)는 가히(可) 한길(一丈), 넓이(廣)는 가히(可) 10인(十人)이 앉을 수 있는 자연이 만든(天作) 감실(龕)에 한 구(一軀)의 석상(石像)을 안치하였나니(安)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불신당(佛神堂)이다. 먼 옛날 (古代) 송림사(松林寺)의 유물(遺物)인대, 등림객들이(登臨客)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사람들(香禱한 者)이 많더니, 뜻하지 않게(不意) 지난 갑술(1934)년 여름(甲戌夏)에 운악암의 중(雲岳菴僧)이 몰래 지고간바(竊負) 되여 호경리 사람들이(湖景人士..

선가(仙家)에서 먹는 요초(瑤草) 청옥(靑玉)과 자옥(紫玉)

선가(仙家)에서 먹는 요초(瑤草) 청옥(靑玉)과 자옥(紫玉) ▣ 일 시 : 2023년 05월 13일(토)~14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청이당-영랑대(원점회귀)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영상 8도)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서대초(書帶草)와 청옥(靑玉), 자옥(紫玉)은 식물도감에 나오지 않는다.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서 "서대초(書帶草)와 유사(類似)한 풀이 있어 부드러우면서 질기고 미끄러워 깔고 앉았다 누웠다 할만하며 곳곳이 다 그러했다. [有草類書帶 柔韌而滑 可藉以坐臥 在在皆然]"라고 하였다. '서대초와 닮은 풀'은 동부능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넓은 잎 그늘사초를 가리키는 듯하다. 서대초와 그늘사초는 다른 식물이다. 서대초는 맥문동으로 추정한다. 서대초는 ..

조경남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나오는 송림사

조경남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나오는 송림사 ▣ 일 시 : 2023년 05월 12일(금) ▣ 코 스 : 구룡계곡 주차장-여궁석-석녀골-송림사지-능선-영제봉 북릉 초입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황령과 황령암터를 답사하다가 산서(山西) 조경남(趙慶男, 1570~1641)의 『난중잡록(亂中雜錄三)』을 만났다. '1597년 8월 11일 왜적들이 구례에서 숙성령을 넘어, 급기야 12일에 남원성을 포위하고 16일에 남원성이 함락된다. 8월 15일 조경남은 양형과 이공직 등 여러 사람과 같이 상용추에서 정령치를 넘어 황류동[지리산의 황령사(黃嶺寺)와 향로봉의 사이에 있음.]에서 유숙하고, 16일 황류천을 건너(하점골 경유 추정) 향로봉 북쪽 기슭 아래 은신암(隱身庵)의 옛터로 들어가 막을 치고 머문..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 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용호구곡(龍湖九曲)은 용호서원을 건립한 원동향약계와 사림에 의해 일제 강점기에 설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호서원 목간당(木澗堂)에 게판되어있는 용호구곡십영(龍湖九曲十詠) 제영시는 영송(嶺松) 김재홍(金在洪, 1867~1939)이 지은 것이다. 용호구곡 석각 시기 또한 용호서원이 건립된 시점(1927년) 이후로 본다.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남원 군수 李東漢(1923~25)과 白定基(1926~27)가 군수 재임 시 이곳을 다녀갔을 당시에는 용호구곡의 이름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1948년부터 약 4년간 호경리에서 호운(湖雲) 서당 훈장을 하였던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 1889∼1978)은 「용호구곡 경승안내(龍湖九曲景勝案內, 1940)」를 남..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송림사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송림사 ▣ 일 시 : 2023년 05월 07일(일) ▣ 코 스 : 구룡계곡 주차장-여궁석-석녀골-송림사지 ▣ 인 원 : 3명 ▣ 날 씨 : 비 ■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청류를 거슬러서 남쪽으로 1리를 나아가면 일원의 폐사지에 패탑(敗塔)과 잔와(殘瓦)가 지나간 역사를 증(證)하나니 송림사(松林寺)의 유허이다. 절은 고려시대 고찰인데 한때는 자못 부유하고 번성하였던바, 용호의 명승을 이웃한 탓으로 소인(騷人, 시인과 문사)과 풍류객(風客)의 등림(登臨)이 매우 많은지라, 스님들(衲子輩)이 고통을 당하였더니(喫) 저들의 불례(不禮)를 마음에 품은 어떤 지관(一地師)이 객을 막을(防) 묘(妙)한 방법(道理)이 있음을 말하여, 절의 남쪽의 석퇴(石堆)를 부파(斧..

지산유고에 나오는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 선생(230430)

지산유고에 나오는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 선생(230430) 1896년 3월 말 김산 의병장 이기찬은 의병을 이끌고 황간 영동 보은을 거쳐 문경 대정(大井)으로 이동하여 함창에 있는 일본군 병참부대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諸將(제장)들이 다 말하기를 "저들(日本軍)은 强(강)하고 우리(義兵)는 弱(약)하여 날카로운 기세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반대를 하자, 선생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싸워서 죽자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자고 하면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하니 차라리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아다니듯 流浪(유랑)을 하고 숲 속에 숨어서 제군들이 원수를 갚고 승리하는 날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라는 바이다' 라고 하고, 4월 3일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