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불신당(佛神堂)

도솔산인 2023. 5. 20. 09:24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에 나오는 불신당(佛神堂)

 

 

■ 1940년 난사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 불신당(佛神堂)

 

   이암(鯉岩, 잉어바위)를 등지고() 산의 북쪽 기슭(北麓)을 우러르매() 암벽(岩壁)의 돌 처마(石簷)가 높이()는 가히()  한길(一丈), 넓이()는 가히() 10인(十人)이  앉을 수 있는 자연이 만든(天作) 감실(龕)에 한 구(一軀)의 석상(石像)을 안치하였나니(安) 이것이() 이른바(所謂) 불신당(佛神堂)이다. 먼 옛날 (古代) 송림사(松林寺)의 유물(遺物)인대, 등림객들이(登臨客)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사람들(香禱한 者) 많더니, 뜻하지 않게(不意) 지난 갑술(1934)년 여름(甲戌夏)에 운악암의 중(雲岳菴僧)이 몰래 지고간바(竊負) 되여 호경리 사람들이(湖景人士) 자취()를 쫓아가서()  꾸짖고 돌려받으니(可惜) 가히 애석할만하다(可惜). 도승(盜僧)이 조심하지 않아(不謹) 머리와 얼굴(頭面)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하였도다.(未得全帰)

 

  鯉岩을 背하고 北麓을 仰하매 岩壁石簷이 高可一丈廣可十人坐의 天作龕에 一軀의 石像을 安하엿나니 此所謂佛神堂이라. 古代松林寺의 遺物인대 登臨客의 香禱한 者多하더니 不意去甲戌夏에 雲岳菴僧의 竊負한바되여 湖景人士踪을 追하야 責還하니 可惜하다. 盜僧■(이)不謹으로 頭面이 未得全帰로다.

 

 

나무아미타불(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龕壁面 南無阿彌陁佛의 新刻紅은 盧洙鉉의 誠墨이요.")

士友同志錄

盧相昊, 崔圭燮, 蘇方烈, 盧相龍, 鄭載燮, 鄭安朝, 盧相彦, 盧相萬, 盧敬相, 金宙泳, 金鳳基, 鄭載英, 盧相玉

丙午七月  日

注 丙午 : 1906년

 

 

隱汕 朴仲植, 濟山 朴鳳植, 後松 朴燦植

檀紀 四二六(?)五年乙巳秋

 

※ 단기와 간지가 맞지 않는다.

 

 

龍湖品題


己巳春 松察與諸同志游湖上 選次九曲地名 刻平石年 : 기사년 봄은 송찰(松察?)이 여러 동지(同志?)들과 호상(湖上)을 유람하고 구곡의 지명을 선정하여 평평한 바위(平石)에 새긴 해이다.


八斗孫待行三月望日 : 팔두(八斗?) 손대행 삼월 보름

 

注 品題 : 사물의 가치나 우열을 문예적으로 평가하는 일. 選次 : 차례대로 선정하다. 九曲地名 : 구곡의 지명. 松察과 八斗의 의미를 모르겠다. 同志의 판독도 불분명하다. 己巳는 1929년이다. 남원군수 李東漢(1923~25) 白定基(1926~27) 재임시 용호구곡을 다녀가면서 " 진기한 경승이 이름이 없는 것은 가히 한탄할 만한 일이다.'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1927년 이후에 용호구곡이 설정되었다. 확인이 더 필요하겠지만, '용호품제(龍湖品題)' 己巳(1929)년 봄(春)으로 추정할 수 있다.

 

 

 

金燦詠過此感古

李秉植

 

李秉植은 운봉 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