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1793년 도원 스님 두류산기에 나오는 구송·몽유·운학

도솔산인 2023. 2. 16. 13:40

1793년 도원 스님「두류산기」에 나오는 구송·몽유·운학

 

 

  "구송(九松)·몽유(夢遊)·운학(雲鶴) 등지는, 개암(介菴) 강익(姜翼, 1523~1567)과 매촌(梅村) 정모(鄭某)와 사간원(司諫院) 이모(李某) 등이 노닐던 곳으로 그윽하고 기이한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두류산기)"

 

注 구송(九松)은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695번지 창말 마을 구송정(九松亭)을 가리킨다. 지금은 그자리에 개암 강선생 유허비가 있다. 비석 측면에 구송정에 대한 기록이 있다. 몽유정(夢遊亭)은 남원시 산내면 내령마을 운제정(雲堤亭) 아래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송파(松坡) 이해창(李海昌)이 지은 정자이다. 운학(雲鶴)은 마천면 군자리에 있던 매촌(梅村) 정복현(鄭復顯) 선생이 지은 운학정(雲鶴亭)을 가리킨다. 매촌(梅村) 정모(鄭某) : 鄭復顯(1521∼1591), 사간원(司諫院) 이모(李某) : 李海昌(1599∼1651)

 

 

  ▶ 개암강선생유허비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695번지 창말 마을 구송정(九松亭)

행적자 : 강익(姜翼, 1523~1567)  연대 : 조선 중기  건립일 : 1815(순조 15)10월 일

 

[개요] 1553(嘉靖三十二年癸丑) 개암 강익(姜翼, 1523~1567) 선생이 31세 때에 덕계 오건(1521~1574)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다가 등구동을 발견하고 양진재(養眞齋)를 지어 후학들을 길렀다고 한다강개암 선생이 노닐던 구송정(九松亭)에 선생의 업적(業績)을 기리기 위()하여 그 유허에 세운 비().

 

  개암강선생유허비 : 구송정(九松亭) 위에 양진재(養眞齋)가 있고 아래에 삼괴정(三槐亭)이 있다崇禎(명나라 마지막 숭정황제 연호)紀元後四乙亥(1815순조 15)10월 일 비를 세움.[介菴姜先生遺墟碑 [측면]九松亭上有養眞齋下有三槐亭 崇禎紀元後四乙亥十月 日建]

 

 

  ▶ 몽유정(夢遊亭)

 

  남원시 산내면 내령마을 운제정(雲堤亭) 아래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송파(松坡) 이해창(李海昌)이 지은 정자.

 

  ☞ 이해창(李海昌, 15991651) :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하(季夏), 호는 송파(松坡). 이임(李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규(李圭)이고, 아버지는 이인후(李仁後)이며, 어머니는 신영(申泳)의 딸이다. 임숙영(任叔英)의 문인이다. 1624(인조 2)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30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정자·봉교·정언 등을 역임하고 1638년 지평으로 있을 때에 인조의 노여움을 산 주전파의 우두머리 김상헌(金尙憲)을 신구(伸救: 지은 죄를 회복하기 위한 구제)하다가 영덕에 유배되었다.

 

  1644년에 유배가 풀려 부수찬에 복직되고, 이어서 수찬·교리·헌납을 거쳐, 1649년에 이조정랑에 이르렀다. 1650(효종 1)에 춘추관편수관으로서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그 해에 응교·시독관(侍讀官교수를 겸직하였다. 이어 이듬해에 사간이 되었다. 시문에 능하였다. 저서로는송파집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해창 [李海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운학정(雲鶴亭)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148-2번지

행적자 : 매촌(梅村) 정복현(鄭復顯, 15211591)  연대 : 조선 중기   석각시기 : 미상

 

[개요] 운학정 매촌정선생유게소(雲鶴亭 梅村鄭先生遊憩所) 매촌(梅村) 정복현(鄭復顯, 15211591) 선생이 노닐고 쉬었던 곳

 

  운학정은 매촌 정복현선생의 휴게지소로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있으니 백두산 일맥이 남단으로 뻗어내려와 지리산에서 우뚝 솟아닜으니 남쪽은 청학동이요 북쪽은 백학동이다.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절경이라. 고로 선생이 이곳에 살 만한 땅을 가려서 정사를 지어 도와 예를 강론하니 고장 사람들이 이곳을 영남의 추로지향이라고 일컬었다.[雲鶴亭 梅村公鄭先生休憩之所 在於慶南咸陽郡馬川面 白頭山一脈 蔓延於南端 聳出智異山 南則靑鶴洞 北則白鶴洞 山水秀麗 景致絶勝故 先生 卜築精舍於此 講論道禮 鄕人 稱之嶠南鄒魯也] 출처 鄭復顯梅村實紀

 

注 南則靑鶴洞 北則白鶴洞 : 옛말에 '雙磎靑鶴 實相白鶴'이라는 말이 있다鄒魯之鄕(추로지향) :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고향이란 뜻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곳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