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국립공원 내 '大'자 석각에 대하여
지난 3월 초암능선에서 '大'자 석각을 발견하였다. 석각 아래에 아라비아 숫자가 있다. 6월에는 선녀굴 아래에서, 7월 말에는 선녀굴골 은병암(隱屛岩)에서 '大'자 석각을 찾았다. 8월 6일에는 우수청골 주막터(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525번지)에서 '大'자 석각을 만났다. 여러 곳에 문의하였으나 아직 오리무중이다. 산림청에 '大'자 석각에 대해 문의했지만, 환경부나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문의하라는 답(答)을 받았다. 지적도를 확인하니 대학 연습림(국유림)과 사유지의 경계에 있다.
1917년 일제가 제작한 조선의 지형도를 살펴보자. 일제는 지리산의 식생과 생태 연구를 명목으로,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지리산을 일본에 있는 국립 제국대학의 연습림으로 분할한다. 조선의 지형도에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은 구례, 경도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은 함양, 구주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은 하동 지역이다. '大'자 석각이 연습림의 군 경계는 아닌 듯하다. 대학 연습림인 국유림과 사유지의 경계를 표시한 일종의 금표로 추정된다. 대학이 연습림을 한다면 표본지역만 하면 되는데, 지리산 전체를 지정한 것은 정치·군사적인 목적이 짙다. 일제는 물자 수탈의 목적도 있었지만, 지리산이 독립운동의 기지가 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화전민을 소개하고 주민들조차 출입을 통제했다. 집필중인 《지리산 마천면사(2022)》 원고를 읽다가 그 단서를 찾았다.
조선총독부는 지리산에 마천을 중심으로 하는 북쪽은 경도제국대학(이하 경도대), 지리산 하동쪽은 구주제국대학, 구례 쪽은 동경제국대학에 대학 부설 연습림이라는 명목 아래 운영 독점권을 주었다. 경도대가 총독부로부터 1912년 12월 1일 이후 향후 80년간 무상 대부(貸付) 형식으로 독점 운영권을 받는다. 지리산의 범위는 천왕봉과 장터목 노고단을 중심으로 북쪽에 해당된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휴천면, 마천면, 석복면, 남원군 산내면, 동면, 운봉면, 주천면 등 2개 도 3개 군 8개 면을 아우르는 면적이었다.
경도제국대는 1917년 함양군 석복면(현 함양읍 백연리)에 ‘경도대 조선 연습림(朝鮮演習林)’사무소 건립하면서 산골 주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산골 주민들이 대대로 자유롭게 지리산의 많은 특산물, 구황식물과 목재를 자유롭게 채취했던 것을 통제하였으며, 화전 및 벌목 등을 금지하여 흉년이 드는 해에는 마천면의 주민들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지리산은 만백성을 넉넉히 품어주는 산에서 일제에 의한 수탈의 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리산 현장관리를 위해 마천 출장소(목기 제작), 백무동 작업장(표고재배, 숯 생산), 산청 시천면 중산리 출장소(숯 생산, 약초 수집), 장터목 돌담 산장(산관리 대피소)을 두었다.
마천면 당흥마을에는 경도대 연습림 마천 출장소를 두고 2~3명(宮人嘉伊平, 서흥달, 1921년 10월 박영철의 ‘지리산 탐험기’ 지리산 산행에 동행)의 기수와 직원을 둬서 지리산으로 먹고 살아가는 마천면 주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들은 산불 원인의 이유가 된다는 이유로 지리산 산골 주민(화전민)을 강제 이주시켰고, 이들 중에서 작업장의 인부로 삼았다. 일제의 경도대를 통한 수탈과 그로 인한 마천 주민들의 참상이 주요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조선일보 1926년 5월 15일 기사에는 「지리산 부근(智異山附近) 수십만 주민(數十萬住民)의 참상(慘狀)」이란 제목에 ‘경도제대 연습림(京都帝大練習林)이 된 후(後)로 일초일목을 손에 못 대어 생활의 길이 전면 막혔다.’라고 하였다.
공예용(工藝用) 재목에 대하야는 많은 값을 밧는 고로 여간해서 이익을 볼 수 업스며 기타 제반 불편이 많은 중 특히 표고(票古)는 그 산중의 유명한 산물로 연액 수만 원에 달하던 것이 현금에도 사기가 쉽지 않다. 그 원인은 재벌을 엄금할 뿐 아나라 산품은 시가의 반액으로 그 연습림보호소에서 강제로 사드렸기 때문이다. 만일 사사로이 매매한 형적이 잇스면 전부 압수함으로 부근 주민의 살길이 막이게 되었다. 년래로 산골 주민들의 곤란이 막심하더니 작년에는 더구나 흉년이 들엇든 까닭에 주민들은 얼굴이 누러케 떠서 나물 캐여 생명을 연명하고 있는데 그 참상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업다더라.(조선일보 1926년 5월 15일 기사)
동아일보 1928년 11월 1일 기사는 마천면 주민의 참담한 삶을 다루고 있다.
함양군 마천면 경도 제국대학이 관리하는 지리산 약 6 천정보 안 팔부 능선쯤에 굴밤 나무가 있다. 그 열매의 생산이 매년에 4천 석가량 된다. 구월 하순으로부터 시월 하순경까지 마천면과 그 인접 주민들이 부속 식용(附屬食用)을 하기 위하야 매일 산에서 1인당 4,5말씩 주어 가는데 금년에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가뭄으로 인해 그 부근 마천 주민들은 물론이고 멀리로는 산청군 남원 등 각 방면에서 한 가족을 통솔하고 지난달부터 산중에 가서 막을 치고 굴밤을 줍고 있다. 매일 이백 명 내외의 입산자가 잇서 현재 수천 명에 달하얏다. 요사이는 농사 수확기가 되어 일시적 중단의 상태에 있으나 추수만 마치면 또 다수한 입산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종래에 굴밤을 사고파는 일은 없었으나 금년에는 1석에 70~80전씩에 매매가 되었다. 굴밤의 습득 수량은 마천면에서 약 1천3백 석 기타 일천석 합계 2천3백 석에 달하얏다더라.(동아일보 1928년 11월 1일 기사)
조선일보 1931년 5월 22일 자에도 마천 주민들의 참상을 담은 기사가 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내에는 3천여 호의 화전민이 산재하여 근근이 생활을 하고 있는바 그들의 생활은 실로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의 참담한 상황에 빠져있다. 일 년 하루도 쉬지 않고 피땀을 흘려가며,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도록 밭을 파서 얻은 곡신이 겨우 2~3개월간의 호구에도 달하지 못하는 형편인데, 그들의 삶의 터인 지리산이 경도 제국대학 연습림으로 지정된 후 화전을 엄금하고 유일의 생명줄이었던 벌목도 못하게 하니 살아갈 길이 한층 더 막막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교통 불편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핑계로 화전의 연초 경작까지 폐지하였다. 하는 수 없이 정처 없이 발정을 하고 가도 오도 못하는 나머지 화전민은 근근이 마령서(馬鈴薯)와 굴밤으로 연명은 하나 과다한 세금과 부역으로 지리멸렬의 상태에 빠져 이제는 아사(餓死)에 직면하여 가는 중에 있다.(1931년 5월 22일 기사)
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마천면 주민들이 경도대 학습림 지정 이전에 지리산에서 취득하는 산물을 알 수 있다. 공예용 등의 벌목으로 많은 수익을 남긴다거나, 표고버섯은 수 만원의 이익을 가져다준다거나, 화전을 일궈 담배경작을 하거나 굴밤과 마령서 등의 구황식물을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1석에 70~80 전하는 굴밤이 지리산 전체 2천3백 석, 마천면에서만 1천3백 석을 취득하여 자가의 수익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행위들이 금지되고, 굴밤이나 마령서 약초 등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입산료를 지불해야 했다.
마천면에서 생산되는 굴밤은 1석에 2 가마니로 봤을 때 대략 2천6백 가마니 정도 된다. 이 굴밤 채취를 위해 마천 면민뿐만 아니라 인근에서까지 몰려온다고 했으니 가난한 산골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이 몰려오면 경도대에서도 이들 입산자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입산료 5전에서 10전을 내야 입산할 것이지만, 다수의 산골 주민들은 새벽이나 밤을 이용해 지리산의 굴밤을 채취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 굴밤으로 묵을 해서 먹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가루를 쑥과 버무려 떡을 해서 먹기도 하고 죽을 끓여먹기도 하였는데, 아사를 견딜 수 있는 대표적인 구황식물이었다. 굴밤 채취는 마천 면민뿐만 아니라 남원 산청 함양읍 주민들까지 몰려와 수천 명이 산에 산막을 짓고 채취를 할 정도였으니 식량의 부족에 따른 생존의 몸부림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리산 마천면사(2022) '제2절 일제시대 마천면의 생활상'에서 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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