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한라산 신선길 은선동(隱仙洞) 마애명문(磨崖名文)

도솔산인 2022. 5. 16. 08:12

한라산 신선길 은선동(隱仙洞) 마애명문(磨崖名文)

 

 

  조우석(趙禹錫) : 조선후기의 무신. 헌종 때의 제주목사. 1836(헌종 2) 3, 박장복(朴長復)의 후임으로 제주에 도임하고 183711월에죽물(竹物)을 잘못 실어나른 사건으로 파직되어 떠났다. 당시의 제주판관은 신의항(申義恒)이며 정의현감은 길현범(吉顯範)과 안의석(安義錫)이고 대정현감은 장시열(張時悅)과 안윤경(安允璟)이다. 목사 조우석이 본도에 착임하기 전년의 흉년으로 기민이 많이 생겼는데 진휼을 잘못한 관계로 죽는 자가 많았다. 그의 이름과 그 옆에 당시 제주판관 신의항(申義恒)의 마애명(磨崖銘)이 탐라계곡에 남아있다. 참고문헌관안(官案), 관풍안(觀風案), 탐라기년(耽羅紀年), 제주도마애명(濟州島磨崖名)(1999)

 

  신의항(申義恒) : 조선조 헌종 때의 제주 판관. 1835(헌종 1) 8, 김영업(金英業-臣老)의 후임으로 제주에 도임하고 1838(헌종 4) 2월에 가자(加資)되어 떠났다. 당시 제주목사는 박장복(朴長復), 조우석(趙禹錫),또 이원달(李源達)이며 정의현감은 길현범(吉顯範)과 안의석(安義錫)이고 대정현감은 장시열(張時悅)과 안윤경(安允璟)이다. 판관으로 재임 중 목사 이원달이경민편(警民篇)을 지어 간행하고 이를 각 마을에 배포하여 치정을 밝게 하였다. 신의항은 1842(헌종 8) 7월에 완도군가리포 첨사(僉事)로 부임하여 1843년 윤 7월에 임기가 끝나 돌아갔다. 참고문헌관풍안(觀風案), 관안(官案). 탐라기년(耽羅紀年), 완도군지(莞島郡誌(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