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마천면 의탄리 우락대와 구암대 석각

도솔산인 2022. 2. 17. 01:53

마천면 의탄리 우락대와 구암대 석각

 

 

▶ 마천면 의탄리 우락대(牛樂) 석각

 

 

 

 

▶ 우락대(牛樂䑓) 인명 석각(34명)

 

 

 

상단 12명 : 金基○, 李相基, 河在○, ○○○, 郭泰○, 趙正基, 金鍾根, 鄭永斗, ○碩容, 朴奉甲, 李德根, 朴福守

중단 3명 : 盧益相, 林炳采, 朴基鉉

하단 19명 : 林甫相, 朴亨奎, 朴五龍, ○應水, 李○○, 金鍾顯, 金永燮, 李㑓廈, 河在燮, 崔相○, 郭泰春, 郭○○, 郭○煥

金鍾太, 李石雨, 金玉根, 金遠奎, 林命根, 李相哲

 

서기 一九七三년 三月  日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883번지

행적자 :  박복수외 33명   연대 : 1970년대    석각시기 : 1973년 3월

[개요]

  우락대(牛樂䑓) 바위를 옆에서 보면 모양이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퍼져 있어 주민들은 "갈바우" 또는 "갈모바우"라고 한다. 갈모는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는 우모(雨帽)이다. 옛날에는 牛樂䑓(우락대) 아래 모래사장이 있는 지점에서 소가 헤엄쳐서 임천을 건넜다고 한다. 당시 금계 마을과 의평을 건너는 노디다리(섶다리)는 소가 건너지 못하여, 강 건너 전답을 농사짓기 위해서는 소를 헤엄치게 해서 임천강을 건넜다. 그래서 우락(牛樂)은 '소가 도강(渡江)하는 광경을 구경하는 대'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혹자의 말대로 사람이 소를 타고 즐기며 도강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1970년 추성동으로 들어가는 철제 현수교인 추성교가 건설되었다. 더이상 소가 도강하는 구경거리를 볼 수 없게 되자, 마을의 향계에서 우락대(牛樂䑓)라는 석각을 남긴 것으로 추정한다. 우락대(牛樂䑓) 석각 아래 세로로 34명의 인명이 새겨져 있는데, 높이가 너무 높아서 육안으로 판독되지 않는다. 석각의 시기는 1973년 3월로 현수교를 완공하고 2년 후이다. 당시 현수교(추성교)는 1981년 에그니스 태풍으로 유실되었고, 다리 위에 보리를 말리던 지역주민 12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는 사고가 있었다. 지금은 교각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인명 석각에 생존해 계신 분도 있으니 정확한 유래와 의미를 찾을 것 같다. 

 

▶ 우락대(牛樂䑓) 인명 석각(34명)

 

상단 12명 : 金基○, 李相基, 河在○, ○○○, 郭泰○, 趙正基, 金鍾根, 鄭永斗, ○碩容, 朴奉甲, 李德根, 朴福守

중단 3명 : 盧益相, 林炳采, 朴基鉉

하단 19명 : 林甫相, 朴亨奎, 朴五龍, ○應水, 李○○, 金鍾顯, 金永燮, 李㑓廈, 河在燮, 崔相○, 郭泰春, 郭○○, 郭○煥

金鍾太, 李石雨, 金玉根, 金遠奎, 林命根, 李相哲

 

서기 一九七三년 三月  日 

 

 

마천면 의탄리 구암대(九巖) 석각

 

鷗巖䑓

稧員

白致模, 郭海東, 李鍾九, 李逢春, 許命龍, 林奉守, 沈仁七, 金順祚, 金命培, 董甲星, 董在玉

姜鳳權, 鄭令伊, 李管雨, 鄭采東, 董記萬, 河在榮, 林采千, 林順泰, 林正壽, 董甲龍, 朴亨○

甲辰四月  日

設計白龍甲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883번지

행적자 : 백치모(白致模, 1892~1961)  연대 : 1960년대   석각시기 : 1964년 4

설계자 : 백용갑(白龍甲, 1929~1999)

 

[개요]

  구암대(鷗巖)는 의탄천과 임천강에 노니는 해오라기와 백로를 감상하는 대이다. 구(鷗)는 갈매기가 아니라 강이나 냇가에 사는 해오라기, 백로를 구(鷗)로 표현하였다. 한시에 흔히 등장하는 백구(白鷗)는 백로(白鷺)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백치모(白致模, 1892~1961) 옹은 의평마을 773번지에서 살다가 1936년도 병자년 대홍수 때 금계마을 892번지로 이사하게 된다. 구암대(鷗巖) 좌측의 22명의 인명 석각은 의탄리와 추성리 등 근동의 유계 계원으로 추정된다. 석각의 연대는 갑진(甲辰, 1964)년 4월이다. 좌측 끝에 석각 설계자 운정(雲亭) 백용갑(白龍甲, 1929~1999)은 백치모의 장손자로 마천면 3대 면의원을 지냈다. 진주시 집현면 제26 면장(2017∼19)을 지낸 증손자 초암(草菴) 백승철(白承哲, 1959~ ) 면장은 퇴직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지리산 토종벌 연구소를 운영하며 지리산 토종벌을 보급하고 있다.

 

  ※ 白致模(1892~1961) : 본관은 수원, 마천면 의탄리 의평마을에 살았던 인물이다. 백천석(白千碩, 1833~1892)의 아들이며. 손자 운정(雲亭) 백용갑(白龍甲,1929~1999)은 마천면 3대 면의원을 지냈다. 그리고 후손인 증손자 초암(草菴) 백승철(白承哲)은 진주시 집현면 제26(20172019) 면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