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마천면 삼정리 소재 벽소령의 봉산정계 금표석각

도솔산인 2022. 1. 12. 18:45

마천면 삼정리 소재 벽소령의 봉산정계 금표석각

 

 

조선 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봉산금송(封山禁松)」 조를 보면 송림 벌목을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 송금(松禁)이란 국가가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소나무가 자라는 곳을 선정해 보호하고 벌목을 금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 금산(禁山)과 봉산(封山)이 있다. 둘 다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벌목을 금지한 제도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인구가 증가하고 개간이 진행되어 삼림자원이 황폐되자, 국용재(國用材)·조선재(造船材)·궁용재(宮用材) 등을 위해서 소나무 숲 보호에 적극성을 보였고, 법령으로써 송목금양(松木禁養)에 대처해나갔다.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금산(禁山) 제도였다. 즉, 금산(禁山)이라는 것은 땔감 채취·모경(冒耕)·화전(火田)·토석(土石) 채취 등을 금하는 것이었다.

 

注 모경(冒耕) : 주인의 승낙 없이 남의 땅에 함부로 경작하거나 금지된 구역에 농사를 짓는 것.

 

1734년(영조 10)에는 봉산에 대한 그간의 교령(敎令)을 정리,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을 편찬하였는데, 봉산지역의 산허리 위로는 화전 개간을 못하도록 강조하고 있으며, 벌채 금지·화기 금지 등을 밝혀두고 있다. 《속대전(1746년)》에서도 금산·봉산·의송산(宜松山, 소나무가 잘 자라는 산)·송전(松田)·영액(嶺阨) 등 봉산에 관한 금제 조항이 보이며, 그 위반에 대하여는 엄벌주의가 규정되고 있다. 한편, 황장봉산의 실태는 《속대전》《만기요람》에 부분적으로 보인다. 속대전》에 따르면 1746년 당시 황장봉산(黃腸封山)이 경상도에 7개소, 전라도에 3개소, 강원도에 2개소이며, 《만기요람(1808년)》에는 경상도 14개소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봉산의 수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도벌·남벌 때문에 자원 확보의 필요상 늘어난 것이다.

 

注 1. 영액(嶺阨, 嶺阨禁養山) : 조선 시대 국방상의 요지로, 군대의 주둔이나 수원함양(水源涵養), 혹은 토사 유출 방지 따위를 위한 목적으로 설정된 삼림. 注 2.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봉산금송(封山禁松)조 : 대송(大松) 10주 이상을 범작(犯斫)한 자는 사형(死刑), 9주 이상은 사형을 감하여 정배(定配), 1주의 재목을 훔친 자는 장 60(杖六十), 10주는 장 60, 도(徒 : 고된 노동을 시키는 형벌) 1년(杖六十徒一年), 30주 이상은 장 80, 도 2년(杖八十徒二年), 감관(監官)과 산직(山直)으로서 도벌을 발각하지 못한 자도 장 80, 도 2년에 처하며, 생송(生松)을 범작한 자에 대해 속전(贖錢, 죄를 면하려고 바치는 돈)을 징수한 수령과 변장(邊將)은 장죄(贓罪, 관리가 뇌물을 받은 죄)에 처한다.  3. 《속대전(續大典)》 : 1746년(영조 22)에 《경국대전》 시행 이후에 공포된 법령 중에서 시행할 법령만을 추려서 편찬한 통일 법전. 4. 《만기요람(萬機要覽)》 : 1808년(순조8년)에 서영보(徐榮輔)·심상규(沈象奎) 등이 왕명에 의해 찬진(撰進)한 책으로 「재용편(財用篇)」과 「군정편(軍政篇)」으로 되어 있다.

 

 

 

▶ 어떤 목적의 봉산(封山)인가?

 

봉산(封山)이란 어떠한 목적에 의해 나무의 벌채를 금지한 산을 의미하는데, 조선시대에 이러한 봉산제도를 운영했다. 목적에 따라 왕실에서 쓰일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과 왕릉, 태실, 제단처럼 신성한 장소에 금표를 세운 사례가 있다. 봉산에는 왕이나 왕비의 능묘를 보호하고, 포의(胞衣)를 묻기 위하여 정해진 태봉봉산(胎封封山), 황장목을 생산하기 위한 황장봉산(黃腸封山), 종묘에 신주와 신주함을 만들기 위해 밤나무를 보호하는 율목봉산(栗木封山), 참나무숯을 생산하기 위한 진목봉산(眞木封山), 제사에 쓸 숯의 재료인 향탄목을 보호했던 향탄봉산(香炭封山), 산삼을 보호하기 위한 산삼봉산(山蔘封山), 군대의 주둔이나 수원함양(水源涵養)을 위한 영액봉산(嶺阨封山) 등이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벽소령 대피소에서 약 50m가량 떨어진 자연 바위에 새겨진 봉산정계(封山定界) 석각은 과거 이 지역이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었음을 보여준다. 봉산정계의 의미는 봉산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봉산의 범위 내 또 다른 석각이 새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지리산 벽소령에서 확인된 봉산정계 석각의 경우 봉산으로 지정된 것과 그 경계에 세운 것임은 알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목적의 봉산이었는지는 확인이 어렵다. 현재 지리산의 식생과 과거의 식생이 다를 수 있고, 기록과의 교차 검증이 되지 않기에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지리산 벽소령 봉산정계(封山定界) 석각 봉산정계(封山定界) 사진 조봉근

 

① 발견일시 : 2020년 11월 23일(화)                        ② 발견자 : 조봉근, 최광명

③ 소 재 지 :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161번지              ④ 고도 : 1350m

⑤ 위치좌표 : 35.19.351N 127.38.35.1E                     ⑥ 석각크기 : 가로 38cm, 세로 17cm

 

 

▶ 피아골 봉산금표(封山禁標) :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 36-3(반야봉펜션)

 

진목봉계(眞木封界) 금표&율목계(栗木界) 금표 :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 36-32, 반야봉 펜션 계곡 합수점
이상진목봉계(以上眞木封界)
이하율목봉계(以下栗木界)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피아골의 진목봉계, 율목계 금표의 사례처럼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봉산으로 지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아골에 진목봉산과 율목봉산의 금표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지리산에서 생산되는 목재를 운반할 수 있는 섬진강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봉산정계를 중심으로 과거 사람들이 오간 길이나 중심에서 새로운 석각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향후 봉산과 관련한 새로운 석각이 나온다면 봉산의 범위와 어떤 목적의 봉산이었는지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벽소령의 봉산정계(封山定界) 금표가 어떠한 목적으로 봉산으로 지정되었는지는 추가적인 문헌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봉산정계(封山定界) 암각 명문의 존재는 지리산 벽소령 일대가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었고, 그 경계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注 1. 영액봉산(嶺阨封山, 嶺阨禁養山) : 군대의 주둔이나 수원함양(水源涵養)을 위한 봉산. 2. 수원함양림(水源涵養林) : 나무를 심어 빗물을 흡수하여 수원을 고갈을 방지하고, 또한 수류가 일시에 하천에 집중하여 홍수를 일으키는 것을 막는 삼림.

 

문경 황장산 봉산 표석 안내문 울진 소광 황장봉산 동계 표석 안내문

사진 : 김희태(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 향후 산림문화자산 등재와 안내판 설치 필요

 

현재 지리산 벽소령 봉산정계 석각은 등산로 바로 옆에 있어, 등산객들의 접근성이 용이한 편이다. 전국적으로 산림 관련 금표(禁標)의 경우 시도문화재와 향토유적 혹은 산림문화자산으로 등재하여 보호하고 있다. 봉산정계 석각은 기록에 없는 새로운 금표의 출현이라는 점과 산림 관련 금표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봉산정계 석각의 연구와 보존을 위해 산림문화 자산 등재와 해당 석각 인근에 봉산정계의 의미를 담은 안내판을 설치하여 이를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 전국에 있는 모든 태실지와 봉산 금표를 답사한 선과 임병기 님과 김희태 님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