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은병암과 동신대의 인명 석각 강시영(姜時永)

도솔산인 2022. 9. 28. 15:11

은병암과 동신대의 인명 석각 강시영(姜時永)

 

 

   지난해 9월 중순 산영님이 선녀굴골에서 은병암 석각을 발견하였다. 송대마을에서 선녀굴 방향으로 오르다가 집터가 있는 곳 서쪽 바위 벽면에 은병암(隱屛岩)과 강시영(姜時永) 인명 석각이 있다. 신농산삼약초원 강재두 사장에게 부탁하여 진주 강씨 세보에서 찾아보았으나, 강시영이라는 인물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강재두 사장은 세진대의 주인 적은(跡隱) 강지주 (姜趾周 1856∼1939) 선생의 증손자이다. 얼마 전 칠성님이 동신대(同信臺) 석각 사진을 보내왔다. 이곳에도 강시영(姜時永)이라는 이름이 있다. 지난 주말 동신대(同信臺)를 찾았다. 석각의 상태로 보아 후손들이 관리하는 듯하다. 동신대(同信臺)의 위치는 용유담에서 용담입문 석각을 지나 200m 정도 내려와 복숭아 파는 노점(첫집)의 건너편에 있다.(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산 141-5)

 

 

隱屛岩 姜時永(위치 :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1204번지)

 

▶ 은병암(隱屛岩)

 

  주자(朱子, 1130~1200)의 이름은 희(), 자는 원회(元晦), 호는 회암(晦庵).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학을 집대성함. 54살 되던 1183년에 무이구곡(武夷九曲) 중 다섯 번째 구비에 해당하는 은병암(隱屛) 밑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세우고 제자를 가르쳤다. 그가 터를 잡고 신진들을 가르친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예전부터 중국에서 신선이 살았던 곳으로 이름난 명승지이다. 중국 복건성 숭안현에 있다.

 

 

同信臺I(위치 :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산 141-5)
동신대II

 

 강시영[姜時永, 1788년(정조 12)-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량(汝亮, 汝良). 1819(순조 19)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수찬을 지내고, 1829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으로 정사 이광문(李光文)과 부사 한기유(韓耆裕)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8(헌종 4) 부수찬을 거쳐 1843년 충청도관찰사, 1846년 행호군(行護軍), 1848년 한성부판윤·형조판서, 1854(철종 5) 대사헌을 지냈으며, 1859년 예조판서가 되었다.1866년(고종 3) 조대비가 수렴섭정(垂簾攝政)을 철회하고,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아 인사배치를 할 때 남인으로 기용되어 홍문관제학을 거쳐 이조판서로 승진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은병암과 동신대의 강시영이라는 인물과 무관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