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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MBC "전북이 참 좋다. 김문광(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편"

전주 MBC "전북이 참 좋다. 김문광(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편" ▣ 일 시 : 2023년 07월 13일(목) ▣ 코 스 : 송력동-여궁석-옥룡추-불신당-구룡폭포 ▣ 인 원 : 4명(일정님, 칠성님, 포타님) + 촬영스텝 3명 ▣ 날 씨 : 비 龍湖品題 己巳春 松竂 與諸同志 游湖上 選次九曲地名 刻平石 年八斗孫 待行 三月望日 용호구곡에 대해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다. 기사년 봄 영송(嶺松)의 동료들이 여러 동지들과 용호구곡을 유람하고 구곡의 지명을 선별해 차례대로 정하고서 평평한 돌에 새겼다. 나이 여덟 살 된 손자 斗秀가 나를 모시고 왔다. 삼월 보름. ※ 竂과 同志가 글자의 판독이 확실하지 않다.

지리동부 미타봉·구롱길·두류능선 口箴(구잠) 산행

지리동부 미타봉·구롱길·두류능선 口箴(구잠) 산행 ▣ 일 시 : 2023년 07월 08일(토)~09일(일) ▣ 코 스 : 벽송사-미타봉-구롱길-청이당-국골사거리-두류능선-광점동 ▣ 인 원 : 4명 ▣ 날 씨 : 흐림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춰라. 口是傷人斧 :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言是割舌刀 :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閉口深藏舌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身處處牢 :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는 곳마다 확고할 것이다. 출전 : 명심보감 18.언어편 5장 중국 후당 때의 정치가 풍도(馮道)의 설시(舌詩)에 같은 내용이 있다. 馮道(풍도)의 舌詩(설시) 口是禍之門 : 입은 재앙의 문이요. 舌是斬身刀 :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閉口深藏舌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安身處處牢 :..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석구지(石臼址)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나오는 석구지(石臼址) ▣ 일 시 : 2023년 07월 06일 ▣ 코 스 : 구룡정사-임도-지리산둘레길-구룡치-석구지(石臼址)-전망대-구룡치-옛길-구룡정사 ▣ 인 원 : 2명 ▣ 날 씨 : 맑음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에 산서(山西) 조경남(趙慶男) 장군의 기록이 나온다. 조경남은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난중잡록을 남겼다. 저자가 13세 때인 1582년(선조 15) 12월부터 쓰기 시작하여 1610년(광해군 2)까지 중요한 사실을 엮은 것이다. ‘난중잡록’이라 이름한 것은 임진·정유 두 차례의 난의 기록이 주요 부문을 차지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김사문은 용호구곡 중 제 5곡 선유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병암(屛岩)에 개미처럼 붙어 정상에 도달하면 위태로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불신당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불신당 관련 기록 鄭國儉 爲知府 一日行春屬邑 過源川洞 左右壁上 有松林寺僧正思大書一絶曰: 古佛巖前水 : 고불(古佛) 바위 앞을 흐르는 물이 哀鳴復嗚咽 : 슬피 울고 다시 오열한다. 應恨到人間 : 아마도 인간세계에 내려와 永與雲山別 : 영영 운산(雲山)과 헤어지게 된 것을 슬퍼하는가. 翼日與老儒梁積中連鑣尋訪 結爲山水友 後每論人物 必稱正思爲僧中龍 정국검(鄭國儉) 지부사(知府事)가 되어 하루는 속읍(屬邑)에서 행춘(行春 태수(太守)가 봄에 속읍에 다니며 농상(農桑)을 권장하는 일)할 때, 원천동(源川洞)을 지나게 되었는데 송림(松林)이 있는 좌우 벽 위에 중 (좌우의 벽 위에 송림사 중) 정사(正思)가 한 절구를 크게 써놓기를, [左右壁上有松林 寺僧正思大書一絶曰→左右壁..

망월회원(望月懷遠) 지리동부 영랑대

망월회원(望月懷遠) 지리동부 영랑대 ▣ 일 시 : 2023년 07월 01일(토)~02일(일) ▣ 코 스 : 새재-상류암터-청이당-영랑대-하봉(소년대)-하봉헬기장(해유령)-선암-치밭목산장-새재 ▣ 인 원 : 3명(청이당 합류 2명) ▣ 날 씨 : 흐림 화개에 사는 지리산 사진작가 여명(黎明) 님에게 연락이 왔다. 일기예보를 보니 토요일 비, 일요일 맑음, 음력으로 5월 14일이다. 쳇바퀴를 돌듯 또다시 영랑대로 향한다.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숙고열암에 '송도비명월(松濤沸明月)'이라는 시구가 있다. '소나무 물결 달빛에 들끓는다.'라고 풀이된다. 달빛 아래 들끓는 영랑대의 바람 소리는 마치 파도 소리를 연상케 한다. 시나브로 바람이 잦아들고 둥근 달빛 아래 영랑대에 홀로 서있으니 그리운 사람이 간절히 생각..

용호구곡 불신당 용호품제 석각

용호구곡 불신당 용호품제 석각   龍湖品題己巳春 松寮 與諸同志 游湖上 選次九曲地名 刻平石 年八斗孫 待行 三月望日   용호구곡에 대해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다.   기사(1929) 년 봄 영송(嶺松)의 동료들(?)이 여러 동지들과 용호구곡을 유람하고 구곡의 지명을 선별해 차례대로 정하고서 평평한 돌에 새겼다. 나이 여덟 살 된 손자 斗秀가 모시고 갔다. 삼월 보름. ※ 寮과 同志가 글자의 판독이 확실하지 않다. 용호품제 석각은 김재홍의 아들 입헌(立軒) 김종가(金種嘉, 1889~1975)가 새긴 것으로 전한다. 注 김재홍(金在洪,1867~1939) : 조선 말기 유학자. 호는 영송(嶺松)·수오재(遂吾齋)이고, 전라북도 남원(南原) 두동(杜洞)에서 출생하였다. 가은공(稼隱公)의 7세손으로, 조부는 강암공(剛庵..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의 「용호구곡 경승안내」를 좇아서

난사(蘭史) 김사문(金思汶)의 「용호구곡 경승안내」를 좇아서 ▣ 일 시 : 2023년 06월 17일(토)~18일(일) ▣ 코 스 : 1곡 송력동-2곡 옥룡추-3곡 학서암-4곡 서암-5곡 유선대-6곡 지주대-7곡 비폭동-8곡 경천벽-9곡 교룡담-불이대-용호서원-불신당 ▣ 인 원 : 5명(답사팀) ▣ 날 씨 : 맑음 구곡(九曲)은 산림을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 가운데 경치가 아름답거나 깊은 뜻이 담긴 아홉 굽이를 의미한다. 주자(朱子)를 존숭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주자가 은거해 학문을 닦은 무이구곡(武夷九曲)을 학문적 이상향으로 동경해 왔다. 이러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자신이 은거한 산림에도 구곡(九曲)을 경영하기 시작했고, 이후로 구곡 문화는 이 땅에서 더욱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구곡은 조선의 퇴계와 율곡을..

대둔산 낙조대와 칠성봉에서 노닐다.

대둔산 낙조대와 칠성봉에서 노닐다. ▣ 일 시 : 2023년 06월 15일(목)~16일(금) ▣ 코 스 : 태고사-장군약수터-상여봉(생애대)-낙조대-삼군봉-낙조산장-칠성봉 전망대-마천대-낙조산장-석천암-수락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逍遙詠(소요영) : 소요를 읊다. 白居易(백거이) 亦莫戀此身 : 이 몸을 그리워하지 말고 亦莫厭此身 : 이 몸을 미워하지도 말게 此身何足戀 : 이 몸 어찌 그리워하리오 萬劫煩腦根 : 만겁 번뇌의 뿌리인 것을 此身何足厭 : 이 몸을 어찌 싫어하리오 一聚虛空塵 : 모인 허공의 티끌인 것을 無戀亦無厭 : 그리움과 미워함이 없어야 始是逍遙人 : 비로소 곧 자유인 된다네

대둔산 상여봉과 삼군봉 푸른솔(230608~09)

대둔산 상여봉과 삼군봉 푸른솔(230608~09) ▣ 일 시 : 2023년 06월 08일(목)~09일(금) ▣ 코 스 : 태고사-장군약수터-상여봉(생애대)-낙조대-삼군봉-낙조산장-칠성봉 전망대-마천대-칠성봉-석천암-수락 ▣ 인 원 : 3명 ▣ 날 씨 : 밤비, 맑음 閑情三首 中 二首 一蒼松(한 그루 푸른 솔) 浩然齋 金氏 永夜眠難得 : 긴긴밤 잠을 이루지 못하니 悄悄待曉鍾 : 조용히 새벽 종소리을 기다린다. 玲瓏半夜月 : 영롱한 한밤중의 달이요 蕭瑟五更風 : 소슬한 오경五更 바람이야. 世事愁千疊 : 세상 일은 근심이 천 겹이요 離情恨萬重 : 떠난 정은 恨이 만 겹이어라. 回瞻身外伴 : 몸 밖의 벗을 돌아보니 只有一蒼松 : 다만 한 그루 푸른 솔뿐이로다. 출처 : 「浩然齋遺稿」 注 一蒼松은 제가 임의로 붙..

점필재길을 걷다.(방장문에서 곧은재까지)

점필재길을 걷다.(방장문에서 곧은재까지) ▣ 일 시 : 2023년 06월 03일(토)~05일(월) ▣ 코 스 : 광점동-방장문-청이당-영랑대-상봉-장터목-삼신봉-세석-좌고대-창불대-영신암-곧은재-백무동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 지난 2년간 집필위원으로 참여한 '지리산 마천면사'가 간행되어 6월 2일 마천면 면사무소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산행에 비유하면 '마천면사'라는 장거리 종주산행을 완주한 셈이다. 문호성 마천면사 편찬위원회 위원장님을 비롯하여 함께하신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지리산 인문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지난 2년 동안 마천에서 지리산을 팔아 식객 노릇을 하였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됫박 글을 말 글로 써먹었다. 그냥 지나쳤던 곳도 이곳저곳을 숱하게 찾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