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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은 굶어 죽어도 곡식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鶴餓死而不粟心]

학은 굶어 죽어도 곡식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鶴餓死而不粟心] 녹차(綠此) 황오(黃五, 1816~?)는 방랑시인 난고(蘭皐) 김삿갓(金炳淵)과 교유하였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년~1856)가 제주도로 귀양 갔을 때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추사의 부음(訃音)을 듣고 만사(輓詞)를 지어서 상주 모동에서 과천까지 올라가기도 한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황오는 뛰어난 문장력으로 당대 권력가들과의 교분도 두터웠다. 황오(黃五)가 좌의정(左議政) 영초(潁樵) 김병학(金炳學)에게 만나기를 청하는 詩. (20년 전 만난 일이 있는 김병학은 좌의정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 직접 찾아가지 못하고 서신으로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詩.) 上 潁樵 金相公 炳學 綠此 黃五(黃五·1816~?) 仁旺洞裏雨中見 : 인왕..

순종황제가 내린 밀지(密旨) 경술 통문

순종황제가 내린 밀지(密旨) 경술 통문     경술(庚戌) 통문(通文)은 1910년 음력 7월 순종 황제가 전국 유림에게 내린 밀칙(密勅, 임금이 내린 비밀 칙서)이다. 만세력을 보니 경술국치일(1910. 8. 29)이 음력으로 7월 25일이다. 이 칙서(勅書)는 경술국치 이후에 바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해산으로 정미(1907) 의병이 전국 각처에서 들불처럼 일어나자, 일본은 전국의 군 단위까지 정규군을 배치하여 대대적으로 의병들을 토벌하였다. 1910년은 전국의 의병진이 대부분 궤멸(潰滅)된 상태였다.   일본은 1907년 고종이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高宗)에게 퇴위를 강요하였다. 결국 고종이 황태자에게 국정의 섭정(攝政)을 맡긴다는 양위 조칙(詔勅)을..

매화는 도리행화와 봄을 다투지 않는다.[梅不與挑李杏爭春]

■ 당경(唐庚)이 장무진(張無盡)에게 준 시 二月見梅 : 이월에 매화를 보고 唐庚(1070~1120) 桃花能紅李能白 : 복숭아꽃 붉고 오얏꽃 희니 春深何處無顔色 : 봄이 깊으면 어느 곳에 아름다운 꽃 없겠는가. 不應尙有一枝梅 : 다만 매화꽃은 한 가지에도 남아 있지 않으니 可是東君苦留客 : 봄의 신도 억지로 그를 붙잡아 두기 어려웠음이리라. 向來開處當嚴冬 : 이전에 피었을 때에는 엄동설한 이어서 白者未白紅未紅 : 오얏꽃은 희지 못하고 복숭아꽃도 붉지 않았다오. 只今已是丈人行 : 지금은 이미 손윗 자리가 되었으니 肯與年少爭春風 : 어찌 젊은이들과 봄바람을 다투려 들겠는가. 출처 고문진보 注 唐庚(1070~1120) : 북송시대 시인. 東君 : 절기로 보면 봄철이 이미 지났다는 말이다. 동군은 봄을 맡은 신..

孝𡨴大君 房 下執事(효령대군 방 하집사)

孝𡨴大君 房 下執事1) 戊子流月2) 初吉3) 逋人4)金時習拜手 무자년(1468) 6월 1일 포인(逋人) 김시습(金時習)은 절(拜)을 올립니다. 時習乙酉春 卜築5)金鰲山6) 若將終身 三月晦 伏承以從馬馳召辱賜書曰 聖上重新古弘福寺 命名圓覺 僕薦于聖上 聖上命召赴慶會 勿𨒫(逆)来(來)赴 時習於是 改舊勝會7) 嘗8)剋日9)上京 以參嘉會馳賀 便回以終餘年 저는 을유년(1465) 봄 금오산(金鰲山)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여생(餘生)을 마치려 하였습니다. 3월 그믐날에 종자가 말을 타고 달려와 부르시며 보내신 편지를 엎드려 받았는데, 그 편지에 “성상께서 옛 홍복사(弘福寺)를 중수(重修)하여 원각사(圓覺寺)라 명명(命名)하시고, 제가 성상께 공을 천거하였더니, 성상께서 경사스러운 모임에 부르라고 명하시었으니, 물리치지 말..

梅月堂 道案 呈納(매월당 도안 정납)

梅月堂 道案 呈納[매월당에게 드립니다.] 戊子之午月1) 二十一日 𥙷 頓2) 金鰲3)之別 倐已星回 戀思可量 무자년(戊子年. 1468) 5월 21일에 보(𥙷)가 안부를 묻습니다. 금오산(金鰲山)에서 작별한 뒤로 벌써 해가 바뀌었으니, 그리운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今春聖上 重新弘福寺4) 命名圓覺 今將落成 僕以説卿5)為士林領袖 薦于聖上 聖上命召慶會 勿𨒫(逆)来(來)赴 區區者6)㪽(所)望 금년 봄에 성상(聖上)께서 홍복사(弘福寺)를 중수(重修)하여 원각사(圓覺寺)라 명명(命名)하시고, 이제 곧 낙성(落成)하려 합니다. 제가 열경(悅卿)을 사림(士林)의 영수(領袖)로 여겨 성상께 추천(推薦)하였더니, 성상께서 공을 경사스러운 모임에 부르라고 명하시었으니, 물리치지 말고 올라오시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圓覺寺 御製 誡文(원각사 어제 계문)

圓覺寺 御製 誡文(원각사 어제 계문) 圓覺寺 瑞氣放光 甘露須陀味 雨花現相 원각사에 상서로운 기운이 빛을 발하고, 감로(甘露) 수타미(須陀味)와 우화(雨花)가 나타나니(現相), 舍利分身 平等道塲 同叅 사리(舍利)가 분신(分身)된 평등하게 법식을 베푸는 도량(원각사) (重修)에 함께 참여하였다. 凡我同契之人 旣生淨信 우리 함께 맺어진 사람들은 이미 청정한 믿음이 생겼으니, 勿作妄惑 妄惑生處 皆是緣塵 망령되이 혹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망령되이 혹하는 마음이 생기는 곳은 모두 속세의 인연(塵緣)이다. 緣塵之聚 重濁成山 畢竟限碍 輕淸無日 속세의 인연(塵緣)이 모여 무겁고 탁한 것이 산을 이루면, 마침내 자유롭지 못할(限碍) 것이요, 산뜻하고 맑은 날이 없을 것이다. 若欲除之 畚鍤並用 만약 진연(塵緣)의 덩어..

강진 만덕사 시주기(康津 萬德寺 施主記)

강진 만덕사 시주기(康津 萬德寺 施主記) 全羅道康津 在田畓 幷十結庫乙 同地萬德寺良中 爲奉 祖宗長年 水陸寶長 以納寺爲如乎 代遠將廢水陸失 予夲意爲去乙等 予之已物 不可虛意是昆 子孫中 以推尋耕食 以福予意 幸甚甚 전라도 강진에 전답이 있는데, 합하여(幷) 10결(結)인 곳을 하나의(同) 땅으로 만덕사(萬德寺)에 신위를 봉안하여, 조종(祖宗)이 영원하길 비는 수륙재(水陸齋)의 밑천으로 절에 헌납(獻納)하였는데, 대(世)의 수(數)가 멀어져, 장차 수륙재를 폐지하여 잃어버리면, 나의 본뜻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미 시주한 재물이 헛된 뜻이 될 수 없으니, 자손 중에서 이를 찾아 농사를 짓고 살면서 나의 뜻에 맞게 하면 퍽(무엇보다) 다행이겠다. 成化十八年 七月 二十日 성화(成化) 18년(1482, 성종 13년) 7..

보은 속리산 복천사기(福泉寺記)

보은 속리산 복천사기(福泉寺記) 山之靈 不在於高大 有㝫籃巨刹 擅形勝於其中則靈 寺之名 不由於崇麗 有高流宿德 隆道譽於其間則名 산의 신령함은 높고 큰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웅장한 거찰(巨刹)이 있고 그 안에서 지세가 뛰어난곳(形勝)을 차지하면 신령스럽다. 절의 이름은 높고 화려함(崇麗)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명망(名望)과 덕망(德望)이 높은 중이 있고 그 사이에서 불도의 명예(道譽)를 높이면 이름이 난다. 至若有稀今罕古之偉跡 曠世難逢之奇會 則向所謂㝫籃巨刹之擅勝 高流宿德之廣譽 曾不足爲喻 而其所以流於後世者 爲益無窮矣 俗離山雄跨忠淸慶尙兩道之境 浮屠氏多屋於其間 福泉寺正在山之中 고금에 드문 위대한 행적(偉跡)과 세상에 매우 드물고(曠世) 만나기 어려운 기이한 기회가 있음에 이르면 이른바 웅장한 거찰(巨刹)이 명승..

觀音現相記(관음현상기)

觀音現相記(관음현상기) 輸忠衛社協贊 靖難佐翼功臣 崇政大夫 中樞院使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事 世子右賔客 兼成均大司成 寧城君 臣崔恒 奉敎撰 수충위사협찬(輸忠衛社協贊) 정란좌익공신(靖難佐翼功臣) 숭정대부(崇政大夫) 중추원사(中樞院使)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세자우빈객(世子右賔客) 겸 성균대사성(兼成均大司成) 영성군(寧城君) 신(臣) 최항(崔恒)이 임금님의 교지를 받들어 지음. 天順六年十月戊子 上與中宫世子 狩于亰畿 庚寅 駐蹕砥平縣彌智山下 留大軍 只率獅子控弦等數衛 幸上院寺 寺乃孝寕大君 𥙷願刹也 1462년 10월 27일 (세조 8년, / 천순 육년 시월 무자) 임금님께서 중궁(中宫)·세자(世子)와 함께 경기(亰畿)지방에 순수(巡狩)를 나가셨다가, 10월 29일(庚寅) 지평현(砥平縣) 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