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점필재의 아홉모랭이길 숫눈길을 뚫고

도솔산인 2024. 2. 12. 18:45

점필재의 아홉모랭이길 숫눈길을 뚫고

 

 

▣ 일 시 : 2024년 02월 11일(일)~02월 12일(월)

▣ 코 스 : 광점동-어름터-방장문-청이당-방장문-주막터-동부-미타봉-벽송사능선-어름터-광점동

▣ 인 원 : 8명

▣ 날 씨 : 맑음(영하7도)

 

 

穿雪 : 숫눈길을 뚫고

 

                  이양연(李亮淵,·17711856)

           

穿雪野中去 :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 아무렇게나 걸어서는 아니 되네

今朝我行迹 :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 뒤에 오는 사람의 길잡이 되리니

 

 

  입춘이 지나고 전국에 많은 비가 내렸다. 지리산에 눈이 많을 거라고 예상하고도 스패츠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 불찰이었다. 의탄천을 다섯 번 건너서 능선에 붙으니 산죽밭이 폭설에 쓰러져 갈 길을 막았다. 방장문에 배낭을 놓고 선수 두 분과 아홉모랭이를 지나 청이당까지 무릎 깊이의 숫눈길을 걸었다. 눈 표면이 살짝 크러스트 되어서 등산화 속으로 자꾸 눈이 들어왔다. 청이당에서 방장문으로 돌아와 일강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등산화는 이미 젖었고 일몰 직전 체력을 다 소진하고야 겨우 일강에 닿았다. 사위에 어둠이 내리자 광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온도계를 보니 영하 7도를 가리킨다. 

 

  초저녁에 거센 바람이 불다가 깊은 밤이 되어서 잠잠해졌다. 다음날 고요한 새벽 심설을 헤치고 상내봉(향로봉) 가는 길은 인생길과도 같았다. 산행 또한 고진감래가 아니던가. 아홉모랭이길을 온종일 걸은 고행이 없었다면 오늘 새벽의 장엄한 일출은 없었을 것이다. 웅석봉 위로 떠오르는 저 붉은 태양을 보라! 지리산 구중심처 와불산 향로봉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장엄하기만 하다. 지리산 인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지리산의 지명 또한 숫눈길과 같아서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되돌리기가 어렵다. 검증되지 않은 지명을 지리산길 지도에 표기하면 바로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노장대(독녀암)와 미타봉·상내봉도 그렇다. 심설산행을 함께하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끝.

 

 

■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고열암-일강-동부-이름 새긴 바위-구롱-청이당 앞 계석)

 

  ○ 815, 기묘일. 새벽에는 날이 더욱 흐려졌다. 요주(寮主)가 말하기를, “빈도(貧道)가 오랫동안 이 산에 거주하면서 구름의 형태로 점을 쳐본 결과, 오늘은 필시 비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기뻐하며 짐을 싸는 인원을 줄여서 돌려보내고 절에서 나와 곧바로 푸른 등나무 덩굴이 깊숙이 우거진 숲속으로 나아갔다. 큰 나무가 저절로 말라죽어 좁은 길에 넘어져 있으면서 외나무다리 역할을 하였는데 절반쯤 썩어 있는 가지가 그래도 땅을 지탱하고 있어 행마(行馬)와 같은 모습이어서 머리를 숙이고 그 밑으로 지나갔다.

 

注 요주(寮主) : 좌선하는 수행승이 자유 시간에 거처하는 중료(衆寮)의 잡무를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승려.[네이버 지식백과]

 

  그리하여 일강(一岡)을 지나니, 해공이 말하기를, “이곳이 구롱(九隴) 가운데 첫 번째[此九隴之第一也]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언덕을 지나[連度三四] 동부(洞府)를 만났는데, 지경이 넓고 조용하고 깊고 그윽하며, 수목들이 태양을 가리고 등나무 덩굴이 덮이고 얽힌 가운데 계곡물이 돌에 부딪혀 굽이굽이 소리가 들렸다. 그 동쪽은 산등성이인데 그리 험준하지 않았고, 그 서쪽으로는 지세가 점점 내려가는데 여기서 20리를 더 가면 의탄촌(義呑村)에 도달한다. 만일 닭과 개, 소나 송아지를 데리고 들어가서 나무를 깎아내고 밭을 개간하여 기장, , , 콩 등을 심어 가꾸고 산다면 무릉도원(武陵桃源)보다 그리 못하지는 않을 듯했다. 그래서 내가 지팡이로 계곡의 돌을 두드리면서 유극기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 어떻게 하면 그대와 함께 은둔(隱遁)하기를 기약하고 이곳에 와서 노닐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고는, 그에게 이끼를 긁어내고 바위의 한가운데에 이름을 새기도록 하였다.[使之刮苔蘚 題名于巖腹]

 

  구롱(九隴)을 다 지나서는 문득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데, 가는 구름이 나직하게 삿갓을 스치고, 초목들은 비를 맞지 않았는데도 축축이 젖어 있으므로, 그제야 하늘과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알았다. 이로부터 몇 리 가지 않아 등성이를 돌아 남쪽으로 가면 바로 진주(晉州) 땅이다. 그런데 안개가 잔뜩 끼어서 먼 곳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청이당(淸伊堂)에 이르러보니 지붕이 판자로 만들어졌다. 우리 네 사람은 각각 청이당 앞의 계석[堂前溪石]을 차지하고 앉아서 잠깐 쉬었다.[四人 各占堂前溪石上 小憩]

 

 

 

 

방장문

 

구롱 삼거리

 

 

 

 

청이당 앞의 계석(堂前溪石)
청이당터 석축
네모랭이 바위

 

바위 한가운데에 이름을 새기도록 하였다.[題名于巖腹]
세모랭이 바위

 

 

 

 

 

 

 

 

일강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