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5

초암능선 朴回城 기초조사 자료(180410)

초암능선 朴回城 기초조사 자료(180410) 1. 자원명 : 함양 추성 초암능선 朴回城(麗末鮮初에 축성된 피난성) 2.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3. 해발고도 :학계에 보고 된다면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은 고도(1,238m)에 위치한 山城임. 4. GPS좌표 가. 경도 : 127-71814 나. 위도 : 35-35841 5. 조사자 : 3명(정○○, 임○○, 이○○) 6. 조사내용 가. 해발 1238m에 위치하며 하봉아래 초암능선에 위치함. 나. 잔존 성벽이 남아 있으며, 망루로 추정되는 자연바위 위에 석축을 쌓았음. 다. 자연지형을 이용한 전형적인 포곡식성(包谷式城)으로 추정됨. 7. 참고문헌 가. 1530년《신증동국여지승람》제31권 / 경상도(慶尙道) 함양군(咸陽郡) 지리산(智異山)은 군 남쪽 ..

玄石 이호신 화백님의 점필재길 이야기I(180720~22)

이호신 화백님의 점필재길 이야기I(180720~22) 사진과 글로는 선인들의 유람길을 도저히 담아낼 수 없기에 한국화 화가이신 玄石 이호신 화백님께 화폭으로 점필재 길을 복원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불일폭포에 이어 두 번째 화첩산행을 하게 되었다. 玄石 선생님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을 어떻게 해석하시고 화폭에 담아내실까. 내가 울릉도 여행 도중 山後調理도 하지 않으시고 선생님께서 메일을 보내셨다는 加牘을 받았다. 도솔의 산수벽과 화백님의 예술혼이 담긴 玄石 선생님의 작품은 어떠할지 자못 궁금하다.

唱佛臺(창불대) 관련 유람록과 기행시(180809)

唱佛臺(창불대) 관련 유람록과 기행시(180809) 1.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과 영신암詩 ○ 17일, 신사일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너무 높아서 그 아래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躑躅〕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 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이한 광경이었다. 해공이 여러 산골짜기가 모인 곳을 가리키면서 신흥사동(新興寺洞)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절도사(節度使) 이극균(李克均)이 호남(湖南)의 도적 장영기(張永己)와 여기에서 싸웠는데, 장영기는 개나 쥐 같은 자라서 험준한 곳을 이용했기 때문에 이공(李公) 같은 지략과 용맹..

坐高臺(좌고대) 관련 선인들의 유람록(180808)

坐高臺(좌고대) 관련 선인들의 유람록(180808) 좌고대는 실제로 시야가 트인 천왕봉부터 반야봉까지 지리의 동서남북을 조망할 수 있다. 좌고대에 오르면 기록을 보고 찾아가는 시간 여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선답자들이 영신사지에 대한 성급한 판단과 발표가 10년 넘게 지명에 대한 오랜 혼란을 빚어왔다. 감수재가 두류산일록에 云『무릇 천하의 만물 가운데 욕심을 가진 놈은 남에게 제압당하지 않은 놈이 없다.(凡天下之物。有欲者無不見制於人)』라고 하였다. 세석산장 앞 습지의 엉터리 영신사지와 가짜 청학연못이 국회 전자도서관에 전자문서로 보존된 박사 학위 논문 [조선시대 유람록에 나타난 지리산 경관자원의 명승적 가치 = (The)scenic site value of scenic resources in Mt...

1472년 점필재길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화첩산행II(180804~06)

1472년 점필재길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화첩산행II(180804~06) ▣ 일 시 : 2018년 08월 04일~06일 ▣ 코 스 : 백무동-우리동-구제석당터-제석당터-향적사터-장터목-촛대봉-적석동소지-세석산장-영신봉-영신대-창불대-세석-바른재능선-점필재탁영소-백무동 ▣ 인 원 : 8명(최석기 교수님, 一丁 선생..

제석당터 석각 제석암&감로천외(180804)

제석당터 석각 제석암&감로천외(180804) 帝釋堂朴魯翊建屋壬戌七月日(1922년 7월) ♣ 개벽 제 34호 지리산보(1923년 4월 1일) 현재 咸陽郡守 閔麟鎬씨는 空殼의 名勝古蹟이나마 보존하랴고 保勝會를 조직하고 智異山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하야 智異山誌를 葺輯 중이오, 同郡有志 姜渭秀씨는 遊山하는 人의 편리를 圖키 위하야 山上에 望海亭을 건축하고 朴魯翊 及 靈源寺僧 一同은 帝釋堂을 건축하얏스며 李璡雨 及 碧松寺僧 一同은 馬岩堂을 건축하야(兩處는 皆 中峯) 本年 陽春佳節에 開山式을 行하랴 한다. 此가 本山의 幸이라 할지. 帝釋岩(제석암) 甘露泉(사진 이상운) 甘露泉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과 기행시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1. 두류산을 유람하기로 하다[엄천-고열암] 나는 영남(嶺南)에서 나고 자랐으니, 두류산은 바로 내 고향의 산이다. 그러나 남북으로 떠돌아 벼슬하면서 세속 일에 골몰하느라 나이 이미 마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유람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묘년(1471년, 성종2년) 봄에 함양 군수(咸陽郡守)가 되어 내려와 보니, 두류산이 바로 그 봉내(封內)에 있어 고개만 들면 푸르게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흉년으로 인한 민사(民事)와 부서(簿書) 처리에 바빠서 거의 2년이 되도록 한 번도 유람하지 못했다. 그리고 매양 유극기(兪克己), 임정숙(林貞叔)과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항상 걸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금년(1472년, 성종 3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