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95

1610년 박여량 [두류산일록]의 上流庵址를 찾아서II(180504~06)

1610년 박여량 [두류산일록]의 上流庵址를 찾아서II(180504~06) ▣ 일 시 : 2018년 05월 04일 ~ 06일 ▣ 코 스 : 남사마을 - 산천재 - 덕천강 정자(泊) - 새재 - 독바위골 - 甕巖(진주독바위) - 영랑대(泊) - 장터목 - 중산리 ▣ 인 원 : 4명(미산님, 조박사님, 熊乭子) ▣ 날 씨 : 아침 최저 기온 10도 감수재 박여량 선생의 두류산일록을 접한 것은 오래 전이지만, 2015년 9월 19일 조개골 상류에서 지산팀 슬기난님의 행랑굴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원문을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분은 작은조개골의 행랑굴에 대한 의문을 나에게 던졌고, 나는 고전번역원에 들어가 원문을 다운받아서 20여일에 거쳐 촘촘히 읽어 내려갔다. 아마 이날이 치밭목에서 '지리산 산길따라' 정..

불일폭포 翫瀑䑓(완폭대)의 立石及刻字(180417)

불일폭포 翫瀑䑓(완폭대)의 立石及刻字(180417) 지난 3월 25일 불일폭포 일원을 함께 답사한 팀장인 님이 翫瀑䑓 刻字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읽어본 유산기 자료에는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 처음 보이고, 1807년 남주헌의 [지리산행기]를 끝으로 보이지 않는다.(표참조) 나는 유산기에 나오는 대로 완폭대의 위치를 추정했을 뿐인데, 바로 그 자리에서 완폭대의 각자를 발견함으로써 완폭대 위치에 대해 명확하게 정립이 된 것이다. 翫瀑䑓 刻字가 선인들의 일부 유산기에서 고운 최치원의 필적이라고 언급하였으나, 성급하게 결론을 짓기는 어렵다. 1558년 남명선생이 불일폭포를 세 번째 유람하고 남긴 [유두류록]에서 완폭대를 '寺門外松樹下(절문 밖 소나무 아래)'라고 기술한 것으로 미루어, 남명선생이 ..

불일암 냉연대 아래 오암의 석각과 탁본(180417)

불일암 냉연대 아래 오암의 석각(180417) * 1558년 남명 조식의 유두류록 ○ 4월 19일 이날 아침 김경이 병 때문에 함께 가는 것을 사양하고 기생 귀천(貴千)을 데리고 급하게 떠났다. 김군은 이때 나이가 일흔 일곱이었지만 나는 듯하여 처음에는 천왕봉까지 오르려 하였으니 사람됨이 마치 이원(利園)에서 노닐다 온 사람처럼 대범했다. 호남에서 온 네 사람과 백유량, 이씨 두 유생이 동행하였다. 북쪽으로 오암을 오르는데, 나무를 잡고 잔도를 오르면서 나아가는데 원우석은 허리에 찬 북을 치고, 천수는 긴 피리를 불고, 두 기생이 따르면서 선두를 이루었다. 제군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물고기를 꼬챙이에 꿴듯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중간 대열을 이루었다. 是朝. 金君涇辭以疾. 挾妓貴千徑去. 金君時年七十七..

1610년 박여량 두류산일록의 上流庵址를 찾아서I(180413~15)

1610년 박여량 두류산일록의 上流庵址를 찾아서I(180413~15) ▣ 일 시 : 2018년 04월 13일 ~ 15일 ▣ 코 스 : 남사마을 - 산천재 - 미산재(宿) - 산천재 - 새재 - 독바위양지 - 甕巖(진주독바위) - 독바위골 - 새재 - 경남도립미술관 ▣ 인 원 : 5명(미산선생님, 一丁 閔선생님, 송연목씨, 김자준씨), 15일 조중제님 ▣ 날 씨 : 아침 최저 기온 -2도 지난해 10월 두 차례에 거쳐 1박 2일로 감수재길을 답사하였으나, 끝내 상류암지를 찾지 못하고 한 해를 넘겼다. 상류암지 확인은 지리동부의 유산기에서 마지막 남은 과제이다. 지리동부에서 지장암지와 두류암터, 미타봉과 향로봉, 청이당터와 점필재가 쉬어간 계석, 행랑굴과 개운암, 영랑재와 소년대, 말바우산막터와 마암 등을 ..

청학의 비밀과 불일폭포 이야기

청학의 비밀과 불일폭포 이야기 1558년 4월19일 남명 조식은 불일암과 불일폭포를 유람하고 청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서쪽으로 푸른 벼랑을 깎아내어 만 길 절벽으로 우뚝 솟은 것은 비로봉(毘盧峯)으로 청학 두세 마리가 그 바위틈에 깃들여 살면서 때때로 날아올라 빙빙 돌기도 하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남명 선생이 청학을 직접 목격한 것인지 안내한 승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 이후에 불일암을 다녀간 선인들의 유산기에는 청학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청학을 직접 목격한 기록은 없다. 동쪽으로 높고 가파르게 솟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것은 향로봉(香爐峯)이고, 서쪽으로 푸른 벼랑을 깎아내어 만 길 절벽으로 우뚝 솟은 것은 비로봉(毘盧峯)으로 청학 두세 마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