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1487년 <남효온>지리산일과의 貧鉢峰과 鷄足峰

도솔산인 2018. 4. 15. 06:09


1487년 <남효온>지리산일과의 貧鉢峰과 鷄足峰



 1487년 秋江 <남효온>선생의 [智異山日課]에 나오는 빈발봉(貧鉢峰) 어디인가? 秋江의 [智異山日課]에는 다른 유산기에서 보이지 않는 지명이 등장한다. 빈발봉(발봉), 소년대, 계족봉, 빈발암 외에도 여러 지명이 나오는데 먼저 선인들의 유산기에 나오는 세석 일원의 지명에 접근보고자 한다.

 

마하가섭존자(Mahakassapa, 大迦葉)는〈과거현재인과경4,불본행집경45,불소행찬4,증일아함경20 ‘성문품’,잡아함경40, 중본기경하권 대가섭시래품’, 불설대가섭본경등 경전에 따라 출생과 출가과정이 약간씩 다르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부처님 당시 인도 마가다국 라자가하 부근 마하사타라촌에 국왕보다 재산이 많은 니구율다(尼俱律陀. 니그로다) 장자는 핍팔리(보리수)에 빌어서 자식이 태어나자, 그 이름을 핍팔리(핏파리 혹은 필바라야나)라고 하였다.[펌] 빈발(貧鉢) 또는 빙발(氷鉢)은 핍팔리가 한역된 어휘로  마하가섭(Mahakassapa, 大迦葉)의 출생부터 출가하기 전의 俗名이다.



蒙山畫幀迦葉圖贊

 

                         匪懈堂 李瑢

 

頭陁第一是爲抖擻: 마하가사파 존자께서는 두타수행인 두수를 바르게 실천하시어

外已遠塵內已離垢: 밖으로 이미 번뇌를 떨치시고, 안으로는 마음의 때를 벗으셨네

得道居先入滅於後: 앞서 (아라한과)를 얻으시고 뒤에는 적멸의 경지에 들었으니

雪衣雞山千秋不朽: 눈덮인 계족산에 깃들어 천추에 사라지지 않고 길이 전하리라.


                                                              [출처 : 1472년 김종직선생의 유두류록] 



 * 몽산 : 원나라 고승 몽산화상. * 頭陁第一 : 마하가섭존자(마하카사파, Mahakassapa, 大迦葉), * 雪衣雞山 : 눈덮인 계족산(찬에 나오는 雪衣雞山과 유산기에 나오는 계족봉영신봉으로 보았다) * 성해응[1760(영조36)∼1839(헌종5)]의 [지리산 산수기]에도 안평대군의 蒙山畫幀 迦葉圖 贊이 실려있다


* 雞山(雞足山) : 계족산은 범어로는 꿋꾸따빠다산(Kukkuṭapāda-giri, 屈屈吒播陀山)또는 尊足山. 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에 있던 산. 가섭이 여기서 입적하였음.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부처님의 상수 제자인 마하가섭이 다음에 오실 미륵 부처님께 전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가사를 가지고 바위 틈에 들어가서 아직까지 머물고 계시다는 산이다. 산의 모양이 닭의 발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계족산이라고 한다. giri는 산스크리스트어로 산이라는 뜻이다.[법륜종 보광사 원명스님]


 추강의 [智異山日課]에 나오는 빈발봉은 촛대봉, 계족봉영신봉으로 추정한다. 흥미롭게도 이 시점에서 점필재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몽산화상이 그린 가섭도의 안평대군 비해당 贊을 다시 국역하여 설의계산석가섭을  풀었으니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빈발봉(촛대봉) 아래 기도터는  마하가섭이 태어나고, 출가 이후 두타행을 수행한 과정이라면, 빈발봉(촛대봉) 아라한과를 증득한 뒤 기사굴산(영취산) 핍팔라(賓鉢羅)에서 수행하며 대중들을 교화하고,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칠엽굴에서 1차 결집을 하고 불교 교단의 중심 인물이 되어 교단을 이끌었던 영역이며, 계족봉(영신봉)석가섭좌고대는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袈裟(가사)를 다음에 오실 미륵 부처님께 전하기 위해 적멸의 경지에서 선정(禪定)에 들어가 미륵불을 기다리는 영역이 된다. 따라서 세석 일원은 마하가섭의 출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전 생애가 모두 담겨있는 작은 우주로 이해하였다.


 빈발(賓鉢)가섭(迦葉) 그리고 영신(靈神)마하가섭을 가리키고, 석가섭(石迦葉), 가섭대(迦葉臺), 가섭전(迦葉殿) 또한 같은 의미로 이해했다. 가섭존자가 적멸의 경지에 들어 석가섭(石迦葉)이 되어 가섭대(迦葉臺)에 깃들어 禪定을 하고 계시니 가섭대(迦葉臺) 전체를 가섭전(迦葉殿)으로 보았다. 유학자가 기록한 선인들의 유산록을 완전히 이해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풀기가 어렵다. 내가 독서량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자신의 한계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아무튼 불교에 문외한이지만 천왕봉 일원이 석가세존의 영역이라면, 세석 주변은 마하가섭존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족산(영신봉) 아래에 영신암석가섭이 있으며, 좌고대는 천왕봉을 우러러보면서 지리(giri)의 중심에서 방장산 전체를 아우르고, 화개동천을 내려다보는 또 하나의 가섭 형상인 것이다. 


추강 남효온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제자로 점필재가 지리산 유람을 한 후 15년 뒤인 1487년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천왕봉과 반야봉에도 올랐고, 스승 김종직 선생의 유듀류기행시에 나오는 청학선인(최치원)의 발자취를 좇아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을 답사하면서, 절경에 대한 감상보다는 여정 및 유적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단순한 유람 성격의 기행이라기보다는 충실한 고적 답사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쌍계사 일원을 청학동이라고 단정짓고, 유일하게 불일암 아래 학연청학연이라고 하였다. 동행한 사람이 승려 義文 한 사람뿐이니, 지리산일과에 등장하는 지명은 義文의 의견을 따랐을 것이다.


좌고대에 대한 설명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나는 가섭전 뒤쪽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좌고대(坐高臺)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상, , 3층이 있었는데 나는 중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다. 심신이 놀라고 두근거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대의 뒤에는 위험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좌고대보다 더 높았다. 나는 그 바위에 올라 좌고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기이한 풍경이었다. 의문은 좌고대 아래에 앉아서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였다.】아래 사진은 추강이 좌고대를 살피기 위해 올랐던 바위이다. 


앞으로 지리산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지리의 인문과 역사 복원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기대보다 먼저 염려가 앞선다. 성급하게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다가 오류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기록이든 무한 책임이 따른다. 선인들의 유산기에 나오는 지명의 해석과 고증 또한 그렇다.  끝.




좌고대뒤의 추강암


1487년 101일 정묘일 추강 남효온이 올랐던 바위 秋江巖



선인들의 유산기에 나오는 세석일원의 지명

구분

좌고대

석가섭

비로봉

창불대

계족산

촛대봉

비고

1463/이 륙

奇石削立如檣

迦葉臺/迦葉石像

東有石峯. 如浮屠狀

 

 

 

 

1472/김종직

坐高臺

石迦葉/迦葉殿

 

唱佛臺

雪衣鷄山

甑峰

 

1487/남효온

坐高臺

迦葉殿

 

 

雞足峰

賓鉢峰

貧鉢庵/少年臺

1489/김일손

坐高臺

石迦葉像

 

唱佛臺

 

 

 

1545/황준량

 

千尋迦葉

 

唱佛臺

 

 

 

1611/유몽인

坐高臺

迦葉臺

毘盧峰

 

 

獅子峰

 




석상의 각자(生)는 핍팔리(마하가섭)의 誕生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촛대봉(빈발봉) 아래 기도터


빈발봉(촛대봉)


1611년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 사자봉


설의계산/계족봉/영신봉


좌고대


1611년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 비로봉


석가섭/가섭대


♣ 참고자료


1. 1487 추강 <남효온>의 [지리산일과]

智異山在南海濱. 最秀於衆山. 其中上頂曰天王峯. 峯勢北走. 止爲一岳. 曰中峯. 南迤爲一嶂. 氷鉢峯. 又西南走. 成一大川. 曰般若峯. 又南爲一岳. 曰華嚴峯. 西爲一岳. 曰普門峯.

지리산이 남쪽 바닷가에 있으니, 뭇 산 가운데 가장 빼어나다. 그 중 가장 꼭대기를 천왕봉이라 하니, 봉우리 형세가 북쪽으로 달려간다. 다만 하나의 산이 된 것을 중봉(中峰)이라 하고, 남쪽으로 뻗어 산봉우리가 된 것을 빙발봉(氷鉢峰)이라고 하며, 또 서남쪽으로 달려가 하나의 큰 내를 이룬 것을 반야봉(般若峰)이라고 한다. 또 남쪽에 하나의 산이 된 것을 화엄봉(華嚴峰)이라 하고, 서쪽에 하나의 산이 된 것을 보문봉(普門峰)이라 한다.

 

十月丁卯朔. 留米一斗別一囧. 發香積. 登少年臺. 穿綿竹度鷄足. 山行三十里. 貧鉢庵. 下有霛神庵. 後有伽葉殿. 世俗所謂有霛驗者. 余詳視之. 一石頑然. 余從伽葉殿後攀枝仰上一山. 名曰坐高臺. 有上中下三層. 余止上中層. 心神驚悸. 不得加上. 臺後有一危石高於坐高臺. 余登其石. 俯視臺上. 亦奇玩也. 義文坐臺下. 恐懼不得上. 是日之西面淸明. 倍於曩日. 西海及鷄龍諸山. 歷歷可辨. 須臾. 還下貧鉢夕飯. 時落日在庵. 人寰夜黑.

101일 정묘일. 쌀 한 말을 남겨두고 일경과 작별하였다. 향적암을 출발하여 소년대(少年臺)에 올랐다. 솜대綿竹를 뚫고 계족봉(足峰)을 지나 산길로 30리를 걸어 빈발암(貧鉢庵)에 이르렀다. 그 아래에는 영신암(靈神庵), 암자 뒤에는 가섭전(伽葉殿)이 있었는데 세속에서 영험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그곳을 자세히 보니 한 덩이의 돌이 완연히 있을 뿐이었다. 나는 가섭전 뒤쪽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좌고대(坐高臺)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상, , 3층이 있었는데 나는 중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는데 심신이 놀라고 두근거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대의 뒤에는 위험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좌고대보다 더 높았다. 나는 그 바위에 올라 좌고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기이한 풍경이었다. 의문은 좌고대 아래에 앉아서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 날 서쪽 방면은 전날보다 훨씬 청명하여, 서해와 계룡산 등의 여러 산을 두루 분별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빈발암으로 돌아 내려와 저녁밥을 먹었는데 마침 암자에서 지는 해를 보았다. 해가 지자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戊辰. 貧鉢. 穿霛神. 行西山頂樹木中三十里. 抵義神庵.

102일 무진일. 빈발암을 출발하여 영신암을 지났다(×). 빈발암과 무너진 영신암을 출발하여[貧鉢穿霛神](○) 서쪽 산 정상을 거쳐 숲 속 30리 길을 걸어서 의신암(義神庵)에 이르렀다.

 

庚午. 與雪根義文登般若峯. 俯見峯北有昏黑月落之洞. 有草幕一間. 雪根所居. 又其北中鳳山. 貧鉢峯之北構也. 於岡斷處. 有寂照無住等庵. 又其北金鳳山. 有金臺庵. 峯西有方丈山. 山頭有萬福臺. 臺東有妙峯庵. 臺北有普門庵. 一名黃嶺庵. 峯南有姑母堂. 堂南有牛翻臺. 牛翻禪師道場也. 峯東有仙人臺. 臺東卽雙溪洞也. 貧鉢峯當峯之東面. 天王峯又當其東北面矣.

104일 경오일. 설근의문과 함께 반야봉(般若峰)에 올라 봉우리 북쪽을 내려다보니 어둠이 깔리고 달이 지는 동네가 있었다. 초막이 한 칸 있었는데 설근이 거처하는 곳이었다. 그 북쪽에 중봉산(中鳳山)빈발봉(貧鉢峯)의 북쪽에 솟은 봉우리이고 산등성이 절벽 아래에 적조암(寂照庵)무주암(無住庵)등의 암자가 있었다. 그 북쪽의 금봉산(金鳳山)에는 금대암이 있었고 봉우리 서쪽에는 방장산이 있었다. 산봉우리에 만복대(萬福臺)가 있었으며 만복대 동쪽에는 묘봉암(妙峰庵), 북쪽에는 보문암(普門庵)이 있는데 일명 황령암(黃嶺庵)이라고도 하였다. 이 반야봉 남쪽에는 고모당(姑母堂), 고모당의 남쪽에는 우번대(牛翻臺)가 있는데 우번선사(牛翻禪師)의 도량(道場)이었다. 이 반야봉 동쪽에 선인대(仙人臺)가 있고, 그 동쪽이 바로 쌍계동(雙溪洞)이었다. 빈발봉(貧鉢峯)이 봉우리의 동쪽에 있었고 천왕봉(天王峰)도 그 동북쪽에 있었다.


2. 성해응(1760~1839)[지리산산수기] 

由坐高臺至賓鉢. 行三十里抵義神菴.

이로부터 좌고대(坐高臺)를 거쳐 빈발(賓鉢)에 이르기까지 삼십 리를 가야 의신암(義神菴)에 다다른다.(×)

좌고대(坐高臺)에서 빈발암(賓鉢庵)에 이르러 삼십 리를 가야 의신암에 다다른다.(○)

 

* 成海應 [1760(영조36)1839(헌종5)]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



* 지리산일과 : 조선 전기에 남효온이 지은 지리산 기행문

작자의 문집인 추강집(秋江集)4 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다.지리산일과1487(성종 18) 남효온의 나이 34세가 되던 927일에 진주의 여사등촌(餘沙等村)을 출발하여 단속사(斷俗寺덕산사(德山寺보암(普菴향적암(香積菴)을 거쳐 천왕봉(天王峰)에 올라갔다가 빈발암(貧鉢菴의신암(義神菴칠불사(七佛寺봉천사(鳳天寺화엄사(華嚴寺쌍계사(雙溪寺불일암(佛日庵사자암(獅子庵오대사(五臺寺)를 거쳐 1013일 다시 진주의 여사등촌으로 돌아오기까지의 16일 동안 여정의 일과를 기록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리산일과 [智異山日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