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불일암 냉연대 아래 오암의 석각과 탁본(180417)

도솔산인 2018. 4. 17. 10:15

 

불일암 냉연대 아래 오암의 석각(180417)

 

 

* 1558남명 조식의 유두류록

 

○ 4월 19일 이날 아침 김경이 병 때문에 함께 가는 것을 사양하고 기생 귀천(貴千)을 데리고 급하게 떠났다. 김군은 이때 나이가 일흔 일곱이었지만 나는 듯하여 처음에는 천왕봉까지 오르려 하였으니 사람됨이 마치 이원(利園)에서 노닐다 온 사람처럼 대범했다. 호남에서 온 네 사람과 백유량, 이씨 두 유생이 동행하였다. 북쪽으로 오암을 오르는데, 나무를 잡고 잔도를 오르면서 나아가는데 원우석은 허리에 찬 북을 치고, 천수는 긴 피리를 불고, 두 기생이 따르면서 선두를 이루었다. 제군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물고기를 꼬챙이에 꿴듯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중간 대열을 이루었다.

 

是朝. 金君涇辭以疾. 挾妓貴千徑去. 金君時年七十七. 登陟如飛. 初欲上天王峯. 爲人倜儻. 有若曾到梨園裡來者. 湖南四君. 白李兩生同行. 北上㹳巖. 緣木登棧而進. 右釋打腰鼓. 千守吹長笛. 二妓隨焉. 作前隊. 諸君或先或後. 魚貫而進. 作中隊.

 

 

강국년과 음식을 맡은 사람과 음식을 운반하는 종 등 수십 인이 후미 대열을 이루었다. 승려 신욱이 길일 인도하며 나아갔다. 사이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이언경’, ‘홍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㹳巖에는 또한 시은 형제라는 글자를 새겼으니, 아마도 썩지 않는 돌에 이름을 새겨 억만년토록 전하려 한 것이리라.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서, 사관이 책에 기록해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거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차하게 원숭이와 너구리가 사는 숲 속 덤불의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구한다. 이는 나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후세 사람들이 날아간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 두예(杜預)의 이름이 전하는 것은 비석을 물속에 가라앉혀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업적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姜國年. 膳夫. 僕夫運饋者數十人. 作後隊. 僧愼旭向道而去. 間有一巨石. 刻有李彦憬. 洪淵. 㹳岩亦有刻柿隱兄弟. 意者. 鑱諸不朽. 傳之億萬年乎. 大丈夫名字. 當如靑天白日. 太史書諸冊. 廣土銘諸口. 區區入石於林莽之間. 㹳狸之居. 求欲不朽. 邈不如飛鳥之影. 後世果烏知何如鳥耶. 杜預之傳. 非以沈碑之故. 唯有一段事業也.

 

* 두예(杜預, 222년~ 284년)는 중국삼국시대 위나라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지냈던 두서(杜恕)의 아들이며, 는 원개(元凱)이다.  진나라의 장군이 되어 오나라를 정벌하고 중국 재통일에 기여했다

 

 

 

 

㹳巖(오암)

 

間有一巨石. 刻有李彦憬. 洪淵. 㹳岩亦有刻柿隱兄弟.

중간에 하나의 큰바위가 있는데 이언경 홍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오암에는 또한 시은형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니...

 

 

 

 

 

 

洪淵(홍연), 李彦憬(이언경) 乙卯(1555년 명종 10년)

 

* 洪淵(생몰년 미상) :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원(德源).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5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 李彦憬(이언경) : 조선 명종 때의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