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 1171

설국의 영랑대 지리동부 혹한 속으로...

설국의 영랑대 지리동부 혹한 속으로... ▣ 일 시 : 2022년 12월 17일(토)~18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일곱모랭이 능선-방장문-청이당-마암-영랑대 ▣ 인 원 : 3명 ▣ 날 씨 : 흐리고 눈(-22도) 구태여 雪山에 들어 苦行할 것 뭐 있겠나? 李震相(1818~1886) 人知猶易獨知難 : 남이 아는 것은 쉬워도 나만 아는 일은 어려워 雷雨雲星一念間 : 한 가지 생각하는 사이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如令屋漏常無愧 : 설령 혼자 방에 있더라도 늘 부끄러움이 없다면 苦行何須入雪山 : 구태여 설산에 들어가 고행할 필요가 뭐 있겠나. 「술학자경(述學自警)」 중 ‘홀로일 때를 삼가다[謹獨]’ 『한주집(寒洲集)』 ▶ 이진상[李震相, 1818(순조 18)∼1886(고종 23)] 조선 말기의 유..

13. 姜錫佐의 『重隱集』卷1 遊錦山記

13. 姜錫佐(1777~1853)의 『重隱集』卷1 遊錦山記 遊錦山記 【有詩有歌詞逸】 錦山號稱小金剛 擅名於東國者也 歲己卯秋 與族人仲直景雲甫 約日登程 賚略干糧 至鼓洞文生家暫憩 暮抵龍湖 訪鄭士克門 碁酒永夕 유금산기 【시와 가사가 있었는데 잃어버렸다.】 금산은 소금강이라고 불리고,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산이다. 기묘년(1819, 순조 19년) 가을, 집안사람인 중직(仲直)·경운(景雲)과 날을 정해 유람길에 올랐다. 약간(略干)의 양식을 챙겨서 고동(鼓洞) 문생(文生)의 집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저물녘 용호(龍湖)에 이르러 정사극(鄭士克)의 집에 방문하여, 바둑을 두고 술을 마시면서 밤을 지새웠다. 翌日 至前芳村 三從弟善之 贅於梁生潝者 有年欣倒款接 仍過仲坪 有朴生必權 中路要之 朴願從 許之 訪大峴 鄭毅之講道舊故 是..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나오는 묘적암과 서동고암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나오는 묘적암과 서동고암 ▣ 일 시 : 2022년 12월 10일(토)~11일(일) ▣ 코 스 : 무량굴-절터와 석굴-암자터-묘적암 전대-회암당 부도터-상무주암-서동고암-빗기재-영원사 ▣ 인 원 : 4명(박지합류 1명) ▣ 날 씨 : 진눈개비 새벽맑음(-4도)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1686)」는 우담(愚潭)이 62세 때인 1686년(숙종 12) 3월부터 1688년(숙종 14) 9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일대의 명산 고찰 및 서원 등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유람기이다. 정시한(丁時翰)은 3년(22개월, 총 600일) 동안 전국의 명산 고찰을 두루 유람하면서 매일매일 그날의 일과 자신의 감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였..

대전 월평공원 도솔산 지명의 유래

대전 월평공원 도솔산 지명의 유래 ▣ 일 시 : 2022년 12월 05일(월) ▣ 코 스 : 내원사-도솔산-가새바위-갑천산책로-싸이클경기장-내원사 ▣ 인 원 : 2명 ▣ 날 씨 : 맑음 도솔산, 도솔봉, 도솔터널, 도솔로, 도솔체육관, 도솔한의원, 도솔순대, 도솔정, 도솔청소년문화의집 등 도솔이 들어가는 이름이 많기도 하다. 도솔산은 예로부터 전해진 이름이 아니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 1965년경 대한불교법륜종 초대 종정 보광사 주지 금암 스님이 당시 내원사라는 사찰이 건립되면서 불교의 도솔천 내원궁에서 내원사(대전 서구 내동 소재)라는 사찰의 이름을 지어주신 데에서 燕子山(연자산)을 도솔산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도솔산 자락에 배재대학교, 대전제일고, 서대전여고, 삼육중학교, 도마중학교, 봉산중학..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장정동(長亭洞)과 삼정(三丁)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장정동(長亭洞)과 삼정(三丁) 마천면 삼정리(三丁里)의 옛 이름은 천령지(1656년 편찬, 1888년 간행)와 함양군지(1956)에 정장(亭庄)으로 기록하고 있다. 1994년 마천애향회에서 편찬한 마천면지에는 삼정(三丁) 마을의 유래를 '정쟁이' 또는 '정재이'로 한자로 정장(丁莊, 일꾼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정(下丁) 마을 선유정 상량문(仙遊亭上梁文, 1976)에는 "진(秦)나라 혜문공(惠文公)이 촉도(蜀道)를 뚫으려고 거짓으로 금우(金牛)를 변경에 설치했으니 그 당시 다섯 역사(力士)가 쓰던 도끼로 삼정(三丁) 마을을 개척하였네."라고 하였다. 이렇게 기록마다 한자의 표기가 다르다.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장정동(長亭洞)이 나오는데, 정황상 삼정(三丁)을 ..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서동고암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서동고암 ▣ 일 시 : 2022년 11월 26일(토)~27일(일) ▣ 코 스 : 무량굴-정자터-암자터와 석굴-암자터-묘적암 전대-회암당 부도터-상무주암-서동고암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5도) 1.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무량굴과 묘적암 ▶ 동선 : 무주암-무량굴-절터와 굴(寺基及窟)-묘적암 ○ 윤 4월 11일, 아침 재식(齋食, 佛家에서의 食事)을 한 뒤에 삼응(三應) 수좌와 함께 무량굴(無量窟)에 갔다가 다시 묘적암(妙寂菴)으로 올라왔다. 절터와 굴(寺基及窟)을 두루 보고 묘적암(妙寂菴)에 이르러 사철(思哲) 수좌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잠시 후에 무주암(無住菴)으로 돌아왔다. 약 10여 리를 걸었다. 돌길이 매우 험하여 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

마천지서장 하만수의 칠언절구 육이오동란

마천지서장 하만수의 칠언절구 육이오동란 六二五動亂 육이오동란 白頭風烈荒波動 : 백두산 바람은 매섭고 거친 물결이 이는데 北進軍兵攻擊越 : 북진하는 군병은 삼팔선을 넘어 공격하네 外勢當時千古恨 : 당시에 외세의 개입은 천고의 한이 되었고 胸中忿痛心流血 : 가슴속 분통함은 마음에 피가 되어 흐르네 대한민국경찰서부전투지휘함양경찰제칠중대장 퇴경 하만수 ※ 지리산 마천면사 편찬위원회 문호성회장님이 발굴한 자료임. ▶ 함양경찰서 마천지서 경비주임 하만수 관련 기록(編) 1.4후퇴로 북괴군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빨치산이 기승을 부리자 마천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천면에 통나무 목책을 쌓고 특공대를 조직했다. 당국에서 권유하기도 했지만, 17세 소년으로부터 50대의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참여했다. ..

1616년 성여신의 방장산선유일기에 나오는 설봉과 숙묵암

1616년 성여신의 방장산선유일기에 나오는 설봉과 숙묵암 화개동천(花開洞天) 초입에서 바라보면 12시 방향으로 가장 높이 보이는 봉우리가 있다. 1301봉으로 이름이 없다. 정상에 헬기장이 있고, 빨치산 토벌을 위해 국군이 돌로 쌓은 참호가 있으며, 인위적으로 쌓은 석축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쌍계사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면 雪峰(설봉)으로 추정되는 1301봉이 보인다. 1301봉 남동 편에 하동 독바위가 있다. 지난주 산학동자(도필락)님에게 '설봉에 다녀온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雪峰(설봉) 관련 자료를 공유하였고, 산행 후 성여신의 유람록 국역 부분을 물어왔다. 1616년 성여신의 「방장산선유일기」에서 " 번천동(樊川洞)을 지나 숙묵암(宿黙菴)을 거쳐서 설봉(雪峰)을 넘어 불일암(佛日菴)에서 묵었..

姜錫佐(1777~1853)의 『重隱集』 卷1 遊錦山記

姜錫佐(1777~1853)의 『重隱集』 卷1 遊錦山記(1,204자) 아직 발굴되지 않은 남해 금산 유람록이다. 강석좌(姜錫佐, 1777~1853)는 조선 후기 하동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기묘년(1819, 순조 19년) 가을 남극 노인성을 보기 위해 중직(仲直) 강경운(姜景雲), 박원종(朴願從), 박필권(朴必權) 등과 금산을 유람한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성을 볼 수 있는 곳은 제주도와 금산 보리암, 지리산 법계사이다. 1896년 8월 천왕봉에서 노인성을 보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산행한 두산(斗山) 강병주(姜柄周, 1839~1909)는 두류행기(頭流行記)에 「"옅은 구름이 문득 개여 별이 남쪽에 나타났다. '크기는 계명성(啓明星)만하고 빛깔은 약간 붉으며, 춘분과 추분에 땅으로부터 30길 정도 떨어진 곳에 나..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도솔암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도솔암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1686년)는 62세 때인 1686년(숙종 12) 3월부터 1688년(숙종 14) 9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일대의 명산 고찰 및 서원 등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유람기이다.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은 1686년 3월 어머니 3년상을 마친 후, 62세부터 3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순력(巡歷)하며 산중일기를 남겼다. 우담이 산과 산사를 탐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첫 유람은 1648년 스물네 살 때였는데, 아버지 임지인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회양은 금강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선생은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산수벽(山水癖)에 ..